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점 만점 독일, 100점 만점 한국...한국형 바칼로레아가 필요한 이유

2023. 10. 3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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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만난 사람] 대립의 시대, 공존의 길을 묻다 (1)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하)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출산율, 자살율, 빈곤율, 조세부담율, 그리고 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우리 사회가 시급히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들이다. 이처럼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쌓여 있지만, 보수와 진보, 내 편 아니면 적으로 나누는 양분화된 정치 상황은 어떤 합의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정치적, 사회적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갈등과 대립을 부추기는 정치인들이 오히려 득세하고 있다. 막막한 시대, 공존의 길을 모색하기 위한 토론이 절실하다는 문제 의식으로 '공공선 거버넌스'와 프레시안이 연쇄 인터뷰를 기획했다. 첫번째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을 만났다. 강치원 공공선 거버넌스 원장이 대담을 진행했다.(편집자주)

(조희연 인터뷰 上 : '민주'만 간절하고 '공화'는 외면한 한국, 전환기 위기에 직면하다)

교육감 10년차를 맞은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3기의 비전은 '다양성이 꽃피는 공존의 혁신미래교육'이다. 조 교육감은 특별히 공존을 강조한 이유에 대해 "공존의 교육은 입장이 다른 이들을 배제하지 않는 교육, 생각이 달라도 함께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내고 넓혀가는 교육, 비이성적인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과거의 성과에도 연연하지 않는 교육을 말한다"고 설명했다.

미래세대인 학생이 3주체 중 한 축인 교육 현장에서는 과거 산업화 시대의 대안, 민주화 시대의 대안들이 생성형 인공지능(AI)로 상징되는 거대한 산업·기술적 전환, 초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 등 변화된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시대 변화로 우리가 전제하고 있던 많은 대안들이 소멸한 대안의 공백 상태에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합니다. 대학 서열화나 사교육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에 대해서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민주화 이후의 시대 이제는 보안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냉전 시기 군비 경쟁 수준의 과열된 사교육 경쟁

조 교육감은 지나친 경쟁교육이 사교육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구조는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성적으로 대표되는 차가운 능력주의 하나로 학생을 서열화하고 등급화하여 이에 따른 보상을 달리하고, 그것이 결국 대학과 직업에까지 이어지면서 인간의 삶을 불평등하게 규정하는 것, 이러한 교육의 기본 구조가 우리 교육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과정마저 기회의 평등과 분배의 평등 모두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태어난 집에 따른 격차가 갈수록 심각해집니다. 사교육 경쟁은 냉전 시기 군비 경쟁에 빗댈 수 있는 수준으로 격화됐습니다. 공공재원을 확충해서 사회적 격차를 줄이고, 공교육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한 노력이 절실합니다."

경쟁교육의 정점에 대학입시가 있다. 지난 30년간 지속된 수학능력평가가 AI까지 등장한 시대에 최선의 평가 방식이 아니라는 사실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객관식 위주의 문제로 암기 위주의 무한 반복 학습을 통한 고득점 획득이 학생들의 목표가 되면서 사교육 경쟁이 치열해지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소수점 넷째자리까지 학생을 줄 세우는 현 체제로는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어려울 뿐아니라 내신 점수로는 목표한 대학을 가기 힘든 학생들이 수능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으로 향하는 기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서울시교육청

소수점 넷째짜리까지 줄세우는 수능,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는 최근 2028학년도 대학입시개편안을 발표했다. 지난 6월에는 윤 대통령이 '사교육 이권 카르텔'을 언급하면서 '킬러 문항'과 '일타 강사'에 대한 비판에 나서자 "올해 수능이 물수능이 되는 게 아니냐"며 의대를 가기 위해 대학을 자퇴하는 학생들이 속출하는 등 대혼란이 일기도 했다.

정부가 발표한 2028년 대입개편안에는 수능 선택과목 체계를 통합형 과목체계로 바꾸고,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를 완화하는 방안이 담겼다. 고교 내신 성적 산출 방식도 현행 9등급제에서 5등급제로 전환해 경쟁을 완화하고자 했다.

조 교육감은 이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며 여전히 경쟁교육의 고리를 끊는 고민이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2025학년도부터 시작되는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개편안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적으로는 객관식형 수능은 논술형, 서술형 수능으로 전환이 필요하며, 독일의 아비투어 등과 같은 자격고사로서의 수능 개혁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로 바뀌어야 합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6월 초·중학교 31개교를 '2023 국제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탐색학교'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IB란 스위스에 본부를 둔 비영리 교육 재단인 IBO(International Baccalaureate Organization)에서 개발 및 운영하는 국제 인증 교육 프로그램이다. 토론과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 논·서술형 절대평가 체제로 학생의 자기주도적 성장을 추구하는 교육 평가 방식이다. 제주와 대구가 먼저 도입했고, 경기도도 올해 25개교를 탐색학교로 지정했다. 서울시교육청은 IB 탐색학교 운영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사회에 대비한 창의·융합적 인재 양성을 위한 학교 교육 체제와 수업·평가 방법을 시스템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는 IB와 같은 평가 방식은 우리 혁신학교의 경험 등에서도 굉장히 많이 누적돼 왔다고 생각해서 IB를 배우면서 결국에는 한국형 바칼로레아, KB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련해 1990년대 독일에 객원교수로 체류했던 강치원 원장은 독일의 아비투어 등 유럽의 교육 평가 방식을 소개하면서 한국 교육의 경쟁주의를 비판했다. 독일의 교육 시스템이 한국과 다르기 때문에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시사하는 점은 크다. 조 교육감은 "전에는 스웨덴 등 북유럽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았는데 최근에 독일 교육에 대한 관심이 크다"고 말했다.

독일 아비투어 시험은 우리의 수능과 달리 대학 입학 자격시험의 성격을 갖는다. 우리의 고등학교 내신에 해당하는 자격획득 단계의 점수는 과목당 15점 만점으로 매기며, 2년간 자격획득 단계의 최대 점수는 600점이다. 졸업시험인 아비투어 시험의 최대 점수는 300점이다. 총 900점 중 최소 300점(자격획득 200점, 졸업시험 100점)을 얻어야 졸업할 수 있다.

또 아비투어 시험은 한국처럼 전국이 단일한 시험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각 주마다 문제가 다르며, 주정부가 관장을 한다. 객관식 문제가 아니라 논·서술형 시험으로 한 과목당 4-5시간의 시험을 보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3과목의 필기시험, 1과목의 발표형 구술시험을 본다.

독일보다 더 경쟁교육을 지양하는 스웨덴은 3단계 척도인 통과(G), 우수(VG), 매우 우수(MVG)를 기반으로 절대평가방식으로 성적을 매겨왔다가 보수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5단계 척도(A, B, C, D, F)로 바뀌었다.

"킬러 문항이 문제가 아니다…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역량 길러주는 것이 관건"

'줄 세우기식 경쟁교육'이 과거 산업화 시대의 유물로 갈수록 창의적 인재를 필요로 하는 현 시대에 맞지 않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조 교육감은 "지금 교육의 중요한 과제는 킬러 문항 몇개를 없애는 것, 단순히 문제 풀이 능력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변화하는 불확실한 미래 사회를 살아갈 역량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가 교육 양극화로 이어지고 다시 경제적 양극화를 낳는 악순환의 고리를 공교율을 통해 약화시켜야만 한다.

"서울교육공동체 안에는 다양한 학생이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취업했다는 이유로 가족의 축하를 받습니다. 다른 어떤 학생은 이 학생이 왜 축하받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헌신적인 뒷받침 속에서 대학입시 준비에 몰두했던 그 학생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바로 일터에 나가는 삶은 상상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 두 학생은 같은 서울 하늘 아래에서 살지만,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런 현실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름을 뜻한다고 합니다. 공평한 절차만이 아니라 올바름까지 포함해야 공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학생이 공평하고 올바른 세계, 즉 공정한 세계에서 만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정의로운 차등으로 운동장을 평평하게 해야 합니다.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과 불공정을 바로잡는 일은 서로 맞물려 있습니다."

▲대담을 진행 중인 조희연 교육감(오른쪽)과 강치원 원장 ⓒ서울시교육청

[전홍기혜 기자(onscar@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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