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예의를 배웠다" 일본시리즈 승리투수는 그 순간을 아직도 잊지 않았다
[OSEN=이상학 기자] 오릭스 버팔로스는 지난 28일 2023 일본시리즈 1차전에서 3년 연속 사와무라상에 빛나는 최고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가 5⅔이닝 10피안타 1볼넷 7탈삼진 7실점으로 무너져 한신 타이거즈에 0-8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29일 열린 2차전에서 8-0, 똑같은 스코어로 설욕하며 시리즈를 1승1패 원점으로 되돌렸다.
2차전 오릭스의 반격의 중심에 바로 4년차 좌완 투수 미야기 히로야(22)가 있었다. 선발로 나온 미야기는 6회까지 104개 공을 던지며 4피안타 1볼넷 5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한신 강타선을 제압했다. 최고 148km 직구에 최저 85km 슬로 커브로 완급 조절하며 날카로운 슬라이더, 포크볼까지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빼어난 투구만큼 배려심 가득한 행동으로도 눈길을 끌었다. 일본 야구전문매체 ‘풀카운트’는 30일 ‘큰 무대에서도 보여주는 미야기의 배려, 한국에서 배운 예의’라는 제목하에 이닝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 상대 타자의 방망이를 주워 볼보이에게 건네주는 행동을 조명했다.
시즌 중에도 자주 보인 모습인데 일본시리즈라는 큰 경기에서도 미야기의 행동은 그대로였다. 풀카운트는 ‘미야기가 이런 스포츠맨십을 배운 것은 18살 때였다. 일본 고교대표팀에 선발된 미야기는 2019년 한국에서 열린 U-18 야구월드컵에 출전, 슈퍼라운드 2차전 한국과의 경기에서 던진 1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야기는 “몸에 맞는 볼이 나왔는데 타자 머리를 맞혔다. 바로 모자를 벗고 사과하자 상대 선수도 고개를 숙였다. 그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며 “공을 맞히는 순간 야구장 분위기가 달라졌는데 상대 선수가 웃어주자 관중석에서 따뜻한 박수를 쳐줘 안심했던 기억이 난다”고 떠올렸다.
미야기의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그날은 2019년 9월6일 부산 기장군에서 열린 U-18 야구월드컵 슈퍼라운드 한일전이다. 당시 일본 구원투수로 나온 미야기는 9회 2사 1루에서 한국 타자의 머리를 맞혔다. 공이 손에서 빠져 타자의 헬멧을 맞혔다. 타자는 다행히 큰 충격을 받지 않은 듯 1루로 걸어갔고, 미야기는 모자를 벗어 미안함을 표시했다. 그러자 타자도 헬멧을 벗고 허리 숙여 사과를 받아들였다.
그때 그 타자는 지금 키움 히어로즈의 미래로 떠오른 외야수 이주형(22)이다. 당시 한일관계 악화로 긴장감이 고조된 시기였지만 미야기와 이주형, 두 한일 청소년 선수들의 성숙된 스포츠맨십은 깊은 울림을 줬다.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에서도 SNS를 통해 ‘존중(Respect)’라는 단어와 함께 이 장면을 영상으로 올려 화제가 됐다.
미야기는 “공이 손에서 완전히 빠졌다. 1루로 걸어갈 때 몇 번이나 사과했고, 상대 선수도 눈이 마주쳤을 때 ‘괜찮다’는 느낌으로 말해줬다. 경기 중인데도 (사과를 받아주기 위해) 헬멧까지 벗어줘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풀카운트에선 ‘국제대회에서 배운 예의는 지금도 매 경기 살아 쉼쉬고 있다’고 전했다.
171cm 작은 키에도 좌완 스리쿼터로 이중 키킹과 완급 조절로 타이밍을 빼앗는 데 능한 미야기는 2019년 드래프트 1순위로 오릭스에 입단했다. 2021년 첫 풀타임 시즌을 맞아 23경기(147이닝) 13승4패 평균자책점 2.51로 활약하며 퍼시픽리그 신인왕에 올랐다. 지난해에도 24경기(148⅓이닝) 11승8패 평균자책점 3.16으로 활약하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대표팀에도 발탁됐다. 1라운드 체코전 1경기 구원등판(5이닝 1실점 세이브)이 전부였지만 일본의 WBC 우승 멤버로 함께했다. 여세를 몰아 올해도 22경기(146⅔이닝) 10승4패 평균자책점 2.27로 최고 시즌을 보냈다.
미야기의 공에 맞았던 이주형은 타격 재능을 인정받아 2020년 2차 2라운드 전체 13순위로 LG 트윈스 지명을 받았다. 현역으로 군복무를 일찍 해결했지만 선수층이 두꺼운 LG에선 1군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 대부분 시간을 2군에 있었만 지난 7월말 키움으로 트레이드된 뒤 본격적인 1군 기회가 받으면서 잠재력이 폭발했다. 키움 이적 후 51경기 타율 3할3푼(200타수 66안타) 6홈런 34타점 OPS .911로 활약하며 제2의 이정후로 기대를 기대감을 크게 높였다. 시즌 막판 왼쪽 허벅지 근육 부상을 당하면서 내달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 대표팀 합류가 불발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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