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동 속에 피어난 생기…메켈레가 들려준 최고의 시벨리우스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지휘계의 훈풍을 이끄는 클라우스 메켈레와 오슬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생기 있는 연주를 들려줬다.
지난 3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내한 공연에서 메켈레와 오슬로 필하모닉은 시벨리우스의 곡만으로 프로그램을 꾸몄다.
오슬로 필하모닉은 작곡가와의 친화성이 남다른 악단이어서 공연 전부터 많은 기대를 모았다. 악단이 가꿔온 음향 문화는 지휘자의 해석만큼이나 연주 결과에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첫 곡은 음울하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의 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였다. 유장한 잉글리시 호른의 솔로 악구가 인상적인 이 곡은 핀란드 설화 '칼레발라'에 등장하는 한 폭의 정경을 포착한 일종의 음악적 회화다.
곡은 신화의 주인공 중 하나인 레민케이넨이 마녀 로우히의 딸을 얻기 위해 죽음의 강인 투오넬라에 사는 백조를 사냥하러 떠난다는 내용을 담는다. 레민케이넨의 죽음을 예고하는 백조는 어둡고 으스스하지만 아름다운 존재다.
메켈레와 오슬로필은 이러한 작품의 분위기를 곡의 첫머리부터 인상적으로 표현했다. 고요하지만 어른대는 듯한 음영 변화가 시종일관 흐르면서도 현악과 관악의 질감이 살아 있는 높은 수준의 연주였다.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의 완성도 또한 뛰어났다. 협연자로 나선 자닌 얀선은 분명한 개성과 콘셉트를 가지고 연주에 임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그가 시종일관 악구들을 끊지 않고 가급적 한 호흡과 하나의 흐름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격렬한 악구나 서로 날 선 대비를 이루는 대목이 적지 않은 작품임에도 그는 악상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활을 다뤘다. 그러면서도 모든 세부의 뉘앙스와 리듬상의 강조를 탁월하게 전달했다.
얀선의 이러한 스타일은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효과를 낳았다. 바이올린의 호흡이 긴 지속음이나 가만히 부유하는 화성 덩어리가 많이 등장하는 관현악과 어울려 미묘한 조화를 이뤘다.
얀선의 독주와 관현악은 서로 다른 음역과 리듬으로 시종일관 대조를 이뤘지만 적어도 '숨의 길이'만큼은 일치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문에 독주자가 홀로 오케스트라에 맞설 때나, 전체에 녹아들었다가 다시 떨어져 나올 때 일체감을 느낄 수 있었다.
독주자가 개인이고 오케스트라가 북구의 자연이라면 얀선은 시종일관 자연의 일부이자 맞수로 자연과 연결성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2악장은 서정적이고 깊이가 있으며 고백적이었지만 동시에 가운데 부분은 상당히 강렬했다. 얀선은 고요한 분위기가 극적으로 고조되는 과정을 상당히 가파르게 표현했는데 어쩌면 이는 숨어있는 갈등을 드러낸 해석인지도 모른다.
2악장은 바이올린의 본래 목소리보다 낮고 나직한 선율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이올린이 저음의 둔중한 관현악의 세계와 일단 조화를 이뤄도 그것을 더 이상 이어 가기는 어려운데, 그러한 고뇌가 상승 선율에 실려 터져 나왔다. 얀선은 아름다운 선율을 지닌 2악장을 하나의 들리는 드라마로 표현했다.
한편 메켈레가 이끄는 오슬로필은 3악장을 아주 격렬한 타악적 리듬으로 표현했는데, 2악장의 내면성을 단번에 벗어나 거칠고 민속적인 인상을 부각했다. 얀선은 변화무쌍하면서도 단단했고 성실하면서도 다채로웠다.
2부에서는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이 연주되었다. 1부에서 보여준 것처럼 메켈레가 이끄는 오슬로필은 시벨리우스 음악의 핵심을 확실히 잡고 있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에서는 주선율을 맡는 악기뿐 아니라 음향적 배경을 이루는 악기나 그룹도 아주 상세하게 부각해야 한다. 뒤로 물러나 있던 배경이 앞으로 나와서 주인공과 대등해지거나 주인공을 뒤덮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압도적으로 증폭되었던 음향층이 다시 갈라지거나 흩어지면서 그 틈으로 다시 감춰졌던 선율이 솟아나는 입체적인 효과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이날 오슬로필은 그러한 시벨리우스 교향곡의 역동적 변화를 더없이 생생하게 들려주었다. 따뜻하고도 장엄한 호른으로 열리는 1악장에서 오슬로 필은 살아 움직이는 듯한 현악을 들려주었다.
뒤로 물러서 있을 때나 강렬하게 부각될 때, 다른 그룹과 앙상블로 엮일 때도 일사불란하고 맹렬했으며 그 밀도와 집중력이 대단했다.
지휘자 메켈레는 전체의 구조에 있어서는 상당한 절제를 발휘하면서도 디테일에 있어서는 과감하고도 용감한 시도로 흥미로운 음향을 계속 빚어냈다.
중음역의 비올라, 저음역의 첼로, 더블베이스는 투명하다 할 만큼 선명하게 부각되었는데, 일례로 3악장 더블베이스의 콜레뇨(활의 나무 부분을 긋는 것)는 통상적인 연주보다 훨씬 강조되어 특별한 질감을 전해주었다.
한두 차례 목관과 금관의 음정이 불안한 대목이 있었지만 아름답게 섞이면서도 선명성을 잃지 않았던 모든 목관과 금관 파트 또한 뛰어났다.
무엇보다 메켈레의 시벨리우스는 정중동 속의 생기 그 자체였다. 그는 27세의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여유로움과 27세의 젊음이 매 순간 투영된 듯한 생생한 디테일을 보여주었다.
lied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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