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 선선한 바람, 기분 좋은 습도, 가을은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아닐 수 없다. 그중에서도 갈대밭으로 유명한 전남 순천은 특히 가을에 여행 가기 좋은 도시로 꼽힌다. 순천 하면 순천만습지와 국가 정원만 떠올리는 당신에게 갈대밭 보고 같이 들르기 좋을 순천의 다른 관광명소들을 소개한다.
응답하라 6080 ‘순천 드라마 촬영장’
첫 번째 명소는 ‘순천 드라마 촬영장’이다. 순천 드라마 세트장은 무려 4만m²(약 1만2000평)에 육박하는 국내에서 단일로는 가장 규모가 크다. 2006년 ‘사랑과 야망’을 시작으로 ‘제빵왕 김탁구’ ‘자이언트’ ‘에덴의 동쪽’ ‘오월의 청춘’ 등 60여 편의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했다.
평소에 드라마를 즐겨보지 않아도 괜찮다.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실제 거리를 재현해 둔 이 공간은 6080세대들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이후 세대들에게는 색다른 체험을 선사한다.
드라마 세트장은 크게 1960년대의 순천 읍내, 1970년대 서울 달동네, 1980년대 서울 변두리 거리 세 공간으로 나뉜다.
1960년대의 순천 읍내는 60년대의 실제 순천 옥천 냇가와 읍내 거리를 재현했다. 빛바랜 판자촌이 가득한 옥천 냇가는 갑자기 진짜 과거로 떨어진 것 같은 기분도 들게 한다. 냇가에서는 주막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는 파전, 막걸리, 번데기 등의 음식을 맛볼 수도 있다.
뒷골목에는 만화방, 파출소, 방앗간, 약국 등 옛날 그대로 옮겨 놨다. 이 부근은 제법 읍내 느낌이 물씬 난다. 재밌는 점은 일성곱창, 솔밭식당, 화월당 등 지금까지도 운영하는 순천의 맛집들도 재현해 둔 점인데 하나씩 발견해 가는 재미가 있다.
1960년대 순천을 봤다면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보자. 1980년대 서울 변두리 거리다. 이곳은 대표적으로 ‘빛과 그림자’와 ‘에덴의 동쪽’ 촬영했다. 특히 순양 극장은 ‘빛과 그림자’의 주 무대로 활용한 공간이라 해당 드라마를 즐겨봤다면 방문해 보길 추천한다. 이 거리에는 노래방이나 고고장 같은 시설도 있어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교복 체험장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서는 옛날 교복이나 교련복을 50분에 5000원으로 대여할 수 있다. 가족, 친구, 연인과 같이 교복을 빌려 입고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사진을 남겨보자. 교복 체험장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 매점에서는 쫀드기나 슬러시, 닭꼬치 등의 추억의 간식도 함께 판매한다.
1970년대 달동네 세트장은 소외된 서울 변두리 달동네를 그대로 가져다 놨다. 달동네이다 보니 60년대나 80년대 거리와 다르게 고지대에 있어 가벼운 등산이 필요하다. 서울 변두리 거리에서 이어지는 낮은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정자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달동네 전경을 볼 수 있다.
달동네 길을 따라 쭉 올라가면서 천천히 구경하다 보면 집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재현해 기분이 묘해진다. 마치 사람이 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누군가 당장 인사하고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동네의 꼭대기 부근에는 소망의 집이 나온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고 종을 세 번 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니 마음속에 몰래 품고 있던 소원 하나 빌어보는 건 어떨까.
살아있는 민속 박물관 ‘낙안읍성’
가을 하늘과 잘 익은 감나무가 더없이 잘 어울리는 낙안읍성. 이곳은 현재 90세대 주민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는 민속 마을이다. 성곽과 내부 마을을 원형과 가깝게 보존해 그 역사적 가치가 높다. 워낙 옛것이 잘 남아 있다보니 ‘대장금’ ‘구르미 그린 달빛’ ‘백일의 낭군님’ 등 여러 드라마가 낙안읍성을 배경으로 촬영했다.
보통 다른 성들은 남문이 주문인데 낙안읍성은 동문이 그 역할을 한다. 과거에 산에서 내려온 야생동물에 대한 피해 때문에 북문을 아예 없애 현재는 세 개의 문만 남아있다. 동문으로 입장해서 동헌과 옥사 등을 둘러보고 서쪽으로 이동한다. 전망 좋은 곳에서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며 남문이나 동문으로 돌아오면 끝이다.
동헌은 조선왕조 시기 지방 행정업무를 보던 곳이다. 낙안읍성의 동헌은 정면에서 바라보면 금전산과 건물이 어우러진 모습이 쇠 금(金)자로 보이도록 지어졌다. 내부에 있는 사무당에서는 실제로 재판을 시행 중인 모습을 사람 모형으로 만들어 어린아이들도 한눈에 이해하기 좋다.
동헌에서 나와 마을을 가로질러 걸어가면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곳곳에 광장과 같은 넓은 부지가 많이 보이는데 원래는 마을 안에 있던 낙안 초등학교가 밖으로 이사를 하면서 공간이 생겼다. 이제는 이 공간에서 행사를 대부분 진행하고 있다.
낙안 읍성에서는 실제로 축제나 행사도 자주 열린다. 10월에도 13일부터 15일까지 민속문화 축제를 진행했고 오는 11월 첫째 주 주말에는 전국 국악대전이 열린다. 낙안읍성 홈페이지를 참고해서 축제 기간에 맞춰서 방문하는 것도 즐거울테다.
낮은 산길을 지나 대나무 숲길을 지나니 전망 좋은 곳이 나왔다. 높게 올랐다는 느낌이 없었는데도 마을의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였다. 오른쪽으로는 황금빛 논밭이 보이고 왼쪽으로는 초가집 지붕들과 산이 보인다. 성곽을 따라 잠시 여유롭게 걸으며 시골 풍경을 감상했다.
한창기 선생님의 뜻을 계승한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
낙안읍성을 한 바퀴 돌고 남문으로 나가면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을 만날 수 있다.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은 한창기 선생님이 창간한 ‘뿌리 깊은 나무’ 잡지에서 따온 것으로 선생님이 생애 모은 유물들을 기증한 박물관이다. 생전에 수집한 유물 수는 무려 6500점에 달하는데 그중에서 6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내부에는 청동기 시대부터 광복 이후까지 한국의 전통과 깊은 연관이 있는 유물들을 많이 보관하고 있다. 토기, 기와, 자기부터 서적까지 예술과 문학을 넘나들며 다방면으로 관심이 많았던 선생님의 생전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입장료도 저렴하고 낙안읍성과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외부 정원도 조성했다. 단 매주 월요일은 휴무니, 방문 시 전 참고하자.
평화로운 일몰 명소 ‘와온해변’
일몰이 다가오면 와온해변을 찾아가야 한다. 와온마을에 위치한 와온해변은 순천의 일몰 명소로 유명하다. 동쪽으로는 여수, 서쪽으로는 순천만이 닿아있어 해변에서 순천만과 여수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일몰 무렵 도착한 작은 어촌 마을은 유독 평화롭게 느껴졌다. 일몰을 감상하려면 시간에 맞춰서 가기보다는 여유를 두고 도착하는 게 낫다. 일몰은 해가 떨어지는 순간보다 주변이 서서히 물들어 가는 모습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바다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한 시간 동안 바다와 하늘을 바라봤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노란빛을 띠고 있던 해가 점점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붉은색으로 변해간다.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잠시 해가 떨어지는 광경만 보고 있자니 다른 번잡한 고민은 다 잊게 된다.
이렇게 지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마음을 비울 수 있게 해주는 것도 여행이 가진 행복이 아닐까,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