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병 의료기기’ 국가가 직접 구해준다… 치료약자의 안전망 역할[안전한 食·醫·藥, 국민건강 일군다]

권도경 기자 2023. 10.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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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전한 食·醫·藥, 국민건강 일군다
식약처,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제도
4년간 7791개 제품 직접 수입
인공혈관서 출발 30개품목으로
복합심장기형 영유아 등 수혜
온라인 신청하면 전문위 검토
구매·운송비 등 실비만 청구
비수도권 신속 공급체계 구축
게티이미지뱅크

2살인 A 양은 ‘복합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났다. ‘방실중격결손’으로 심방과 심실에 모두 구멍이 나 있었고, 좌심실과 좌심방 사이에 있는 승모판막이 닫히지 않는 ‘승모판막 역류’를 앓고 있었다. A 양을 수술하려면 직경 15㎜ 이하 인공심장판막이 필요했다. 하지만 국내 수입되는 인공심장판막 중에서 가장 작은 크기는 16.2㎜였다. 국내 연간 사용 규모가 15명 정도로 매우 적어 의료기기 제조·수입업체가 잘 공급하지 않아서다. 이에 환아가 직경이 큰 인공심장판막을 넣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랄 때까지 수술을 미루거나 환아 심장 크기에 맞지 않는 기계판막으로 무리하게 수술하기도 했다. 수술을 미룰 경우에는 병세가 악화되거나 숨질 수도 있고, 기계판막을 사용하면 수술 예후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A 양은 지난 3월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무사히 마쳤다. 아이는 현재 퇴원한 후 통원 치료를 다니는 중이다. 이는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제도’ 덕분에 15㎜ 이하 인공심장판막을 제공받았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희귀·난치 질환자를 위한 의료기기가 국내에 공급되지 않을 경우 국가가 해외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구입해 환자가 치료받을 수 있도록 공급하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9년 6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지난 4년간 30개 제품이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로 지정됐다. 식약처는 총 7791개 제품을 직접 수입해 희귀·난치 질환자를 치료하는 데 지원했다.

◇치료 약자 지키는 사회안전망 역할 톡톡 = 이 제도는 시행된 지 4년 만에 공급량과 지역 거점 확대 등을 통해 희귀·난치병 환자들의 치료 기회를 넓히는 ‘사회안전망’으로 자리 잡았다.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제도가 도입된 계기는 ‘고어(GORE)사 인공혈관 공급 중단 사태’다.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반드시 필요한 인공혈관을 공급하던 고어사는 2017년 10월 낮은 보험수가 등을 이유로 한국에서 철수했다. 의사와 병원이 그동안 확보한 인공혈관 재고가 2019년 2월부터 떨어지기 시작하자 심장병 환아들이 제때 수술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의료기기는 생명과 직결된 만큼 시장 논리에만 맡겨둘 수는 없었다. 이에 식약처는 희귀·난치 질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의료기기를 직접 수입하기로 했다. 2019년 6월 의료기기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정보원)이 관련 업무를 맡았다.

출발점은 선천성 심장병 수술에 필요한 인공혈관이었지만 대상 제품은 30개로 많아졌다. 여러 인체 조직과 혈관용 스텐트, 봉합사 등이 다수 포함됐다. 눈꺼풀이 처지는 질병인 안검하수를 앓는 영유아 치료에 사용되는 실리콘 줄이 대표적인 예다. 안검하수는 영유아에게 발생하면 실명을 초래할 정도로 위험한 질병이다. 성인들은 자신의 허벅지에서 대퇴근막을 추출한 후 눈꺼풀에 이식해 안검하수를 치료하지만 3세 미만 영유아에게는 불가능한 시술이다. 이에 대퇴근막을 대신할 수 있는 실리콘 줄이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로 지정됐다. 최근 2살 B 군은 8월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실리콘 줄을 이용해 안검하수 치료를 받은 후 회복됐다.

◇공급신청서만 작성해 제출…실비만으로 공급 = 병원이나 환자 등이 국내에 허가되지 않거나 수입되지 않은 의료기기 공급을 요청하면 전문위원회를 열고 지정 타당성을 검토한 후 수입과 공급을 결정한다. 별다른 신청이 없더라도 공급이 불안정한 의료기기가 파악되면 전문위가 구매 여부를 검토한다. 제조사별 의료기기 수입은 연도별·반기별·분기별 공급계획에 따라 추진된다. 수입된 의료기기는 정보원이 수입과 통관 절차를 거쳐 국내에 들여온 후 계약된 물류·유통업체를 통해 보관·관리된다. 환자나 의료기관이 요청하면 의료기기를 전달하게 된다. 환자와 병원은 공급신청서만 작성해서 정보원 홈페이지(nids.or.kr)에 제출하면 된다. 진단서를 첨부하지 않고 신청서만 제출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해 신청 편의성을 높였다. 홈페이지에서 ‘희소의료기기’ 코너를 누르면 공급신청서류 양식과 공급대상 의료기기 세부정보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만약 지정되지 않은 의료기기의 지정과 공급을 원한다면 신규 지정 신청을 한 후 공급 요청도 할 수 있다.

의료기기 구매 및 수입·보관으로 발생한 비용은 공급 후 청구한다. 예산의 한계가 있는 만큼 현재는 실비만 받고 있다. 해외 제조업체에서 의료기기를 구매하고 국내까지 운송하는 비용만 받는 방식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로 지정한 후 보험급여 등재를 위해 관계기관과 함께 노력해 환자들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의료기기를 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속한 공급체계도 순차적으로 구축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발생하는 희귀·난치 질환자에게 빠르고 안전하게 의료기기를 공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2021년 수도권(서울) 보관소 1곳으로 시작해 2022년에는 경상권(부산), 전라권(광주) 지역 거점보관소를 추가했다. 올 들어 충청권(대전), 제주권(제주시)에도 보관소를 확충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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