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침용 땅굴’ 계속 찾아야 한다[시평]
하마스 땅굴은 북한 기술 토대
첨단 전투력 무색하게 만들어
베트남 땅굴도 전승에 큰 기여
1974~1990년 땅굴 4개 찾아내
미 해병대는 20개 넘을 것 추정
핵 몰입하고 땅굴 잊으면 위험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기습으로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은 이스라엘이 27일 본격 지상작전을 시작함으로써 대규모 살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마스가 벌인 기습작전은 통상적인 테러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공격 초기에 자폭용 드론과 로켓을 집중 운용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방공 시스템인 아이언돔을 무력화했고, 패러글라이딩을 이용한 공중 침투로 8m 높이의 국경 장벽을 뛰어넘었다. 해안으로는 고무보트를 타고 기습 상륙했다. 순식간에 국경 인근 10여 개 도시와 마을을 장악했고, 무방비 상태이던 주민 200여 명을 납치했다. 기습이란 예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타격해 상대를 마비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말하는데, 하마스의 이번 공격은 완벽하게 이스라엘의 허(虛)를 찌른 작전이었다.
하마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은밀하게 구축해 온 땅굴을 통해 사전에 특수요원들을 침투시켰다. 그리고 이 특수요원들을 통해 이스라엘 국경지대의 조기 경보망을 차단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초기 기습작전을 여유 있게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땅굴이 군사작전에서 사용된 것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평시에는 성 내외부를 연결하는 은밀한 통로로 사용됐지만, 위기 때는 도피로나 피란시설로도 사용됐다. 근대 들어서는 교착된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축되기도 했는데, 적군에게 사전에 발각되지 않는다면 작전 성공을 보장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땅굴은 베트남의 꾸찌(Cu Chi) 터널이었다. 총 길이가 250㎞나 되며 그 속에는 병원과 침실·주방까지 마련돼 있어 베트콩들은 기습과 도주를 반복하며 게릴라전을 벌여 결국, 자유 월남을 패망시키는 데 한몫했던 것이다.
현재 주목받는 하마스의 가자(Gaza) 터널은 메트로(metro)라고 불릴 정도로 가자 전역을 연결하는 총연장 500㎞의 땅굴이다. 처음엔 가자지구 주민들이 국경 경비를 피해 생필품을 밀수하기 위한 루트로 건설됐으나, 점차 군사 목적으로 이용되기 시작해 지금은 하마스 요원들이 이동로, 무기·탄약 보관창고, 은신처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이스라엘로 연결된 통로는 납치·테러를 위한 특수작전 루트로도 사용된다.
주목할 점은, 이렇게 첨단 전투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땅굴을 뚫는 기술이 북한으로부터 전수됐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6·25전쟁 당시 유엔군에게 완전히 제공권을 뺏긴 상태였다. 계속되는 항공 폭격에서 살아남기 위해 방공호를 구축했는데, 점차 더 깊게 파고 들어갔고 규모도 키워 나갔다. 이 작업은 휴전 후에도 계속됐는데, 김일성이 1960년대에 ‘국방에서의 자위’를 국방정책의 기조로 삼으면서 북한 전역에서는 군사기지의 지하화가 추진됐다. 땅굴 속에 전투기 활주로를 건설했고, 해안 절벽지대에는 잠수함이 발진할 수 있는 은밀한 기지를 마련했다. 그뿐만 아니라, 휴전선 지역에는 암반을 따라 남침용 땅굴을 뚫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우리는 1974년 11월 15일, 연천지역 제25사단의 군사분계선을 순찰하던 병력이 지표면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고, 이것을 계기로 탐색한 끝에 첫 번째 땅굴을 찾아냈다. 이때부터 군은 본격적으로 전 휴전선 지역에서 땅굴 탐색작전을 폈는데, 당시 모든 일반전초(GOP) 상황실에서는 넓은 접시에 물을 담아 혹시라도 진동으로 물결이 이는지를 주시할 정도였다. 이런 정성과 노력 덕분에 그 이듬해인 1975년에 두 번째, 1978년에는 세 번째, 그리고 1990년에는 네 번째 땅굴을 발견했다.
이후 33년이 지나는 동안 추가적인 땅굴 발견은 없었다. 남북 정상의 만남이 경각심을 이완시킨 탓이었는지, 새로운 위협으로 등장한 ‘북핵’과 미사일 대응에 몰입했던 때문이었는지 우리에게서 땅굴은 잊혀 갔다. 그러던 중, 이번 이스라엘 전쟁이 우리에게 새삼 북한의 남침용 땅굴에 대한 경종을 울려준다. 1997년, 미 해병대가 제작한 ‘북한 핸드북’은 북한의 남침용 땅굴의 수를 20여 개로 추산했음을 잊지 말고 부디 땅굴 탐색작전에 박차를 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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