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한국의 교육·여성 문제

한겨레 2023. 10. 3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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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저출생][세상읽기]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의 하버드대학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이철희|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국가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장

경제학의 수많은 분야 중 자신이 속한 분야의 학자가 노벨 경제학상 받는다는 소식은 고무적이다. 조금이라도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이 수상자라면 더욱 반가울 것이다. 202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클로디아 골딘 미국 하버드대 교수와 필자는 25년의 시차를 두고 같은 지도교수의 가르침을 받은 인연이 있다. 골딘 교수를 처음 만났던 것은 필자가 대학원생이던 1995년 여름, 미국 케임브리지의 한 세미나실이었다. 필자의 논문 발표 뒤 따로 찾아와 까마득한 후학의 설익은 주장에 조언을 베풀던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한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개인적인 인연을 넘어서 골딘 교수의 영예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수상자의 연구가 한국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골딘 교수는 경제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굵직한 업적을 이룬 석학이다. 학위논문에 기초한 첫 저서는 19세기 미국 도시의 노예제를 다루었고, 남북전쟁의 경제적 비용을 추정하는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수상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한국의 문제에 깊은 함의를 갖는 업적은, 미국의 장기적인 인적자본 축적과 여성 경제활동 변화에 관한 연구라고 할 수 있다.

골딘 교수는 20세기를 “인적자본의 세기”로 규정하고, 이 기간을 통해 미국이 경제적인 우위를 얻게 된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교육의 확대와 개선을 제시하였다. 산업과 기술이 빠르게 변하면서 새로운 인적자본 수요가 발생할 때 미국의 교육 시스템은 이를 탄력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고, 이는 경제성장을 견인하고 소득 불평등을 낮추는 역할을 했음을 밝혔다. 또한 197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의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소득 불평등도가 높아진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미국 교육제도의 인적자본 공급 기능 약화를 지적하였다. 고숙련 인력 부족이 해당 분야의 성장을 저해하고, 숙련도에 따른 임금 격차를 확대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고등교육의 수월성은 미국이 지닌 경쟁력의 중요한 원천으로 여겨진다. 골딘 교수는 미국 고등교육의 주된 덕목으로 분권화된 통제, 대학 간 경쟁, 다양성, 접근성, 기회의 제공 등을 꼽았다. 분권화, 경쟁, 다양성과 같은 특성은 대학이 세상의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여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는 데 도움이 된다. 학생에게 광범위한 선택권을 제공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유연하고 너그러운 교육 시스템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잠재적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러한 지적은 획일적인데다 경직되고 너그럽지 못한 한국의 교육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성 노동과 성차별에 관한 연구는 더 널리 알려진 골딘 교수 평생의 업적이다. 골딘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세기 초 이후 미국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기혼여성의 노동에 대한 거부감 약화, 산업구조 및 기술 변화 등에 힘입어 점차 확대되었으며, 1970년대의 소위 “조용한 혁명”을 거쳐 빠르게 증가하였다. 이 혁명은 일하는 삶을 기대하고, 학생 때부터 이를 준비하고, 일에서 보람과 만족을 얻게 된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일련의 공공정책은 이러한 혁명의 진행을 뒷받침했다. 골딘 교수는 미국 여성이 얻어낸 진보에도 불구하고, 장시간의 강도 높은 노동을 요구하는 일부 직종에는 여전히 ‘유리천장’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지적하였다.

골딘 교수가 명명한 “조용한 혁명”은 이미 한국에서도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한국 여성은 일터에서 성공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그 준비도 탄탄하다. 일과 가정이 충돌할 때 일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여성의 불리함을 없앨 수 있는 문화적, 사회경제적, 정책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한, 한국의 저출산 문제는 완화되기 어려울 것이다. 유리천장을 없애고 여성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하다.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발표 직후 폭발적으로 높아졌다가 금세 희미해지곤 한다. 이번 수상자인 골딘 교수의 연구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인구변화 대응이나 생산성 제고와 같은 중요한 문제와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만큼, 앞으로도 계속해서 심도 있게 논의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반영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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