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씩 사라지는 여가부 사업…가정폭력 교화도 '폐지' 수순
"사업효과 입증 부족" 해명하지만…작년 참석자 8천명 '역대 최고'
의원들 "부처 폐지 못 하는 대신 주요사업 계속 폐지돼" 비판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김다혜 황윤기 기자 = 여성가족부가 내년 가정폭력 가해자 교정 프로그램 예산을 전액 삭감하면서 법무부 등 유관 부처로 이관했다고 밝혔으나, 제대로 된 논의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현장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완전한 분리가 어려운 가정폭력 특성상 교정 교육은 필수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여가부 폐지가 계속 미뤄지는 대신 부처 주요 사업이 하나둘씩 폐지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31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이 여가부에서 받은 '2024년도 예산안 사업설명자료'를 보면 가정폭력 가해자 교정치료 프로그램 운영 사업비와 관련 상담 실적이 아예 빠졌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전년과 똑같이 예산 7억9천100만원을 책정하면서 "가해자 성행을 교정해 피해율 감소를 기대한다"고 했는데, 이번에 전격적으로 폐지된 것이다.
2004년 여가부(당시 여성부)가 가정폭력의 대물림 현상을 막는다는 취지 등으로 마련한 사업이 20년 만에 좌초될 위기에 처한 셈이다.
여가부는 설명자료에서 해당 사업 운영을 법무부로 일원화했고, 법무부·법원행정처와 협력해 차질 없이 이뤄지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가 민주당 양이원영 위원실을 통해 타 부처와 협의 내용을 묻자 여가부는 "법원행정처, 법무부 등과 예산 상황을 공유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언급된 부처의 입장은 달랐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여가부에서 가해자 교정 치료 프로그램과 관련해 이관되거나, 협의 등의 통지를 받은 것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도 "가정폭력 상담소에 지원하는 예산이 없을뿐더러, 여가부와 함께 사업을 운영하는 것은 범죄피해자 관련 말고는 없다"고 했다.
교정치료 관련기관 등 실제 현장에서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양 의원실이 해당 사업의 이관 등을 피교육자나 교육기관에 대해 공지했는지 묻자 여가부는 "해당 내역 없음"이라고 답했다.
김양순 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 회장은 "여가부로부터 통지받은 게 없다"며 "뒤늦게 소식을 듣고 여가부에 물었더니 그렇게 결정됐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전했다.
여가부는 '2023년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 보고서'에서 이 사업의 삭감 근거로 ▲ 성과관리체계 불명확 ▲ 사업효과 입증 자료 부족 ▲ 1건의 부정수급 발견 등을 댔다.
하지만 이 사업 참여 인원이 크게 늘어난 점에 비춰보면 이 같은 설명은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양 의원실에 따르면 2019∼2022년 해당 사업의 연평균 참여 인원은 7천300명에 육박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7천984명이 참석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 기간 이뤄진 사전면담과 개별상담, 집단상담 등 연평균 운영 실적도 1만5천200건이 넘었다.
김 회장은 "코로나19로 밀린 상담이 지난해 이뤄졌고, 아동학대 신고율이 높아진 결과"라며 "앞으로 가정폭력에 대한 사회적인 경각심이 높아지고 해당 프로그램 이용도 늘 것이 분명한데, 예산을 없애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10여년째 이 업무를 해온 안경옥 윈주가정폭력성폭력통합상담소 소장도 "대부분 가정폭력 행위자는 언젠가 가정으로 복귀할 수밖에 없음을 감안하면 꼭 필요한 사업"이라며 "당장 두 달 후에 어떻게 운영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아울러 폭력 피해자 보호 예산도 줄줄이 삭감되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는 상황이다.
여가부는 '가정폭력 상담소 운영' 사업 예산을 올해 116억3천700만원에서 27.5%(31억9천700만원) 삭감한 84억4천만원으로 편성했다.
이에 따라 상담소도 전국 127개소에서 97개소로, 관련 인력도 662명에서 457명으로 줄인다.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비는 136억4천400만원에서 132억5천400만원으로, 폭력 피해 여성 주거지원 운영 예산은 11억500만원에서 10억4천100만원으로 삭감한다.
양이원영 의원은 "여가부가 전문성을 갖고 진행하던 사업을 '부처 간 유사 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폐지하고 방기하고 있다"며 "부처 폐지를 못 하는 대신 주요 업무를 하나씩 폐지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신현영 의원도 "사업 통합을 명분으로 여성정책이 속속 실종되고 있다"며 "여가부 조직을 정상화해 여성정책을 제대로 세워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여가부가 피해자 지원 전담 부처인 만큼 가해자 지원은 법무부가 맞을 것으로 여겨 내린 결정이며, 적발된 부정수급 1건도 삭감 이유"라며 "법무부와 협의했으나 '어렵다'는 회신을 받았고, 법원행정처에도 상황을 설명하고 협조를 구했다"고 해명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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