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세 게이머, 스트리트 파이터로 금메달 따다
〈스트리트 파이터〉는 한 시대를 풍미한 시리즈다. 1990년대 동네 오락실은 〈스트리트 파이터 2〉를 하려는 학생들로 북적였다. 게임기 양쪽에 두 사람이 앉고, 진 사람이 일어나면 다음 사람이 동전을 넣는다. 학생들은 게임 속 기술을 흉내 내고, 유명 캐릭터는 대중문화에서도 패러디됐다.
10월8일 폐막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5〉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금메달을 딴 선수는 한국인 김관우씨. 1979년생이다. 아시안게임 종목으로 인정받았지만, 현재 게임판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주요 경기를 전 세계 수천만에서 수억 명이 시청하는 〈리그 오브 레전드〉와 달리 〈스트리트 파이터〉를 비롯한 대전 격투 게임 전반은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 44세 김관우 선수와 40세 강성훈 감독은 어떻게 〈스트리트 파이터〉에 인생을 걸고, 금메달을 따기에 이르렀을까. 10월9일 두 사람을 만나 게임과 스포츠, 삶에 대해 물었다.
아시안게임은 다른 경기와 어떻게 달랐나?
김관우(이하 김):이전에도 해외에서 치르는 대회에 여러 차례 출전했지만, 다른 종목 선수들과 함께하는 아시안게임은 느낌이 새로웠다. 경기 준비 과정이 상당히 철저하고 엄숙하기까지 했다. 컨트롤러를 주최 측에 미리 제출하고 경기할 때 다시 제공받는 등 부정행위를 방지하려는 과정이 낯설었다.
강성훈(이하 강):당연하지만 아시안게임이라는 메가 이벤트를 경험해볼 기회가 없었다. 이게 어떤 규모의 일인지, 어떻게 준비할지 정확히 가늠하기 어려웠다. 인생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 아주 귀중한 경험이었다. 앞으로 활동할 선수들도 꼭 경험해보면 좋겠다.
대회 준비는 어떻게 했나?
김:처음으로 합숙 훈련을 해봤다. 이전에는 집에서 혼자 몇 시간씩 온라인 플레이를 했다. 대회를 앞두고 ‘스파링’ 상대를 모집해서 그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그들만의 팁도 받고, 체계적으로 훈련하면서 실력 향상이 많이 됐다고 느꼈다.
강:대회에서 상대할 선수들이 저마다 잘 쓰는 캐릭터가 있다. 그 캐릭터를 잘 쓰는 선수들을 모집했다. 내가 소속된 스피릿제로는 국내 〈스트리트 파이터〉 대회를 주최한다. 경기 해설도 내가 맡았기에 선수 풀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한 명씩 따로 연락해서 연습 상대로 삼았다.
메달을 예상했나?
강:합숙 훈련을 진행하면서 선수의 실력 향상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메달권은 갈 만하다고 여겼고 메달의 색을 정하기 위해서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무조건은 없지만 금메달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김:상대 선수들이 어떤 캐릭터를 쓰는지 파악하고, 여기에 맞춰 체계적으로 훈련하면서 확실한 경기 대비가 되는 느낌이었다. 실수하지 않고 내 실력만 발휘하면 금메달이라고 봤다.
김관우 선수의 나이가 화제다. 다른 출전 선수들도 연령대가 높은 편이다.
김:어린 선수들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상대 공격에 대한 반응 속도가 확실히 빠르다. 그런데 격투 게임은 반응 속도뿐만이 아니라 심리전이나 대회 경험 같은 요소도 영향이 크다. 경험으로만 익힐 수 있는 강점이 내게 있다. 결승전 상대였던 타이완의 샹유린 선수도 나와 동갑인 44세다. 경기에 들어가기 전 나에게 “노장의 싸움이다(Old men’s fight)”라면서 인사하더라.
‘발로그’ 캐릭터만 썼다. 이유가 있나?
김:발로그가 객관적으로 최강의 캐릭터는 아니다. 사람들이 좋다고 평가하는 캐릭터들은 따로 있다. 발로그는 이동속도가 빠르고 공격 사정거리가 길어 지상에서 겨루는 싸움은 강한 편이다. 대신 (점프해서 가하는) 상대의 공중 공격에는 약하다. 그래도 내 심리전이 제대로 먹히면 충분히 누구나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연습할 때나 대회에서나 꾸준히 발로그를 플레이했다.
김관우 선수는 이전에 다른 직업이 있었다.
김:최근까지 게임 개발자로 일했다. 유명한 회사는 아니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전업 게이머’가 되었다. 회사 일을 그만두고 온라인 스트리밍을 시작했다가,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을 한다고 해서 출전하고, 국가대표가 됐다.
그간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김:부모님은 내가 게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냥 그런데도 어떻게든 계속하다가 여기까지 왔다. 이전에 다른 대회에서도 우승하면 부모님에게 말씀은 드렸다. 하지만 그런 작은 대회들을 우승한다고 큰 상금을 얻진 못하니, 부모님이 기뻐하실 만한 일은 안 됐을 거다. 내가 금메달을 땄다고 뉴스에 나오자 부모님은 굉장히 기뻐하셨고 내가 뭔가 큰 성공을 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뒤늦게 체감이 됐다. 이만큼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격투 게임 인기가 예전만 못한데 수익성은 괜찮나?
강:2008~2009년쯤 스피릿제로를 결성하고 격투 게임 주최와 중계를 해왔는데 수익이 난 적이 없다(웃음). 주변에는 ‘왜 〈스트리트 파이터〉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더 인기 많은 다른 게임 대회를 다루는 게 낫지 않으냐는 거다. 그때마다 내 대답은 같았다. 〈스트리트 파이터〉가 제일 좋아하는 게임이고, 제일 재미있게 해온 게임이다. 우리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종목이기도 하다.
격투 게임의 매력은 무엇인가?
강:직관적이라는 게 가장 큰 매력이다. 두 캐릭터가 나오고, 서로 치고받는다. 싸우면서 서로의 체력이 줄어드는 게 명확히 보인다. 그리고 화려한 기술 연출.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걸 게임을 못하는 사람도 알 수 있다. 바쁜 현대인에게 좋은 게임이기도 하다. 한 판 한 판이 짧아서 그렇다. 본인이 자제가 된다면(웃음) 5분 만에 게임 한 판 하고 출근하기 좋다.
김:추가로 이야기할 만한 건 특유의 조작감이 있다. 키보드, 마우스로 하는 게임들과 달리 ‘커맨드’를 입력하면서 느끼는 일체감이 있다. 다른 게임들보다 캐릭터도 크지 않나. ‘내 캐릭터’를 크게 보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 있다.
앞으로 계획은?
강:김관우 선수가 이번 대회 이후 주목을 많이 받아서 당분간은 ‘김관우 매니저’ 역할을 하려 한다(웃음). 출국할 때도 했던 생각인데, 이번 금메달을 계기로 뭔가 급변하고, 상황이 극도로 좋아지고 할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있던 자리에서 대회를 주최하고 해설하는 일을 묵묵히 할 생각이다.
김:당면한 일정을 마치고, 신작인 〈스트리트 파이터 6〉 연습을 하려 한다. 이번 대회 종목인 〈스트리트 파이터 5〉와는 거의 다른 게임이 되다시피 많이 바뀌었다. 장기적인 계획까지는 생각 안 하고 있다. 일단 하는 데까지 전업 게이머로 활동할 예정이다. 통상 게이머 수명을 군대 가기 전 정도로 잡는다고 들었는데, 나는 언제까지 할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런 걸 생각했다면 지금 이걸 안 하고 있지 않을까?
이상원 기자 prodeo@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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