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로, 촉감으로… 볼 수 없어도 ‘五感만족 미술관’
리움, 색각 이상 보정안경 비치
반가사유상 전시한 중앙박물관
시청각장애인 위한 모형 만들어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게 제공
한 일본 작가가 시각장애인과 일본 각지의 미술관을 다니며 관람하는 여정을 담은 책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가 일본에서 화제를 모았다.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된 책은 미술 관람이라면 눈으로 보는 감상(鑑賞)이라고 여기는 현실에서 이들의 이야기는 신선한 충격을 줬다. 그렇다면 책 바깥 현실에서 시각·청각장애인들은 어떻게 그림을 볼까.
지난 24일부터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 로비 인포데스크 한쪽엔 ‘힙’한 느낌의 안경 세트 3개가 가지런히 비치돼 있다. 일반 성인용, 어린이용, 안경 착용자를 위한 클립온 렌즈인데, 색맹과 색약 등 색깔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각 이상자를 위한 ‘색각 이상 보정안경’이다. “미술관에서 색(色)을 구분할 수 있는 보정 안경을 빌려준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색각 이상자들의 발걸음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색각 이상 보정안경의 시작은 지난 5월 호암미술관에서였다. 당시 재개관을 하며 장애인과 미술관의 물리적 거리감을 줄이기 위한 이른바 ‘배리어 프리’(Barrier Free·무장애) 차원에서 이동 편의성을 높이던 중에 심미적 거리도 줄여보자는 취지로 도입됐다. 단색화 선구자 김환기 화백의 대규모 개인전을 약 40년 만에 여는 만큼 색각 이상자들도 다채로운 색감이 어우러진 회화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도록 해보자는 시도였다. 약 4개월간 15만 명이 다녀간 이 전시에서 매일 2~3명이 보정 안경을 끼고 그림을 감상했다. 숫자상으로는 미약하지만, 숫자를 넘어선 의미를 갖는다. 보정 안경을 기획한 박세준 삼성문화재단 수석은 “한 중년 남성이 보정 안경을 착용하고 작품을 보면서 ‘이런 안경이 있는지 알았다면 더 일찍 와볼 걸 그랬다’고 했다”며 “전시장 이곳저곳에서 안경을 썼다 벗었다 하며 신기한 표정으로 관람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미술 관람을 시각에서 오감으로 확장한 곳도 있다. ‘사유의 방’으로 유명한 국립중앙박물관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다양한 감각으로 미술 관람을 할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인 ‘공간 여기’를 운영 중이다. 그 첫 번째 시도인 ‘여기, 우리, 반가사유상’은 국보 금동반가사유상 2점이 있는 사유의 방을 본떠 만든 곳으로, 금동반가사유상 모형을 직접 만지고 냄새 맡고, 디지털 촉각 패드와 오디오 가이드북을 활용해 감상을 나눌 수 있다. 시청각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다양한 방식으로 관람할 수 있다며 좋은 반응이 나오자 박물관은 11월부터 이를 상설전시로 전환할 계획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시각 장애가 있는 관람객이 반가사유상을 만져보고 발끝에 힘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맞혔다”며 “눈으로 봐도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부분인데 다양한 감각을 사용하니 오히려 경험의 폭이 넓어진 것”이라고 했다.
국내 대표 국립 박물관과 사립 미술관이 배리어 프리 전을 열면서 문화예술 향유층이 넓어지고 있는 셈이다. 또 두 기관이 이들 전시를 위해 국내 사회적 벤처와 손잡으면서 미술관이 장애인을 위한 쇼케이스 무대가 된 점도 재밌다. 리움은 색각 이상 보정안경을 도입하면서 한 세트에 100만 원이 넘는 미국·영국 기업 제품이 아닌 독자적인 기술을 개발한 국내 소기업과 협업했는데 가격대가 30만 원 수준으로 향후 대중적 보급도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시청각 장애인의 시각예술 전시 관람 접근성을 높이려는 시도는 생소하지 않다. 최근 토탈미술관이 개최한 방앤리 개인전 ‘어둠 속의 예언자’는 시청각 장애인의 관람을 위해 맞춤 음성 가이드 투어를 진행했고, 제주 포도뮤지엄은 지난해 개관전 당시 시각장애인용 오디오 가이드를 배치해 주목받았다.
선진국에선 일찌감치 장애인 이동권부터 관람 접근성을 향상하려는 시도가 이뤄져 왔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의 첫 배경인 도쿄(東京)의 미쓰비시 1호 미술관 지하에는 배리어 프리 루트가 있고,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메인 웹사이트에서 장애유형별 페이지로 연결하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서수연 한국콘텐츠접근성연구센터 대표작가는 “예술을 모두가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물리적 접근성뿐 아니라 콘텐츠 접근성도 장애인들이 소외된 경우가 많은데, 장애인들이 직접 현장에서 호흡할 수 있도록 교감하고 소통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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