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믹여제' 김정은의 저력은 역시 어마무시했다
아이즈 ize 조성경(칼럼니스트)
때론 메시지보다 메신저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메시지의 의미가 무거울수록 더 그렇다. 심지어 그 메시지를 직설적으로 전하려고 할 때는 메신저의 역할이 더더욱 커진다. 누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거부감이 들거나 콧방귀를 뀔 수도 있고, 고개를 끄덕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겁고 직설적인 메시지에 기꺼이 호응하게 할 뿐 아니라 기립박수까지 치게 하는 탁월한 메신저도 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 중인 JTBC '힘쎈 여자 강남순'(극본 백미경, 연출 김정식)의 김정은이 그런 독보적인 존재다.
'힘쎈 여자 강남순'은 믿을 수 없는 괴력을 타고난 3대 모녀가 신종마약범죄의 실체를 파헤치는 코믹 판타지 히어로물로, 그 중심에 김정은이 있다. 타이틀롤 강남순 역을 맡은 이유미의 비중이 더 크기는 하지만, 남순의 엄마 황금주 역의 김정은이 무게중심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화제성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힘쎈 여자 강남순'은 요즘 드라마팬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로 일명 '뇌빼드'(뇌를 빼고 보는 드라마)다. 모계 혈통으로 어마무시한 괴력을 쓰는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만화 같은 설정 자체가 너무 디테일한 개연성을 따지면 안 되는 코미디라서다. 여기서 김정은이 오랜만에 자신의 주특기를 발휘하는 중이다. 2000년대 초반 코미디영화로 대한민국을 평정했던 김정은이 다시금 코믹연기로 팬들에게 '배꼽주의보'를 일으키며 큰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김정은이 연기하는 황금주는 극중 전남편 강봉고(이승준)의 말마따나 항상 "투머치"다. 이름처럼 의상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말이나 행동도 늘 과하다. 속 깊고 따뜻한 사람이지만, 언행은 과격하거나 위압적일 때가 많다. 괴력의 소유자인 데다 재벌도 능가하는 현금부자인 만큼 세상 무서운 것 없는 자신감이 밑바탕 됐다. 그런 '투머치'가 화면을 압도할지언정 부담스럽지 않고 즐겁게 웃으며 지켜보게 되는 건 김정은 특유의 매력 덕분이다.
그렇다고 '힘쎈 여자 강남순'이 마냥 아무 생각 없이 보게 되는 드라마도 아니다. 생각 없이 보게 하지는 않는 것이 김정은의 역할이기도 하다. 김정은은 드라마의 메시지를 마치 일타강사처럼 귀에 쏙쏙 박히게 전하고 있다. '힘쎈 여자 강남순'이 전하는 강력한 권선징악의 메시지, 돈과 힘을 올바른 곳에 써야 한다는 묵직한 교훈이 김정은의 탁월한 코믹함과 타고난 스윗함에 덧입혀져 거부감 없이 즐겁고 편안하게 들리는 '김정은 매직'으로 펼쳐지고 있다.
'힘쎈 여자 강남순'에는 다양한 메시지가 녹아있다. 힘센 여자가 가장이 돼 집안을 이끄는데, 힘없는 남자들이 그런 가장을 '독재자'라 여긴다. 가부장제에 대한 비틀기다. 드라마 단역이나 택배 기사 등 사회적 약자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가장 선명한 메시지는 부조리한 상류층에 대한 일갈이다. 더불어 특별한 힘을 가졌으면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메시지들이 하나하나 '지적질'이라 자칫 거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을 백미경 작가가 코미디로 재미있게 엮어내 팬들도 안심하고 마음의 빗장을 풀 수 있었다. 여기에 코믹여제 김정은을 캐스팅한 것이 신의 한수였다. 까딱하면 교조적으로 흐를 수 있는 메시지를 직설적이지만 코믹하게 풀어내는 황금주의 모습에서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정색하며 진지하게 능청을 떠는 김정은이 촌철살인을 하면 시청자들은 뇌를 빼고 웃다가도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생각 없이 웃던 와중에 김정은이 대사로 콕콕 집어서 중요한 메시지를 전해주면 없던 생각도 하게 된다. 밝은 에너지와 또렷한 음색으로 전해지는 김정은의 일성에 넋 놓고 웃던 팬들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거듭 반복하고 강조하는 메시지가 사실 '투머치'지만, 김정은에게 녹아든 팬들은 '맞아, 맞아'하며 맞장구를 치고 있다.
돌이켜 보면 김정은은 예전부터 탁월한 메신저였다. 2001년 BC카드 광고에서 외친 '부자되세요'로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이 말을 전국민적인 인사말로 등극시켰다. 지금이야 별거냐 할 수 있지만, 서슬 퍼런 꼰대들이 훨씬 더 많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천박하다며 야유를 받을 수도 있었던 것을 김정은이라는 메신저는 다정한 눈빛과 사랑스러운 말투로 전 국민의 마음을 녹이는 데 성공했다.
그렇게 부자 되라고 외치던 김정은이 이번에는 '책임감 있는 부자가 되라'는 메시지로 나섰으니 의미심장하다. 황금주라는 인물을 통해 포복절도하는 웃음 뒤에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고 있다.
웃기지만 대단한 카리스마의 김정은이다. '투머치'라고 혀를 내두르는 과장된 연기로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황금주를 김정은이 아니었다면 누가 소화했으랴. 김정은의 활약에 박수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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