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부족' 고용청, 일터 성희롱 피해자 지켜 온 고평실 대체할 수 있을까

최나실 2023. 10. 31.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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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평등상담실 상담사님은 친절히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줬습니다. 노동청에 진정을 넣고 근로감독관을 '선생님'이라 불렀을 때는 "이 아줌마야.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을 겪은 여성 노동자를 지난 24년간 지원해 온 고용평등상담실(고평실)이 내년부터 폐지될 위기다.

2000년 10개소로 시작해 현재 전국 19개소가 운영 중인 고평실은 고용상 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 등 피해 노동자에게 대처 방안을 지원하고 심리정서치유를 돕는 역할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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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평등상담실 폐지 막기 위한 토론회
전국 19개 상담실에서 8개 노동청 축소
"민간단체 없으면 피해자 갈 곳 한정적"
9월 25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고용평등상담실네트워크와 시민사회단체가 "24년간 여성 노동자 지켜온 고용평등상담실 폐지, 퇴행하는 고용노동부 규탄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제공

"고용평등상담실 상담사님은 친절히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줬습니다. 노동청에 진정을 넣고 근로감독관을 '선생님'이라 불렀을 때는 "이 아줌마야. 난 선생님이 아니고 근로감독관, 사법경찰관"이라고 명패를 탁탁 치며 말했습니다. 제가 말할 기회도 거의 없었고 주눅 들어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 같았습니다."(내담자 A씨)

"사건 관련 전화를 했더니 '왜 전화했어요'라며 다그치는 감독관을 보고 부당해고 인정이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동청은 피해자 의견을 들어주기엔 사람이 상당히 적고, 피해자는 끝이 없습니다. 민간단체(고용평등상담실)가 사라지면 피해자가 갈 곳은 너무 한정적입니다."(내담자 B씨)

직장 내 성희롱·성차별을 겪은 여성 노동자를 지난 24년간 지원해 온 고용평등상담실(고평실)이 내년부터 폐지될 위기다. 고용노동부가 예산 지원을 전면 중단해서다. 이곳을 이용했던 내담자들은 "자기 일처럼 공감하고, 오롯이 지지해 줬던 고평실이 사라지면 피해자는 어디로 가야 하냐"고 되물었다.

31일 국회에서는 전국고평실네트워크와 더불어민주당전국여성위원회 주관 '민간 고평실 폐지를 막기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2000년 10개소로 시작해 현재 전국 19개소가 운영 중인 고평실은 고용상 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 등 피해 노동자에게 대처 방안을 지원하고 심리정서치유를 돕는 역할을 해 왔다. 상담을 통해 쌓인 피해 사례와 경험에 기반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에 대한 심리정서 지원을 제도화하는 등 각종 법·제도 개선에도 앞장서 왔다.

그런데 정부는 돌연 내년 고평실 예산을 12억 원에서 5억 원대로 삭감하고 서비스를 자체 운영하겠다고 통보했다. 올해 기준 고평실 소속 상담원 38명이 최저임금만 받으며 연간 1만 건 넘는 상담을 했는데, 앞으로는 국 8개 권역별 노동청에 상담사 2명씩 총 16명을 배치해 여성 노동자 피해 상담과 권리구제 업무를 하겠다는 것이다.

고용부는 '창구 단일화를 통한 실효성 제고'를 제도 개편 이유로 설명했지만, 고평실을 운영하고 이용해 온 현장에서는 우려와 반발이 크다.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노동청 담당자의 응대로 피해자가 위축되거나 2차 가해를 당할 수 있고, 안 그래도 업무가 과중한 노동청이 새로 맡게 될 노동자 상담과 구제 조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 고평실 상담원은 "업무가 폭주하고, (성인지) 인식이 없는 근로감독관은 피해자에게 '그거 왜 그렇게 하셨냐' '왜 그렇게밖에 대응을 못했냐'며 2차 가해를 지금도 한다"고 했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지방노동관서에선 진정 사건을 '행정 처리'할 뿐 고평실처럼 진정서를 검토하고, 조사에 동행하고, 아픔을 공감해 주는 일련의 '지원' 활동을 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고용평등의 한 축을 담당하는 제도를 중단하는 과정에서 정부와 국회는 어떤 논의를 거쳤는가"라며 "민간 영역의 역할과 기능 폐지가 바람직한지, 이를 각 지방노동청 기능으로 전환하는 게 가능할지에 대한 정책적·제도적 분석이 면밀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며 예산안 심의에서 국회 역할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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