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첫 인터뷰, 배우 송중기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한 해를 보낸 송중기를 만났다.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지냅니다”

깜짝 결혼과 출산 등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배우 송중기가 작품 선택에서도 의외의 행보로 화제를 이어가고 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송중기는 넷플릭스 영화 <승리호>, 드라마 <빈센조>와 <재벌집 막내아들>까지 연이은 메가 히트작으로 전 세계 팬을 사로잡았다. 그런 그가 이번엔 모두의 예상과 달리 깊고 강렬한 누아르 작품을 선택하며 파격 변신에 나섰다.

그가 선택한 영화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을 만나 위태로운 세계에 함께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그린 누아르로, 올해 개최된 76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섹션에 초청됐다.

송중기는 극 중 냉혹한 현실을 사는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으로 분했다. 외적인 변화와 더불어 속을 짐작하기 어려운 무표정한 얼굴, 중저음의 보이스와 더 깊어진 눈빛으로 전작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적 캐릭터를 완성했다. 매끈하게 잘 다듬어진 몸이 아닌 생존을 다투며 살아온 고단한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체격을 만들기 위해 촬영 내내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거쳤다는 후문이다.

<화란>의 시나리오에 매료돼 노개런티로 출연을 자처할 만큼 작품에 큰 애정을 보였던 송중기는 스토리의 긴장감을 조이는 강력한 흡인력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송중기는 “한국 영화에서 꼭 만들어져야만 하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됐고 이런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고 노개런티에도 고민 없이 출연한 이유를 밝혔다. 영화 <화란>은 송중기를 비롯해 신예 홍사빈과 큰 사랑을 받는 가수 김형서(비비)까지 합류해 다채로운 연기 시너지를 선사한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송중기를 만나 <화란>의 비하인드와 근황을 전해 들었다.

많이 스산한 작품이다. 의외의 선택 아닌가?

예전에 스산한 느낌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었는데 못 한 적이 있어 아쉬움이 있었다. 못 가져본 느낌의 작품이라 욕심이 났다. 우리가 아는, 이른바 흥행 공식에 맞춰진 시나리오들에 식상함을 느꼈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다. 배우로서 답답함이 있었는데 이 작품을 보고 신선함을 느꼈다. 어둑어둑하고 스산해서 좋았다.

하고 싶다고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이 있었나?

제안받은 다른 작품을 거절하러 나간 자리였다. 그 자리에 있던 분이 친한 형님인데 “그럼 무슨 작품을 하고 싶냐”고 묻기에 무거운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받게 됐다. 수익성이 큰 작품이 아니라 회사에서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심지어 노개런티로 출연하는 작품이라 회사에서 반대할 줄 알았다. 그런데 대표님이 시나리오를 보고선 “해야겠는데” 하더라. 칸영화제가 최종 목적지는 아니지만 이 작품으로 갈 수 있어 영광이었다. 우리 생각이 아예 틀리지는 않았구나 하는 근거가 됐다.

“결혼 초 속상한 일 많았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아이 보며 모든 게 감사하다.
더 잘 살겠다”

신인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칸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에 초대됐다. 어쩌면 신인 감독이라 더욱 그 영광을 누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신인 감독 작품이기에 걱정한 부분도 있었는데 반대로 신인 감독이라 더욱 개성 있게 봐주시는 것 같다. 유럽에서 더욱 그렇다. 기존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영화로 인식하는 것 같다. 이 작품은 내가 한국 영화 중에서 너무나 애정하는 <무뢰한>의 제작진이 함께하는 작품이다. 극 중 전도연 선배를 향한 김남길 선배의 감정이 마음에 들었는데, 처음 <화란>의 대본을 봤을 때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믿음이 갔다.

누아르나 갱스터 영화에 끌린 건가?

그렇진 않다. 갱스터 영화라고 하면 이른바 ‘건달 영화’라고 해석될 때가 있더라. 건달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이 작품의 관계성이 좋았다. 또한 가정 폭력을 다루는 소재가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요즘 내가 신선하고 새로운 소재에 많이 끌리는 시기인 것 같다. 지금 촬영하는 작품이나 이미 찍어놓은 작품도 신선한 것 위주로 선택했다.

이른바 ‘귀공자 이미지’인데, 이번 작품을 통해 외적인 변화를 많이 줬다.

내 얼굴에 상처가 있다. 그동안 작품을 할 때는 이 상처를 보이지 않게 커버했다면 이번엔 더 부각시켜 분장했다. 분장을 하면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게 있다. 가정 내 학대에 관한 스토리라 그 역할에 맞게 흉터가 더 잘 보이길 바라며 촬영을 했다. 이 영화는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메타포도 많고 대사도 적다.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영화다. 보는 분들이 비주얼과 함께 느끼셨으면 좋겠다.

인물에 쉽게 젖어들었나?

아무래도 가장 신경을 쓴 건 호흡을 맞춘 홍사빈이라는 배우가 신인인 동시에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홍사빈에 비해 나는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배우라 오히려 그런 상황 때문에 그의 플롯을 망칠까 봐 신경을 많이 썼다. 주인공인 사빈이가 내미는 손을 잡고 그것에 맞게 따라가자 싶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자’ 했는데 나도 야망이 있는 배우인지라 자꾸 연기에 힘을 주려고 하더라. 계속 채찍질을 하며 임했다.

신인 배우인 홍사빈이나 김형서(비비)는 오히려 송중기라는 배우에 기대지 않았을까?

맞다. 책임감이 컸다. 나도 워낙 선배들한테 혜택을 많이 받은 배우다. <재벌집 막내아들>을 촬영할 때 현장에서 막내뻘이었는데 이성민 선배에게 푹 안겨 촬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후배가 내게 기댈 수 있었으면 너무 감사하다.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상업적인 작품도 아니다. 이런 선택들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쌓는 데 도움이 됐나?

내가 진짜 깜냥이 안 된다. 그런 내게 조금 도움이 되지 않나 싶다. 어쨌든 내가 선택한 작품이기에 홍보 활동도 책임감 있게 열심히 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연기의 방향성이 달라진 게 있나?

힘을 빼려고 노력했다. 그 방향성이 좀 더 연기를 잘할 수 있게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차기작인 <로기완>(2023)이라는 영화도 준비했다. ‘준기야, 힘 좀 빼자’라는 주문을 계속 걸며 도전하고 있다. 영화가 개봉되고 피드백을 받으면 그 결과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랜만에 메인(주연)이 아닌 주조연을 맡아 열연했다. 그 소감도 궁금하다.

솔직히 내려놔야 하는데 쉽지 않더라.(웃음) 내가 주인공이 아니고 신인 배우가 주인공인 작품이지만 홍보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내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고 내게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것조차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노개런티로 출연한 것이 보도되자 여러 곳에서 “우리한테는 왜 받냐”고 농담 어린 푸념도 많이 들었다. 그렇듯 <화란>은 내게 의미가 남다르다. 그래서 진정성 있게 잘 홍보하고 싶다. 많은 분이 보시고 피드백을 해주면 좋겠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신인 배우 홍사빈과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모르지만 앳된 외모와는 달리 묵직한 성격을 가진 친구다. 신인 배우에게 주인공이라는 몫은 당연히 큰 부담일 텐데도 차분히 알아서 잘하더라. 아마도 같은 소속사 배우인 황정민 선배에게 교육을 받고 온 것 같다.(웃음) 워낙 바르게 자란 친구이기도 하다. 호흡을 맞추다 보니 이 친구가 왜 뽑혔는지 대번에 알겠더라. 덕분에 굉장히 즐겁게 작업했다. 헝가리에서 영화 <로기완>을 찍고 있을 때 황정민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칭찬을 해주셔서 뭉클했다.

이성민 배우를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송중기 배우에 대해 칭찬을 많이 하더라. 특히 “송중기식 삶의 균형에 대해 많이 배웠다”는 표현을 했다. 연예인이지만 일상적인 삶을 사는 것에 대한 칭찬인 듯싶은데,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과찬이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선배님인데 그런 칭찬을 해주셨다니 기분이 좋으면서 쑥스럽기도 하다. 작품을 할 때 같이 식사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사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마스크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나보다 더 걱정을 많이 해주시더라.(웃음) 개인적으로 나는 연예인이라고 숨어 지내면 나만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 나도 한 인간인데 주변을 의식하며 사는 게 좋을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런 자세가 내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 인생관에 대해 질문을 이어가자면, 가족이 생겼는데 거기서 오는 딜레마는 없나?

이제 막 100일이 된 아이와 아내가 신경 쓰이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숨어 사는 게 좋은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느낀 대로 실천하고 살아야 아이에게도 교육이 되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도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연예인이라고 숨어 지내면 나만 더 외로워지는 것 같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그런 자세가 내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아내는 지금 한국어 공부 중”

영화배우인 아내의 이번 작품에 대한 평도 궁금하다.

자막이 없어 아직 못 봤는데, 얼마 전에 관계자가 자막 버전을 개인적으로 보내주셨다. 현재는 영화 홍보 때문에 내가 정신이 없다. 바쁜 시기가 끝나면 보여줄 예정이다. 현재 아내는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아내와 일에 관한 얘기도 자주 하나?

칸영화제에 가게 돼서 신나고 들떠 있으니까 “컴다운”이라고 한마디 던지더라. 아내는 이미 세계 3대 영화제에 다 다녀온 사람이다. 들떠 있는 감정을 들키지 말고 잘 다녀오라는 조언만 해주는 정도다. 일에 관한 얘기는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아빠가 됐다.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나?

크게 달리진 건 없다. 아이가 이제 목덜미에 힘이 생겨 오른쪽과 왼쪽을 가누는 정도가 됐다. 아직 뒤집기까지는 못 한다. 아이가 일주일마다 큰다. 감사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깜짝 결혼이라 애초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힘든 부분은 없었나?

속상한 일도 있었지만 감사하게도 아기가 태어나면서 속상했던 마음이 다 사라지더라. 착하게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나니까 모든 게 감사하더라.

해외 오디션을 보고 있다고 들었다.

보고는 있는데 자꾸 떨어져서….(웃음) 사실 아내를 만나기 전부터 계속 해외 오디션을 봐왔다. 요즘은 아내가 주변 친구들도 소개해주는 등 도움을 많이 주고 있다. 해외 진출은 아내가 외국인이라는 영향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도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시대가 변하지 않았나. 다른 문화권에서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다. 언어적인 부분을 예전에 열심히 해놓을걸 하는 후회도 된다. 지루해지지 않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해외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다. 이국적인 풍경을 보면 다양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할 것 같은데, 연출이나 제작에도 관심이 생길 것 같다.

어떻게 귀신같이 그걸 알아차렸나. 맞다. 휴대폰에 써놓고 있지만 공개할 순 없다. 요즘 자주 듣는 질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출에는 관심이 없고 제작에는 관심이 많다. 무언가를 기획하는 게 재미있더라. 저희 회사도 현재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그 일에 같이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끊임없이 작품을 이어가고 있다. 원동력은 어디서 오나?

특별히 거창한 게 있진 않다. 다만 내가 솔직한 성격이라 싫은데 좋은 척을 못 한다. 작품을 할 때도 내가 좋아서 선택해야 에너지가 생긴다. 요즘은 안 해본 걸 해보고 싶다. 안 해본 것에 도전하는 게 재미있더라. 그게 에너지의 원동력이다.

취재 : 하은정 기자 | 사진 : 하이지음스튜디오, 송중기 인스타그램, 송중기 팬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