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악' 지창욱, 모호한 경계에 선 남자 [인터뷰]

송오정 기자 2023. 10. 3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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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악 지창욱 인터뷰 /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선하고 건실하던 얼굴이 피칠갑을 하고 냉소적인 얼굴로 변했다.

'최악의 악' 지창욱이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통해 모호하고 아슬아슬한 관계성, 그리고 경찰인지 깡패인지 알 수 없게 된 '준모'를 완성해 냈다.

지난 25일 모든 회차가 공개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극본 장민석·연출 한동욱)은 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 강남 연합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경찰 ‘준모’가 조직에 잠입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범죄 액션 드라마. 지창욱은 언더커버 경찰 '준모' 역으로 분했다.

첫 촬영은 지난해 8월 시작됐다. 2022년 초 대본을 받은 후에도 몇 개월이 지난 뒤에야 첫 촬영이 시작되고, 후반작업에만 6개월이 걸리는 등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지창욱은 완성된 '최악의 악'을 만날 수 있었다.

완성된 작품을 본 소감에 대해 지창욱은 "처음에 우리 작품에 무드는 상상했던 것대로 잘 표현이 됐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볼 수 없어서 가늠이 안 되더라. 감히 제가 예측하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자신없진 않았다. 과정도 과정이고 너무 치열하게 작업해서 부끄럽진 않았다"면서 겸손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자신감만큼이나 '최악의 악'은 매 회차가 공개될 때마다 입소문을 타고 시청자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뭇남성들의 로망이라는 누아르 장르는 반대로 일부 여성 시청자에겐 장벽이 되기도 한다. 여성은 철저히 소외되거나 소모품으로 소비만 될까 우려스럽지만, '최악의 악'은 남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알면서도 파멸을 향해 걸어가는 캐릭터들 간 절절하고 씁쓸한 관계성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관계성을 더욱 깊이 있게 보여 줄 수 있었단 점에서, 지창욱은 영화보다 시리즈물로 적합하다 판단했다.

아울러 '최악의 악'은 잠입경찰을 소재로 하면서 여러 유명 언더커버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지창욱은 '우리만의 색깔'을 차별점으로 꼽았다. "무채색만 아니라 핑크도 있고, 네온빛 톤의 의상조차 다른 누아르와 좀 다르다"라고 말한 지창욱은 "처음에 잡은 톤앤매너도 강남연합을 폭력조직이 아니라 멜빵바지 입고 노랗게 탈색하고 불량서클 같은 느낌이다. 강남 친구들이 만든 집단이다. 그런 것부터 조금 색다른 거 같다"고 말했다

또한 "치정이 섞인, 인물들간 깊은 관계가 매력적인 거 같다. 사실 영화 '신세계'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 좀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던 건 박준모란 인물이 능동적으로 움직이면 좋게다 생각했다. 극적이었으면 했다. 시리즈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무너지는 준모를 많이 빌드업해 나간 거 같다"라고 말했다.


준모는 의정(임세미), 기철(위하준)과 일종의 삼각관계를 이루는데, 이러한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지창욱은 로맨스가 아니라 갈등의 시작점으로 접근했다. "인물들이 틀어지는 과정이라고 봤다. 의정이와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본의 아니게 관계가 틀어지는 과정의 이야기가 재미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준모'는 아내 의정만 아니라 '해란'(김현서)에게 의도적으로 접근, 두 여성 사이 미묘한 관계를 그려낸다. 아내가 있지만 수사를 위해 해란에게 접근하면서 생겨나는 그 '미묘한' 지점을 위해, 지창욱은 "여지를 두고 연기했다고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준모가 '해련이를 좋아한 거야? 좋아하지 않는 거야?' 이런 걸 단정하지 않았다"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더욱 깊어지는 갈등과 복잡하게 얽히는 관계성을 위해 미묘한 선을 따라 연기했다고 말했다.

지창욱은 '브로맨스' 혹은 '멜로'를 굳이 의식하지 않았다. 지창욱은 "서로의 관계나 기싸움, 수싸움 같은 걸 표현하고 싶었다. 멜로라고 생각하는 순간 작품의 중심이 틀어질 거 같더라"면서도 "제가 멜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해서 멜로가 빠지는 건 아니다. 보시는 시청자의 몫이니, 연민이나 사랑에 대한 감정을 읽어주실 것이란 믿음은 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한중일 마약 카르텔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작전을 수행하면서 준모에게는 꽤나 가혹하다 싶은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지창욱은 "오히려 준모를 더 극한으로 밀어 넣을수록 변화와 틀어짐 무너짐이 더 극대화될 것이라 생각했다"라면서 '가혹하다'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처가 식구 중 자신을 가장 아껴주고 편이 돼주던 장모님을 떠나보내면서도 사위로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순간은 준모와 조창식(이정헌) 부장검사의 균열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조 검사는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워 준모를 벼랑끝으로 내모는 인물이다. 아내를 포함한 엘리트 경찰에 대한 자격지심과 자존심, 특진이 걸린 임무, 경찰로서의 사명감 등 복합한 이유로 준모는 조 검사에게 일종의 '강요된 선택'에 내몰렸다. 지창욱은 준모의 순간의 선택 하나 하나에 대해 "관성의 법칙처럼,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보였으면 했다. 돌이켜보고 돌아가자니 정당화될 수 없는 선택들이었고, 모두 준모의 자기합리화 과정이라고 본다"라고 설명했다.

회차가 공개될수록 경찰 준모와 강남 연합 리더 기철의 모습이 역전된다. 경찰이지만 그 누구보다 마약 거래를 성사시키려 노력하며 거칠어지는 준모, 한국 마약 거래 중심에 선 인물이지만 사랑을 위해 모든 걸 내려놓고 평범함을 자처하는 기철의 모습은 꽤나 역설적이다. 이에 현장에선 준모에 대해 농담처럼 "이 정도면 깡패가 더 어울리는 거 아니냐"란 말이 나오기도 했다고.


두 사람이 서로 반전되는 모습은 연기만 아니라 비주얼적인 면에서도 드러난다. "투박한 시골형사에서 조직 막내로 들어가고, 막내에서 기철의 오른팔까지 올라가면서 기철처럼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변한다. 반면 기철은 무채색으로 변해간다"면서 "서로 대비되는 지점이 있어서 의상이나 태도에서 명확하게 보여진다. 의도를 하고 만들어낸 부분이 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외적인 부분을) 설정했다"라고 밝혔다.

누아르에서 빠질 수 없는 대규모 액션신에서 '달라진' 준모의 비주얼이 폭발한다. 의정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 준모가 피철갑을 한 악마와 같은 모습으로 변모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준모의 등장 전·후로 나눠 3,4일이 소요됐다. 장소 변경부터 액션 합을 맞추는 과정 등 준비부터 쉽지 않았다. 지창욱은 대규모 액션신에 대해 "준모가 변해버린 모습을 의정이 대면하는 장면이 있는데 안타깝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더라. 여러 감정이 섞였으면 했다"라고 말했다.

편집과정에서 원테이크 촬영기법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아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감정이나 관계가 더 부각되는 게 좋았다. 액션만 남았다면 우리가 의도가 잘못됐나 싶었을 거 같다. 아쉬운 만큼 만족스럽고 재미있었다"라고 이야기했다.

'최악의 악'은 선과 악이 공존하는 지창욱의 양면적 이미지를을 극대화한 작품이란 평가됐다. 다층적이고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본인 이미지에 대해 지창욱은 "인물이 감정적로 다채롭고 표현할 게 많다는 건 즐거운 작업인 거 같다. 톤 앤 매너에 따라 절제하고 이런 것도 좋은데, 다채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즐거운 거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에서 지창욱은 '최악의 악'에서 선과 악을 구분 짓지 않고 아슬아슬한 선을 따라 걸었다.

"굳이 무언갈 표현할 때 선과 악으로 구분 짓지 않았어요. 선택일 뿐이죠. 선한지 악한지에 대해 굳이 구분짓지 않았어요. '최악의 악'이란 제목이 개인적으론 거창하지 않았나 싶어요. 누가 더 최악이냐 판단해야 할 것 같은 제목인데, 저는 이 작품을 할 때 악이 뭔지, 선이 뭔지를 판단하는 게 아니라 피폐해지는 과정이나 선택의 결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스포츠투데이 송오정 기자 ent@st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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