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성범죄, 피해자들은 이렇게 말했다…"실존적 생지옥"

권지원 기자 2023. 10. 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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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인권진흥원 연구 보고서…피해자 8명 인터뷰
"그 영상 딱 접하자마자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생존자 고통 비해 낮은 가해자 형량에 무력감 느껴
도메인만 삭제되고 유포물 자체는 못해…고통 가중
피해자들, 신상정보 노출·법적 보호 체계 문제 지적
"男형사와 영상 같이 켜고 상황 설명하라고…분통"
진흥원 "심리적 지지 필요…안전 온라인 환경 조성"
[서울=뉴시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디성센터)에서 지원 서비스를 받은 피해자 수가 전년 대비 14.8% 늘어난 7979명으로 나타났다. 서비스 지원 건수는 2022년 기준 23만4560건이며 삭제 지원이 91.1%으로 가장 많았다. (그래픽=전진우 기자) 618tue@newsis.com

[서울=뉴시스]권지원 기자 = "그 영상을 딱 접하자마자 '이제 내 인생은 끝났구나', '나는 어떻게 살지'라는 생각을 모든 생존자가 할 텐데 저도 당시에 그랬다. 나는 이제 끝났구나, 결혼은 고사하고 지금 하는 일도 못하겠구나, 사회생활 자체를 못하고 밖에 돌아다니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피해자 인터뷰,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연구보고서 발췌)

여성가족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디성센터)에서 피해 지원 서비스를 받은 피해자 수는 지난해 기준 7979명(여가부·한국여성인권진흥원 '2022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보고서')이다. 이는 전년 대비 14.8%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디지털 성범죄 피해가 나날이 늘어나고 수법은 교묘해지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지속적인 유포와 신상정보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매일을 '생지옥'에서 보내고 있다.

불법 사이트에 대한 법적 처벌 한계와 가해자에 대한 낮은 형량이 여전히 문제로 꼽히고 있는 만큼, 피해자의 트라우마 심리적 지지와 가해자 처벌을 위한 법률적 대응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제언이 나왔다.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8명 대상으로 진행한 최초 질적연구를 담은 '디지털 성범죄 유포 및 유포 불안유포불안 피해 경험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31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 특성을 반영한 피해 단계별 회복적 요소 분석을 통해 실질적 피해자 지원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에 참여한 피해자들은 지속·반복적인 유포 피해를 경험하면서 '실존적 생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답했다. 디지털 성범죄는 영속적 특징을 갖고 있어 성범죄를 반복적으로 겪는 것과 유사해 지속적인 학대 피해와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 피해자들은 피해를 인식한 시점부터 지속적인 유포가 이어져 협박과 신상정보 노출로 인한 제약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실존적 생지옥'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유포 영상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일상의 기본적인 신체 활동조차 할 수 없어 급격한 체중감소를 경험하고 잠을 잘 수 없는 신체적 고통까지 경험했다고 호소했다.

또한 지속되는 유포의 확대로 사회적 단절과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유포물이 지속적으로 재가공되면서 일상 생활에 연결된 지인들에게까지 피해가 더해질 것도 우려했다.

참여자들은 비난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전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 고립하기도 했다고 답했다. 일부 참여자는 성형 수술과 개명으로 사건과 관련된 모습을 지워버리려 했다고 답했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성범죄 속성상 불법 사이트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국내법 내 처벌 근거가 미약하다는 것이다.

[서울=뉴시스]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8명 대상으로 진행한 최초 질적연구를 담은 '디지털 성범죄 유포 및 유포 불안유포불안 피해 경험에 관한 연구' 보고서. 2023.10.31. *재판매 및 DB 금지

피해자들은 가해자 처벌을 위해 재판에 참석해 탄원서를 제출해도 형량이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생존자 고통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가해자 형량 수위'에 대한 무력감을 느꼈다고 증언했다.

유포물 자체 삭제의 어려움은 또 다른 벽이었다. 반복적인 유포물 삭제 요청에도, 사실상 도메인만 삭제될 뿐 유포물 자체는 삭제할 수 없다는 한계가 피해자의 심리적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 밖에도 참여자들은 불법 사이트에 대한 허용적 문화, 피해 특성이 반영되지 못한 심리지원, 트라우마 반응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수사방식 등을 문제로 꼽았다.

한 참여자는 "경찰서에 갔을 때, 남자 형사가 있는 상황에서 그 영상을 같이 켜고 당시 (유포물의) 상황을 설명하라고 말씀하셔서 분통이 터지고 너무 속상했다"고 호소했다.

이에 연구진은 피해자를 위한 환경 조성과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특화된 개입과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우선 안전한 온라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소셜미디어 플랫폼, 웹사이트의 적극적 기여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이해할 수 있는 기반 대응과 환경 조성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대한 인식개선과 생존자 비난을 멈추는 문화 조성 등이 시급하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에 특화된 개입과 제도 개선과 관련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 특성을 반영한 심리지원 개입, 법률과 제도 개선, 수사방식의 개선 등이 강화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보라 한국여성인권진흥원장은 "이번 연구보고서를 통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지원을 위한 관련 기관들이 디지털 성범죄가 가지는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피해지원에 특화된 정책과 지원전략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leakwo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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