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전쟁’의 시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뭘까?[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기자 2023. 10. 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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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정



intro

“나는 독서 중의 독서, 구극(究極)의 책 읽기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라고 생각한다.”(김무곤 교수 ‘종이책 읽기를 권함’ 중에서)

가정을 이루었고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도, 나는 늘 자신의 쓸모에 대해 걱정했다. 하지만 2011년 겨울. 이 짧은 문장 하나가 내 인생을 극적으로 바꾼다. 어떠한 용도도 없는 가장 순수한 읽기라니! ‘별 의미도 목적도 없이 읽는 행위’ 위에는 시간이 나이테처럼 축적됐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지나면서 나는 진정한 풍요로움을 맛볼 수 있었다.

이제 그 이야기를 쓴다. ‘김윤정,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책 읽기’ 그 열두 번째는 하정우·한상기의 ‘AI전쟁’(한빛비즈)이다.

AI전쟁



‘이기적인 글쓰기’라는 이름으로 글쓰기 교실을 열었다. 글을 쓰기 위해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하자는 취지이고, 쓰는 인생을 살면 어느 순간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기적을 맛본다는 의미다. 타깃은 한 번도 글쓰기 수업을 받아 본 적이 없는 40대 여성이다. 고수에게 다가가기 어려운 왕초보를 초보가 가르치는 격이지만, 걸음마를 처음 배울 때 손가락 하나만 잡아줘도 걸음을 뗄 수 있는 것처럼, 먼저 걸어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준다면 글쓰기가 겁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초보나 왕초보의 걸음으로는 따라가기가 벅차다. 불과 몇 년 전, 곧 인공지능이 글을 쓰는 시대가 온다고 했을 때 나는 믿지 않았다. 챗GPT라고 부르는 오픈AI의 생성형 인공지능에 실제로 ‘계절에 대해 에세이를 쓰고 싶은데 서론을 써 줘’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계절은 자연의 수호자로서 우리 앞에 서며, 각각이 마치 페인팅의 다른 색조처럼 우리 세계를 물들입니다. 이 에세이에서 우리는 계절이란 무엇인지, 계절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각 계절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흥미로운 여행에 대해 탐구할 것입니다”라는 문장을 얻었다.

AI는 인공신경망을 통해 숫자로 변환된 데이터를 계산하고, 패턴을 익히며 사람을 빠르게 앞서 나간다.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이 쓴 글을 인공지능이 평가하는 시대다. 기본적으로 문법이나 철자 같은 개별 항목의 평가는 이미 가능하다. 다양성 같은 경우, 예를 들어 얼마만큼 일반적으로 쓰이는 단어를 썼느냐, 아니냐는 단순한 일반 통계 기반으로도 충분히 평가가 가능하다고 한다.

“인공지능이 특별하게 어디에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이 스마트폰을 통해 이미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국내 1세대 인공지능 연구자 한상기가 묻고, 네이버 클라우드 AI 혁신센터장 하정우가 답하는 형식으로 쓰인 책 ‘AI 전쟁’의 한 구절이다. ‘나는 자주 사용하지 않으니 몰라도 돼’라고 마음먹지 않아도 된다.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AI는 인간의 삶 가까이에 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않은 곳에 이미 존재한다. 안면인식 프로그램이나 외국어 번역기, 녹음을 자동으로 녹취록으로 만드는 일부터 인터넷 뉴스사이트의 기사 배열, 전자상거래 사이트, 콜센터, 심지어는 독거노인 말벗 서비스에도 인공지능 기술이 사용된다. 어쩌면 인공지능이 하지 못하는 일을 찾는 것이 빠를지도 모른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혹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데요?”

후배들이 ‘인공지능 분야에서 뭔가 하고 싶다’고 조언을 구한다면 어떤 말을 해 주겠냐는 한상기 박사의 질문에 하정우 센터장은 그들에게 먼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질문을 던지겠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영역이 확대될수록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아닐까. 책에서는 생명과 관련된 일이나 그에 관련해 결정을 내려주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지는 일에 있어서 인간의 역할을 강조한다. 저자는 AI의 행동에 따른 철학적 신념과 공통의 가치를 찾아야 하며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한 노력과 그에 따르는 딜레마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았다. 마음을 어루만지는 일, 손으로 할 수 있는 일, 우정을 나누는 일 등등 여러 대답을 들었다. 시간이 걸릴 뿐 언젠가는 인공지능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미래가 올 것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통해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읽어 내고, 그에 따라 적절한 반응을 도출할 수 있다. 감정이 없는 AI도 감정을 흉내 낼 수는 있다.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내가 내린 답은 ‘대신 아프고 싶은 마음’이다. 기쁨, 슬픔, 상실감, 허망함, 간절함, 황당함 같은 단어로 분류할 수 있는 감정과 달리 ‘아픔’이라는 것은 실체가 없고, 느끼는 강도도 사람마다 다르다. 아픔이야말로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무엇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열에 시달리며 끙끙 앓는 아이 곁에서 밤을 새워 본 엄마는 이 마음이 무엇인지 안다. 호흡기에 의지한 채 어렵게 숨을 지탱하는 부모의 손을 잡았을 때 자식의 마음이 그렇다. 내 자식, 내 부모가 아니어도 부당하게 죽어간 타인의 목숨 앞에서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속수무책 눈물이 난다. 내가 대신 아파 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만약 인생의 시간을 쪼개서 나눌 수 있다면 내 시간을 조금이라도 주고 싶다고.

‘만약’이라는 전제가 붙는 말은 대부분 불가능하다. 아무리 간절하다 해도 진짜로 대신 아파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상대의 아픔을 나누고 싶은 마음은 위로나 공감, 지지라는 이름으로 대신 할 수 있다. 사람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마지막 감정은 이타심이 아닐까. 인공지능은 인간을 닮았고, 인간의 뇌를 모델로 만든 기술이지만 사람과 똑같을 수는 없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서 인간의 자리가 점점 없어진다고 해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너무 뻔하지만.

김윤정(서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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