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방해 한 학생에 '레드카드'…헌재 "교육적 목적"

박다영 기자 2023. 10. 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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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자리에 앉아 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방송법·방송문화진흥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방송법 개정안)의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해 절차상 문제가 없다며 각각 기각 결정을 내렸다. 2023.10.26/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교실에서 '레드카드' 제도를 운영해 수업을 방해한 학생에게 청소를 시킨 교사에게 아동학대 혐의가 있다며 기소유예한 검찰의 처분이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됐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 26일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교사 A씨가 제기한 헌법소원심판 청구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2021년 전라북도 전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였던 A씨는 '레드카드' 제도를 운영했다. 레드카드 옆에 이름이 붙으면 방과 후 교실 청소를 하는 것이었다. 교실 칠판에 레드카드를 붙여 두고 수업시간에 잘못한 학생이 있으면 A씨가 학생의 이름표를 레드카드 옆에 붙였다. 이름표가 붙은 학생들은 방과 후 교실 청소를 해야 했다.

같은 해 4월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페트병을 손으로 비틀어 큰 소리를 냈다. A씨는 이 학생의 이름표를 레드카드 옆에 붙였다. 학생이 방과 후 교실에 남아 빗자루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A씨는 하교를 지시했다.

이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가 사건 이후 등교를 거부하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야경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았다며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검찰은 지난해 4월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레드카드 옆에 이름표를 붙이고 아동을 하교시키지 않은 채 교실에 남겨 청소를 시킨 것이 아동의 정신건강과 발달에 해를 끼치는 학대행위라고 봤다.

A씨는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이번 결정은 레드카드가 교육 방법에는 해당하지만 '레드카드 교육 자체가 정상적 훈육에 해당한다'거나 '제도 자체만으로 학대가 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개별 상황에 따라 학대 여부가 판단돼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는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해당 학생의 정신건강 문제가 레드카드 때문인지 △A씨가 학생에게 청소를 지시한 것인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보고 검찰의 처분을 취소한다는 것이다.

헌재는 레드카드 제도가 교육 방법에 해당한다고 봤다. 헌재는 "레드카드 제도가 청구인과 학생들 사이의 약속이었다고 하는 A씨의 진술, 전라북도교육행정심판위원회가 A씨의 레드카드 제도 운영은 학교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A씨는 학생들 일반에 대해 교육적 목적으로 레드카드를 줬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했다.

학생의 정신건강에 위험을 끼친 것이 레드카드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헌재는 "피해아동에 대한 진단서에 피해아동이 레드카드를 받고 난 후 수치심을 심하게 느꼈다고 기재돼 있고 피해아동이 레드카드를 이유로 A씨를 '나쁜 선생님' 혹은 '감옥에 가야 할 나쁜 사람'이라고 진술한 사실에 비춰보면 A씨가 피해아동에 대한 악의적·부정적 태도에서 비롯된 폭언을 했다거나 피해아동에 대한 차별을 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며 "다만 이 사건 기록에는 피해아동의 반응을 유발한 A씨의 태도와 행위가 어떠하였는지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다"고 했다.

이어 "피해아동은 낙상사고, 학교폭력 피해 등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사건도 경험했으므로 야경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게 된 것이 레드카드에 기인했는지 아니면 다른 사건에 기인했는지를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검찰은 A씨가 학생에게 청소를 지시했다고 판단했으나 헌재는 이와 다르게 봤다. 학생 진술만으로 A씨가 청소를 시킨 사실은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A씨는 방과 후 남아서 청소하라는 명시적인 지시를 하지 않았다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며 "레드카드 제도는 본인과 학생들 사이 약속이기 때문에 피해아동이 명시적 지시 없이도 방과 후 교실에 남아있었을 것이라 진술했다. A씨의 묵시적·명시적 지시가 있었을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지만 피해아동의 진술만으로 A씨가 남아서 청소를 하라는 명시적인 지시를 했는지, 레드카드를 줬기 때문에 사실상 남아서 청소를 하라는 묵시적인 지시에 이르게 되는 것인지가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헌재는 "이 사건 기소유예처분에 중대한 수사미진의 잘못이 있다고 판단해 이를 취소한다"고 했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해당 학생의 학부모가 사건 이후 학교에 지속적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한 행위가 교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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