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순직 용사, 70년 만에 국가유공자 인정

김경필 기자 2023. 10. 3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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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경남 고성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한계문씨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5월 육군에 입대했다. 스물세 살 때였다. 한씨는 입대 1년 만인 이듬해 5월 17일 숨졌다. 가족들에게는 화장한 한씨 유해를 담은 작은 유골함 하나가 전달됐다. 한씨는 형과 누나들에게 ‘군대 가서 죽은 막내’로 남았다. 3년 전 6남매 가운데 마지막으로 한씨 누나가 세상을 떴다.

조카 한춘산(69)씨는 최근 한계문씨 묘를 가족 묘원으로 이장하려다가 한계문씨가 국가유공자로 등록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국민권익위원회에 도움을 요청했다. 권익위가 조사해 보니, 병무청의 병적기록표에는 한계문씨의 이름이 ‘한규문’으로 적혀 있었다. 생년월일도 제적등본에 남아 있는 기록과 달랐다. 권익위는 병무청에 병적기록을 정정해줄 것을 요청하고, 정정한 기록을 국가보훈부에 제공해 한계문씨가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한계문씨가 강원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숨졌다는 것도 확인됐다. 한계문씨의 마지막 소속은 ‘제18육군병원’이었다. 전장에서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된 뒤 숨졌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된 것으로 추정됐다.

국가유공자는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고, 다른 곳에 안장할 경우에는 묘비 제작비를 지원받을 수 있다. 한춘산씨는 삼촌 한계문씨를 가족 묘원에 모시고, 국가유공자임을 알리는 묘비를 세우기로 했다.

원로배우 김복희(88)씨도 권익위의 지원으로 미국에서 참전군인으로서 예우를 받게 됐다. 1950년 전쟁 발발 당시 15세였던 김씨는 군에 자원 입대해, 전선을 돌며 장병을 위문하는 공연을 하는 ‘여군 예술대원’으로 활동했다. 전후 김씨는 2000년대 초까지 배우로 활동하며 드라마 ‘전원일기’ ‘여우와 솜사탕’ ‘장희빈’ 등에 출연했고, 이후 미국 조지아주로 이민했다.

조지아주에선 지난 2020년 동맹국 출신 참전용사도 미국 참전용사와 같이 예우하는 법률이 제정됐다. 이를 알게 된 김씨는 최근 조지아주에 참전용사로 등록하려 했으나, 한국 병적기록상 생년월일과 실제 생년월일이 달라 증빙이 되지 않았다. 김씨는 권익위에 도움을 요청했고, 권익위는 김씨의 진술서와 참전유공자 등록 자료를 바탕으로 병적기록을 정정한 뒤 영문 병적증명서를 발급받아 김씨에게 전달했다.

권익위는 2021년부터 국내에 연고가 없는 재미 한인 참전용사 47명을 대신해 영문 병적증명서를 발급받아 전달해, 이들이 현지에서 참전용사로 예우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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