‘R&D 삭감 그대로!’ 윤 대통령 시정연설에 과학계 ‘부글부글’

이정호 기자 2023. 10. 3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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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 “꾸준히 반대했는데 정부 입장 변화 없어”
“R&D 줄여서 복지 증액 연계성도 의아해”
다음 달 국회 심의에서 집중 문제 제기 예정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4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31일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통해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방침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하자, 예산 심의 때 증액을 기대해온 과학계가 반발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는 내년 정부 R&D 예산을 올해보다 16.6%(5조2000억원)나 줄인 25조9000억원으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고, 이날 윤 대통령이 이런 방침을 못 박은 모양새다. 과학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표명한 ‘R&D 예산 삭감 반대’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비판하고 나서, 향후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갈등이 예상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회 시정연설에서 “R&D 예산은 2019년부터 3년간 20조원 수준에서 30조원까지 양적으로 10조원이나 대폭 증가했으나 미래 성장동력 창출을 위해 질적인 개선과 지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 R&D 예산은 민간과 시장에서 연구개발 투자를 하기 어려운 기초원천 기술과 차세대 기술역량을 키우는 데 써야 한다”며 “이번 예산안에는 첨단 인공지능(AI) 디지털, 바이오, 양자, 우주, 차세대 원자력 등에 대한 R&D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고 강조했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시정연설에 대폭 삭감한 내년 정부 R&D 예산안을 고수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뜻이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대학과 정부출연연구기관 등을 중심으로 한 과학계에서 지난 8월 이후 R&D 예산 삭감이 부당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냈지만, 사실상 전혀 반영되지 않은 격이다.

이어확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 공동대표(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는 “정부는 (R&D 예산 삭감을 추진하는 논리로) 비효율적 관리 체계를 얘기하지만, R&D 예산을 수조원 줄여야 할 정도의 분명한 문제 사례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과기정통부에서 최근 과학계 현장 간담회를 하고 있지만 거기서 나오는 얘기도 전달이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R&D 예산 삭감은 지난 6월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시작됐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과학계와 정치권에선 이를 두고 “R&D 분야가 ‘카르텔’이 있는 곳으로 지목됐다”는 해석이 나왔다. 기획재정부의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정부 R&D가 올해와 같은 31조원대로 회복되는 것은 2027년이다.

이날 윤 대통령이 R&D 예산을 삭감해 복지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보인 것에 대해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일단 이번에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마련한 3조4000억원은 약 300만명의 사회적 약자와 취약 계층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데 배정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액수인 ‘3조4000억원’은 과기정통부가 관리하는 내년 ‘주요 R&D 예산’ 삭감액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가 이공계 대학 지원 등에 배정하는 ‘일반 R&D 예산’까지 포함한 삭감액은 5조2000억원이다.

이 공동대표는 “복지 예산을 늘리는 일은 R&D 예산 삭감과는 별도로 가는 것이 온당하다”고 강조했다. ‘R&D 예산을 빼서 복지 분야로 이동시키니까 괜찮은 일’이라는 인식에 동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연대회의 등 과학계는 다음달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R&D 예산 삭감의 부당성을 적극 알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더불어민주당은 R&D 예산이 지나치게 많이 줄었다며 정부에 삭감 이유와 논리를 따져 묻겠다는 태도다. 이에 R&D 분야 예산 심의가 향후 여야간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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