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엔 텅텅' 맹탕 국감 속…"민생·약자 앞 협치" 빛나던 순간
[편집자주] '일하는 국회'를 내세운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가 사실상 마무리됐다. 2015년부터 국회의원의 본령에 따라 꿋꿋하게 정책 질의를 펼친 의원들을 조명하고 있는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의 '국정감사 스코어보드'는 올해도 이어졌다.
21대 국회의 마지막 국정감사도 '맹탕'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5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다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후폭풍으로 어수선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면서 결정적 '한방'을 내놓지 못했다.
국회사무처가 국회방송, 유튜브 등을 통해 대부분의 국감을 중계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오후엔 빈 자리가 늘어나는 등 국감을 준비하는 의원들의 열의도 예년만 못했다. 치열한 정책 토론이 이뤄지기보다는 기존 현안을 재탕하거나 정치 공방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는 평가다.
◇여전한 '맹탕' 국감…오전만 반짝, 오후엔 텅텅 빈 국감장
국회는 지난 27일기획재정위원회, 정무위원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등 8개 상임위원회 종합감사를 끝으로 주요 상임위들의 국감을 마무리했다. 각 상임위별로 국회의원들이 791개 피감 기관을 감사했다. 운영위원회·여성가족위원회·정보위원회 등 겸임 상임위의 국감은 다음달 초 마무리된다.
약 3주 가까이 이어진 이번 국감의 주요 이슈는 △이재명 사법리스크(법제사법위원회)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국토교통위원회) △R&D(연구개발) 예산 구조조정(기획재정위원회·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등)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국방위원회·정무위원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원전) 오염수 해양방류 대응(환경노동위원회·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등) 등 정쟁성 현안들이었다.
올해 국감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초반에만 국감장을 지키다 오후엔 자리가 텅텅 경우도 여전했다. 민주당이 이번 국감 실적을 내년 총선 공천 평가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 것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보니 야당의 화력이 예년만 못했다는 평가다. 국민의힘 역시 이번 국감 실적을 공천 평가에 반영할지 정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번 국감에 대한 여론의 평가도 낙제점에 가까웠다. 여론조사 전문업체 한국갤럽이 지난 24~26일 전국 유권자 1003명에게 제21대 국회 활동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13%가 '잘했다', 80%는 '잘못했다'고 평가했다. 국감 성과 부정 평가자 가운데 22%는 그 원인으로 '상대를 향한 비방과 정쟁'을 지목했다. '개선·해결된 일 없음'도 19%에 달했다.(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양평 고속도로 vs 이재명 사법리스크…불붙은 정쟁
이번 국감의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하나는 국토위였다. 국토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울-양평고속도로 사업을 둘러싼 정쟁으로 점철됐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이 의혹을 쟁점화하는 데 몰두했다. 여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통계 조작 의혹 등을 다루며 맞불 작전을 폈다.
자료 제출이 불성실하다는 야당 의원들, 공개할 수 있는 자료는 모두 공개했다는 국토교통부 사이에서 모두가 인정할 만한 진상규명은 없었다. 대안 노선이 제시된 과정이 부실했다거나 과업수행계획서 일부가 고의로 삭제된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의혹의 핵심까지 다다르지 못했다. 여야의 극한 대립에 종합감사에선 양평고속도로, 통계 조작 의혹 관련 증인을 단 한명도 볼 수 없었다.
법사위도 만만치 않았다. 법사위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와 재판이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사실상 '이재명 국감'으로 마무리됐다. 환노위는 마지막 종감이 파행했다. 최근 계열사에서 잇따라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그룹과 DL그룹에 대한 청문회 개최여부를 두고 여야가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결국 야당 의원들만 참석한 상태에서 감사를 이어가다 종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과방위 국감에선 국가R&D 예산 삭감, 우주항공청 특별법, 가짜뉴스 심의 등을 놓고 여야가 쉼없이 충돌했다. 여기에 박민 KBS 사장 후보자 인사청문요청안 재가, 국가정보원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합동 보안점검 결과 등이 겹치며 3주 동안 여야가 공방을 이어갔다. 국방위는 국감 첫날부터 여야가 말싸움만 벌이다 제대로 감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야당 의원들이 '부적격자 신원식 국방부 장관 임명 철회하라'는 피켓을 자리에 붙이자 여당 의원들이 반발했다.
◇"정쟁을 대신 협치"…민생·약자 앞에선 여야 한목소리 내기도
혼란의 국정감사 속에서도 정책 질의를 이어가려는 노력은 있었다.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질의에선 최근 '응급실 뺑뺑이' 사망사고로 불거진 필수의료 붕괴와 마약류 오남용 등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대한민국의 뼈 아픈 의료 현실에 대한 의원들의 진지한 고민이 물씬 묻어났다. 의원들은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국민연금 개혁, 전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 케어) 등을 두고 날카로운 공방을 이어가면서도, 국민 생명과 약자 복지 문제 앞에서는 정쟁을 내려놓는 '협치'의 모습도 보였다.
환노위에선 우리 사회 노동 현장 속 사각지대 해소, 중대재해 등 산업재해 방지에 있어서는 여야가 뜻을 같이 했다.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질의에서 여야 의원들은 기업인들의 '사과'를 이끌어냈고 수백억대 임금체불 기업의 구체적인 변제 약속을 받아내는 등 눈에 띄는 성과도 있었다. 정무위 역시 정쟁적 소재 앞에서 목소리가 다소 높아진 적은 있었어도 '신사 상임위'답게 국감 마지막날까지 단 한 번의 파행도 허용하지 않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열린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국감)가 결정적 '한방'을 내놓지 못한 '맹탕'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빛나는 활약을 펼친 의원들은 있었다. 국민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사안에 집중, 문제점을 찾고 대안을 제시하는 등 의미 있는 정책질의를 한 의원들을 머니투데이 더300(the300)이 상임위원회 별로 선정했다.
이를 위해 더300 기자들은 지난 10일동안 27일까지 국감 18일 동안 주요 상임위 국감장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늦은 밤까지 지키며 의원들의 질의를 평가했다. 정부의 실책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보여주기식 호통과 정쟁은 지양한 의원들, 민생 문제에 보다 현실적이고 진정성있게 다가가려는 노력을 기울인 의원들이 대체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독창성, 화제성, 성실성 등도 고루 반영됐다.
기획재정위원회(기재위)에서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최고 점수를 받았다. 김 의원은 정부가 편성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총예산이 스스로 제시한 기준(관리재정수지 적자 3% 이내)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고 내년 예산안에서 국세감면율이 법정한도보다 높단 점을 꼬집어 눈길을 끌었다. 송 의원은 문재인정부 당시 늘어난 국가부채 400조원 중 대부분이 코로나19(COVID-19) 팬데믹(대유행)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자세한 분석을 통해 밝혀 주목 받았다. 송 의원은 지난 정부의 국가부채 증가가 국가적 재난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라는 야당의 주장을 숫자로 반박했다. 또 2017년부터 5년간 연구개발(R&D) 예산이 53% 증가했고 사용되지 못한 예산이 수조원에 달한단 사실도 제시했다.
정무위원회(정무위)에서는 민병덕 민주당 의원이 대출 이자에 포함된 일부 비용이 부당 가산금리란 점을 지적하고 작년 국감에 이어 올해 국감에서도 개선을 이어가려는 노력을 보여 높은 평가를 받았다. 가맹업계 불공정 계약 문제에 대해서도 끈질기게 파고들었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민생과 맞닿은 다양한 문제점들을 깊이있게 지적하고 국민들이 알기 쉽게 전달하는 한편 이슈화까지 연결하는 초선답지 않은 노련미를 보여줬다. 애플페이 수수료 문제, 천재교육의 갑질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감독기관장에게 개선의 필요성을 거듭 주지시켰고 공매도를 3~6개월 제한해야 한다는 파격적 제안도 내놨다.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부산 돌려차기 살인미수' 사건 피해자의 인터뷰 영상 공개를 통해 범죄 피해자 지원 제도의 문제를 짚었다. 한 발 더 나아가 한동훈 장관으로부터 '범죄 피해자 지원을 위한 원스톱 서비스 센터 연내 출범' 약속을 받아내 '국감의 의미'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탄희 민주당 의원은 피감기관과 분야에 제한받지 않는 다양하고 참신한 정책질의 소재를 택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면서도 일반 국민, 약자, 피해자 보호에 집중하는 일관성을 보여줬다. 신당역 스토킹 사건과 인천 논현동 스토킹 사건까지 보복살인으로 이어진 사건들을 거론하며 단순 살인죄가 아닌 보복범죄로 기소돼야 한다는 필요성을 강조했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관료 출신답게 꼼꼼한 자료 분석이 돋보였다. 방만 경영, 임직원 비위 의혹에도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하는 공공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한편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국민에게 봉사하고 있는 공공기관에 대해선 처우 개선을 요구했다. 김경만 민주당 의원은 산업부와 중기부가 R&D 예산을 삭감하는 과정에서 명확한 기준도 없이 일괄 삭감하고 있다는 점을 따졌다. 김 의원은 방문규 산업부 장관으로부터 "R&D 예산이 더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김영주 민주당 의원이 매번 독창적 질의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 의원은 특히 세슘 검출 이력이 있는 일본 된장을 꺼내드는 등 여론 주목도가 높고 차별화된 아이템으로 정책과 이슈 두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의 부실한 마약관리 문제를 지적하는 한편 복지 분야 남다른 관심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원전 오염수 관련 식품 안전 문제, 건강보험 재정 누수 우려, 구급차 현실까지 다양한 문제들을 짚어냈다.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공수전환에 능한 자세를 보이며 윤석열 정부의 후쿠시마 원전 대응이나 노동 정책 관련 야당의 공세를 적극적으로 막아내는 한편 주요 피감기관 관계자들에게 진솔한 답변을 주문했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4대강과 댐 설치 계획, 현 정부의 노사법치주의, SPC그룹의 중대재해와 허영인 SPC 회장의 증인 채택 등 굵직한 이슈를 화두로 던져 여당을 긴장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정쟁에 매달리기보다 근거와 자료를 제시하며 합리적으로 국감을 이끌었단 평가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이 방송통신위원회를 대상으로 한 국감에서 KBS 등 라디오 방송의 편파성 논란을 적절히 엮어 가짜뉴스 문제를 설득력 있게 전달했다. 또 과기정통부를 대상으로 한 국감에선 5년간 평균 24조3000억원이었던 문재인 정부의 R&D 예산과 윤석열 정부가 편성한 R&D 예산 평균 금액 28조5000억원을 비교하며 야당이 정치공세를 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변재일 민주당 의원은 5선 의원이자 과거 정보통신부 차관 출신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줬다. R&D 비효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되는 항목 중 하나인 PBS(연구과제중심제도)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고 과학기술 분야 '퍼스트무버'(시장 개척자)가 되기 위한 '기초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몸담았던 과기정통부를 향한 진심 어린 조언도 잊지 않았다.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조오섭 민주당 의원이 수준 높은 정책질의로 돋보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상대로 철근 누락 사태를 강하게 추궁하는가 하면 입주자의 답답한 심정을 속시원히 전달하고, 설계 오류를 확인하지 않은 감리업체에 대한 비용 회수 문제를 홀로 거론하기도 했다.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 간사로서 서울-양평 고속도로 이슈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도 정책 질의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을 보여 호평받았다. 김 의원은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 관련해 민간사업자의 사업비 조정 요청을 소송이 아닌 대한상사중재원의 중재를 통해 해결할 것을 제안했고 자동차안전·하자심의위원회의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 해당 정부 기관들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냈다.
21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는 내년 총선을 반년 앞두고 극단화된 여야 정쟁을 반영하듯 곳곳에서 충돌이 빚어졌다. 이를 추스리고 국감을 안정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상임위원장들의 노고가 어느 때보다 눈에 띄었다.
◇이재명 국감 신경전…김도읍, 읍소하고 때론 강단있게
전통적으로 여야간 대치가 빈발해온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올해 국감이 '이재명 국감'으로 점철되면서 아슬아슬한 긴장 상태가 계속됐다. 거의 매 피감기관 감사 때마다 야당 의원들은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문제삼고 여당 의원들은 허위 인터뷰·녹취록 보도 의혹에 이 대표가 연루돼 있다고 맞섰다. 여기에 감사원의 전현희 전 권익위원장 감사와 이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표적감사 의혹 수사 등을 놓고도 여야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이에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여야의 충돌을 중재하면서도 과열로 흐르는 질의는 저지하는 역할을 했다. 워낙 민감한 현안이 많고 질의 대부분이 현재 진행 중인 수사·재판과 관련됐던 만큼 이를 조율하지 않으면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이 과정에서 야당뿐 아니라 여당 의원들도 위원장의 개입과 발언권 제한에 항의하는 일이 잦았다. 김 위원장은 "제 진행이 미숙하다"고 굽히는가 하면 "제발 협조 좀 해달라"고 읍소하는 방식으로 극단적 파행 없이 회의를 이끌었다.
김 위원장이 위원장석에서 질의를 하는 데 대해서도 야당은 국감 첫 날 아예 단체로 자리를 뜨며 항의했는데, "(국감) 보이콧은 아니겠죠"라며 허허 웃어넘겨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도 김 위원장은 끝까지 질의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할 말은 하는 강단도 보였다.
◇전투력 대신 노련함 더한 장제원…野도 찬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장제원 위원장은 평상시 보여온 전투력을 덜어내고 특유의 노련함으로 과방위를 큰 파행 없이 마무리 짓는 저력을 보여줬다.
피감기관의 자료제출과 관련해선 야당을 향한 배려와 동시에 따가운 질책도 잊지 않았다. 장 위원장은 지난 11일 과기정통부 대상 국감에서 R&D(연구개발) 예산 삭감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는다는 야당 의원들의 불만이 제기되자 과기부를 향해 "민형배 의원(민주당)에게 글로벌 R&D 예산도 드리시고 기재부가 운용비 절감을 위해 어떻게 정부출연연구기관들 운영비 반납했는지에 대해서도 빠른 시간 내 제출해 달라"고 주문했다.
야당 의원들로부터 "위원장은 역시 장제원"이라는 말도 들었다. 지난 12일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대상 국감에선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 관련 야당의 질의에 대한 박성중 위원장 대행(여당 간사)의 회의 진행을 놓고 여야가 파행을 겪다 정회하는 일이 있었다. 이후 장 의원이 돌아오자 야당 의원들 사이에선 "장 위원장이 없으니 회의가 진행이 안 된다" 등의 반응이 나왔다.
참고인들을 향해선 특유의 카리스마를 보여줬다. 강봉구 삼성전자 부사장, 김지형 SK텔레콤 부사장 등이 질의에 명확한 답을 못 하자 "성의를 다해 답변하지 않으면 국민 통신 요금 안정을 위한 청문회를 하고, 각 사 CEO(최고경영자)를 증인 채택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차수변경 각오"…완벽한 자료제출 이끈 이재정
이재정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도 노련함을 여과없이 뽐냈다. 철저한 질의 시간 관리는 물론 깐깐한 자료제출 요구 등을 통해 원활한 감사진행을 이끌었다. 특히 이 위원장은 피감기관의 자료제출과 관련해 처음부터 "자료제출을 하지 않을 경우 차수변경도 각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그동안 국회가 두루뭉술하게 요청해 제출이 어렵다고 한 기관은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료 요청에 대해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불응하는 것에 대해선 자료제출 판단의 권한이 있는 당사자를 증인으로 신청하는 것을 관철해 볼 생각"이라고 했다.
회의 진행 과정에서도 수시로 제출목록을 체크하고 의원실과 피감기관 간 협의를 유도했다. 26일 산업통상자원부 대상 국감에선 단 1명의 의원 질의를 남긴 상태에서 산업부의 자료 제출이 늦어지자 자료를 제출할 때까지 질의를 이어가지 않은 채 기다리는 뚝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산자위는 올해 국감에서 단 한 건의 자료 미제출도 없이 감사를 마치는 성과를 거뒀다. 또 여야, 정부를 구분하지 않고 질의시간 엄수를 요구하면서도 수준 높은 정책 국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질의와 답변에 필요한 시간을 할애하는 융통성을 보이기도 했다.
◇양평·통계조작 대치 속…재치로 분위기 녹인 김민기
김민기 국회 국토교통위원장은 정쟁과 현안으로 얼룩진 올해 국감에서 돋보이는 진행력을 보여줬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논란과 전임정부 부동산 통계 조작 의혹을 두고 수시로 파행이 벌어졌으나 다년간의 상임위원장 경험에서 쌓은 관록이 빛을 발했다. 그가 가진 특유의 재치는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내는 '만능키'였다
무엇보다도 항의성 의사진행발언 요청을 능수능란하게 끊어내는 데 천의무봉의 실력을 보였다. 요청이 잇따를 때면 "의사진행발언이란 게 진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인데 이번엔 그러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의사진행이 잘 되고 있는데요?"라는 말로 웃음을 자아내면서 파행을 차단했다. 이러한 그의 진행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존중받았다.
한준호 민주당 의원의 마이크가 발언 시간이 끝났음에도 꺼지지 않아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항의했을 때도 "타이머와 마이크 연동에 가끔씩 오작동이 난다고 하는데 고치겠다"며 "다음에는 오작동이 유경준 의원 질의에 발생하기를 바라본다"는 농담으로 잡음없이 상황을 정리했다.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우리 위원님들도 박수 한번 보내 주시지요."
26일 오후 10시20분을 넘은 시간.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국회 산중위 회의장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질의를 이어가던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한 의원은 "최근 UAE가 발행한 1000디르함 신권 지폐다. 한국 돈으로 약 37만 원의 가치가 있는 고액권인데, 여기에는 팀코리아가 수출한 바라카 원전 1~4호기가 그려져 있다"며 "이러한 영광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의 노고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관 증인석을 향해 허리를 숙였고 산중위 소속 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내달라고 한 것이다. 국감장에 불려나온 기관증인에 대한 호통과 힐난이 일상이었던 국정감사장에서 이러한 박수 세례는 이례적이었다.
"어떤 분들은 '정확한 이유를 갖고 외국 나가라'고 하더라..."
가수 겸 배우인 김민종 KC컨텐츠 공동대표는 지난 26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어떤 분들은 '정확한 이유를 가지고 외국에 나가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해당 발언이 나오자 국감장에는 폭소가 터졌다. 국감에 소환된 기업인들이 해외 출장을 핑계로 출석을 거부한 것과 대비됐기 때문이다. 이어 김 대표는 "제가 거리낌 없이 잘못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출석했다"고 했다.
"자료제출을 강요받았다."
한 마디로 회의를 파행으로 몰고 간 발언도 있었다. 지난 18일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자료 제출을 강요받았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크게 반발했고 고성이 오간 끝에 파행했다. 잠시 정회 후 정 이사장은 "강요는 강한 요청이라는 뜻이었다"고 해명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이에 야당 간사인 고영인 민주당 의원은 "강요라는 게 긍정적인 의미냐"라며 "평상시 건보공단을 운영하면서 직원들에게 강요하시나"라며 다시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조사대로 보면 문제가 있다." "그것도 그렇게 볼 수 있다."
'황희 정승'식 답변으로 국감장에 웃음을 가져온 기관장도 있었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27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종합감사에서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이 빅데이터 분석을 보여주며 "대통령 당선인을 바꿔치기하려 했던 반헌법적 세력의 계획이 성공할 뻔했다"고 하자 "(박 의원) 조사대로 보면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한다"고 했다.
이후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온 언론이 대장동 책임이 이재명 후보에게 있는 것처럼 1년 넘게 보도했다. 가짜뉴스 결과로 이 후보가 낙선했다는 제 데이터는 어떻느냐"고 하자 이 장관은 해당 질문에도 "그것도 그렇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장관이 '너도 옳고, 또 너도 옳다'는 황희 정승식 답변을 이어가자 국감장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법은 내가 더 많이 알 것"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법에는) 집회·시위를 금지시키는 지자체장 권한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의 발언에 "법은 내가 더 많이 알 겁니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홍 시장이 은근히 자신의 경력을 드러낸 발언으로 풀이된다.
홍 시장은 "집회 제한 구역에서 집회를 하려면 도로 점용 허가를 대구시에서 받아야 한다"며 "법원에도 (허가해 줄)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용 의원은 "집회 제한은 지자체장의 판단 권한이 아니라 관할 경찰서에 있다"고 했다.
${IC21}
"정쟁은 국민의 관심사가 아니다"
박재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국민권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홍일 권익위원장을 향해 "정쟁의 관심사가 국민의 관심사는 아니다. 그것은 정치권에 있는 사람들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권익위가 전현희 전 국믹권익위원장 표적감사 의혹,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경기지사 시절 배우자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 남영진 전 한국방송(KBS) 이사장에 대한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박민 KBS 사장 후보자의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등과 관계된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정쟁의 중심에 서고 있단 지적이었다.
${IC22}
"본인들 실력 없어 구속 못 시켜놓고 재판부가 문제인 것처럼 투덜댄다. 투덜이 스머프냐"
김영배 민주당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중앙지검 등 국정감사에서 이 대표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과 관련해 "국가기관인 검찰은 증거로 말하고 결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안타깝게도 본 위원이 주로 들은 것은 집단 뇌피셜처럼 되뇌인다"며 '투덜이 스머프'라고 검찰을 저격, 충돌이 발생했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은 "위원님은 피고인의 개인 변호인이 아니다. 국감은 재판 관여 목적으로 하면 안 된다"며 "투덜이 스머프냐는 게 국민을 대표해서 하는 질문인가"라고 맞받았다.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김성은 기자 gttsw@mt.co.kr 박소연 기자 soyunp@mt.co.kr 안재용 기자 poong@mt.co.kr 오문영 기자 omy0722@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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