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 내소사 동종, 국보 지정 예고…고려 후기 가장 큰 구리 종

문수빈 기자 2023. 10. 31.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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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부안 내소사 동종(銅鍾·구리로 만든 종)'을 국보로 승격할 예정이라고 31일 예고했다. 사진은 부안 내소사 동종./문화재청 제공

고려 후기 대표 걸작인 ‘부안 내소사 동종’이 국보가 된다.

31일 문화재청은 보물로 지정된 부안 내소사 동종이 국보로 승격된다고 예고했다. 동종이란 구리로 만든 종이다.

이 동종은 높이 103cm, 입지름 67cm로 고려 후기 동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이다. 공중을 비행하는 듯한 역동적인 용뉴, 종의 어깨 부분을 올림 연꽃 문양으로 장식해 고려 후기 동종의 본보기였다.

종을 만든 내력이 적힌 주종기를 통해 도인 허백과 종익의 주관 아래 장인 한중서가 700근의 무게로 1222년 제작했음을 명확히 알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과거 청림사에 봉안됐다가 1850년 내소사로 옮겨졌다.

이 동종을 제작한 한중서는 13세기 전반부터 중엽까지 활동한 장인으로, 민간 기술자로 시작해 관청 소속의 관장이 된 인물이다.

이 동종은 양식, 의장, 주조 등에서 한국범종사와 제작 기술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서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될 예정이다.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문화재청 제공

신라의 문화를 보여주는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허리띠’ 등 5건은 보물로 지정된다.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는 1924년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신라시대 고분 금령총을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이다.

목관 안에서 매장자 허리에 착용된 상태로 발견됐다. 원래 가죽이나 천과 결합된 허리띠였으나 오랜 시간을 거치며 금제 장신만 남은 상태였다.

띠고리, 띠꾸미개, 띠끝꾸미개, 드리개로 구성됐는데, 드리개는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것들보다 짧아 고분 주인이 미성년으로 추정된다.

금실이 감긴 연필영(원뿔형) 드리개, 곡옥의 모자 부분에 난집을 두르고 유리를 채워 장식하는 법은 다른 허리띠에서 확인되지 않는 독특한 사례다.

경주 금령총 출토 금제 허리띠./문화재청 제공

경주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도 1926년 조선총동부박물관이 신라시대 고분인 서봉총을 발굴했을 때 출토된 것이다.

이 허리띠는 신라 금제 허리띠의 전개 과정이 반영돼 있다.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황남대총 남분 출토 금제 허리띠 이후 띠꾸미개의 중심 문양은 좌우 대칭으로 표현된 세 잎무늬로 유지된다. 서봉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띠꾸미개는 중심 문양이 뾰족해 금관총 출토 금제 허리띠의 띠꾸미개와 함께 가장 화려한 장식성을 보여준다.

다른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 드리개 장식엔 유리나 옥 등의 재일이 혼용돼 있는데, 이 허리띠의 드리개 장식은 대부분 금제다.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 허리띠 중 드리개 길이가 가장 길어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

복재 정총의 유고 시문집 복재선생집./문화재청 제공

‘복재선생집’은 조선 개국공신인 복재 정총(1358~1397)의 유고 시문집이다. 황보량이 지은 발문에 의하면 1446년 그의 둘째 아들 정효충(鄭孝忠)이 수집·편차하고 손자인 정옥경이 편집했다.

수양양도호부사 황보량의 감독으로 목판이 완성됐다. 문화재청은 이때 조성한 목판으로 인쇄해 펴낸 초간본을 보물 지정 예고했다.

이 책은 2권 1책으로, 상권에는 172수의 시가 수록돼 있으며, 하권에는 45편의 글이 수록돼 있다. 특히 왕명을 받아 정도전(1342~1398) 등과 함께 수찬한 고려사 의 서, 정몽주(1337~1392)의 공로를 치하하는 교문하찬성사정몽주서와 같은 교서 등이 실려 있다.

청자 음각앵무문 정병./문화재청 제공

‘청자 음각앵무문 정병’은 12세기 이후에 청자로 제작된 청병이다. 볼록한 배 모양의 몸체 옆에 물을 담는 주구가 있고 몸체 위로 물을 따르는 첨대가 있다. 첨대는 깨끗한 물을 담는 수병이다.

보수된 부분 없이 보존 상태가 우수하고 유색과 유면 등의 상태도 좋은 편이다. 다른 정병과 비교해 첨대가 짧지만 양감이 풍만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몸체 세 곳에 날개를 편 앵무새가 음각으로 표현돼 있는데, 고려청자에서 앵무새 문양은 12세기 이후 주로 발, 접시류에 사용됐다. 청자 음각앵무문 정병처럼 정병에 앵무새가 표현된 건 희소한 사례다. 본래의 주구 뚜껑도 남아 있어 자료적 가치도 높다.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문화재청 제공

‘안동 선찰사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수조각승 현진, 응원, 수연, 성인, 인균 등 당대 최고 기량의 조각승들이 대거 참여해 1622년 조성한 불상과 복장유물이다.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물을 통해 광해군의 정비인 광해군 부인 유씨가 발원해 왕실의 비빈이 출가하던 자수사·인수사에 봉안하기 위해 제작된 11존의 불상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별도로 마련된 왕실의 원당이 봉안됐던 것이다. 왕실 원당에 봉안된 원불의 실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독존의 석가여래로서, 머리가 크고 무릎이 좁으며 뺨에는 살이 통통하게 올라 양감이 있어 전체적으로 귀여운 인상을 준다. 동시에 다부진 체구, 진중함이 드러나는 이목구비, 왼쪽 어깨와 하반신의 옷주름 표현 등에서 조각승 현진의 양식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다.

이 불상의 복장에서 조성발원문과 함께 ‘병자생왕비유씨명의’라는 묵서가 적힌 광해군 부인 유씨 개인의 저고리가 발견됐다. 이는 왕비의 개인적인 발원으로 이 불상이 제작됐음을 보여준다.동시에 17세기 조선 왕실 복식이 완전한 형태로 발견됐다는 점에서 한국복식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유산(국보·보물)으로 지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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