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참가자가 한국인 아나운서에게 ‘제주어’를 가르치다…‘우리말 겨루기’ 20주년 특집 ‘글로벌 우리말 겨루기’ 녹화 현장[스경X현장]
KBS1 ‘우리말 겨루기’는 2003년 11월5일 첫 방송을 시작한 대한민국 유일무이한 ‘한글 퀴즈쇼’다. 방송 20주년과 KBS 공영방송 50주년이 되는 올해 ‘우리말 겨루기’는 야심 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바로 한글을 매개로 한국과 전 세계를 이어주는 ‘글로벌 우리말 겨루기’ 특집 방송이다.
‘우리말 겨루기’의 특집으로 방송되는 ‘글로벌 우리말 겨루기’는 제작진이 프랑스 파리와 미국 LA, 이집트 카이로, 베트남 호찌민 등 네 개 도시를 찾아 한글에 관심이 많은 현지 거주인을 대상으로 퀴즈 예선을 펼친 후 각 도시 상위 2명의 출연자를 한국 KBS 스튜디오로 초대하는 기획이다. 이들은 방송 출연 외에도 서울 인사동과 광장시장, 창덕궁과 여의도 등 주요 관광지를 둘러보기도 했다.
‘스포츠경향’이 단독으로 찾아간 현장은 한글 사랑 못지않게 한국의 문화, 한국의 역사를 사랑하는 외국인 출연자들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한국을 접하고 한글을 공부하게 됐지만, 한글로 인해 자신이 꿈까지 바뀌는 등 인생이 방향도 바뀌는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었다.
■ KBS 아나운서, 외국인 참가자에게 ‘제주어’를 배우다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의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글로벌 우리말 겨루기’ 본 녹화. 이 자리에는 지난 2~3개월 동안의 여정으로 전 세계 4개국에서 모인 8명의 참가자와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방청석의 지인으로 가득 찼다.
제작진은 프랑스와 미국, 이집트와 베트남의 예선을 거쳤고, 이 예선에서 각각 마농-리마, 오렌-헤일리, 사라-마야르, 쩐 민 뿌 응옥-쩐 칵 떰 등의 참가자가 한국 땅을 밟았다. 지난 14일 시차를 두고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온 이들은 15일과 16일 서울 각지의 관광지를 둘러보고 17일 녹화에 임했다.
녹화 시작 시각은 오후 1시30분쯤이었다. 20년 동안 975회를 방송한 ‘우리말 겨루기’는 ‘글로벌 우리말 겨루기’를 특집으로 5주 편성했다. 이들은 내국인 출연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 퀴즈에 임했다.
가벼운 OX 몸풀기 퀴즈로 예열에 들어간 이들은 ‘훈’ ‘민’ ‘정’ ‘음’의 초성을 골라 각 50점씩이 배정된 5문제를 풀었다. 이후에는 십자말풀이 문제에 돌입해 문제를 맞힌 팀이 계속 다음 제시어를 선택하는 식으로 퀴즈가 이어졌다.
자연스럽게 토크를 통해 출연자들의 한글 공부 계기도 드러났다. 미국팀의 오렌씨는 오랜 샤이니의 팬이었다. 당연히 한국 예능도 즐겨봤는데, 영어 자막을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어 직접 한글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헤일리씨는 박완서 작가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읽고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졌다는 놀라운 과정도 들려줬다.
프랑스 팀의 리마씨는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김치와 두부조림, 잡채 등 한국 음식들을 만들어 먹었고, 베트남의 응옥씨는 ‘퀴즈 온 코리아’ 등 해외 한국어 경연대회에도 참가한 실력자였다. 이들은 아는 문제가 나오면 문제 본문이 나오기도 전, 힌트만 듣고도 재빨리 버저를 눌렀다. 놀라운 정답행진에 방청석의 박수가 이어졌다.
놀라웠던 장면은 한글 공부 9년 차가 된 이집트 대표 사라씨의 ‘제주어’ 강의였다. 최근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재미있게 본 사라씨는 제주어 공부에 매달렸고, 과거 ‘응답하라’ 시리즈로 부산 사투리를 익혔던 때와 마찬가지로 제주어에 어느덧 익숙해졌다. 그가 MC 박지원 아나운서에게 제주어 설명을 하자, 오히려 한국인인 박지원 아나운서가 그 말을 감탄하며 듣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 한글과 한국, 제 인생을 바꿨어요
이들의 현지 섭외는 외국과 외국인에 대한 한글, 한국문화 보급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로 설립된 특수법인 세종학당이 나섰다. 세종학당은 지난 6월 기준 85개국에 248개소가 운영 중이다. 프랑스와 미국, 베트남은 이들 중 거점에 해당한다. 지역 배분과 해당 학당 현지의 유치 열의 등을 고려해 제작진이 4개국을 골랐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많으면 여러 번의 한국방문 경험이 있었으며, 현지에서도 한글, 한국어 관련 일을 하는 이들도 많았다. 베트남의 떰씨는 사범대의 한국학 센터에서 행정보조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8개월 정도 된다”면서 “어린시절 할머니와 다니던 교회에 한국 분들이 많아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2018년 연세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았던 미국 대표 헤일리씨는 현재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어학연수 중이다. 그는 “살았던 도시에 한국사람이 많았다. 거기서도 언어교류모임을 하면서 조금씩 한국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했다”고 계기를 전했다.
한국어가 알파벳을 기반으로 해 독창적이면서 표음문자에 과학적인 발성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평한 이들은 공통적으로 “처음에는 배우기 쉽지만, 어느 정도 단계에 들어가면 그 난도가 엄청 높아진다. 어려운 말은 굉장히 어렵다”고 말하기도 했다.
K팝을 좋아하기도 했고, K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결국 한글은 한국에 대한 그들의 이해와 그들의 꿈까지도 바꾸는 효과를 불렀다.
헤일리씨는 “미국에서 역사 전공을 했지만, 소프트웨어 관련 일도 하고 있다. 나중에 한국에 꼭 와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고, 베트남 대표 응옥씨는 “한국어는 배우거나 가르치기에 재미있는 언어”라며 “꿈이 한국어 선생님이 됐다. 나중에 베트남에서 한국어 학원도 개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표 리마씨는 “지난해부터 프랑스 국립동양학대학교에서 한국학과 학사 학위 공부를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은 김정희PD는 “한류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사실은 늘 뉴스로 접하지만, 현장에서는 느끼는 것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관심은 단순히 K팝이나 K드라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나 문화 등 한국의 전반적인 것에 관한 관심으로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PD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한국의 문화를 알리려면 일단 한국어의 가치를 알리고 교육의 필요성을 담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 촬영을 하고 나서도 현지에서 ‘매년 해줬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도 와달라’ ‘정규 프로그램으로도 편성해달라’는 부탁들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
김PD는 “결국 대한민국도 합계 출산율의 저하 등으로 이민정책에 대한 고민이 나오게 될 것인데 그런 의미로 외국인에 대한 한국어 교육의 중요성은 커진다. 비록 ‘우리말 겨루기’가 20년 시간이 지나면서 고정 시청 층이 보는 프로그램으로 변화하긴 했지만, 이번을 계기로 시청 층을 확대하고, 젊은 세대의 문해력 향상을 위하는 ‘벽이 낮아지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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