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제시카법' 성범죄자 '지방 내몰기법'?…위헌 우려도
"범죄 재발 방지·억제 효과 없을 것, 구체적 대안 함께 논의돼야"
(부산=뉴스1) 이현동 권영지 기자 = 정부가 성범죄자들의 거주지를 제한하는 일명 ‘한국형 제시카법’을 최근 입법예고한 가운데 법의 실효성이나 세부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특히 일각에서는 이 법이 대도시 성범죄자들을 지방의 중소도시로 내모는 현상을 낳을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제시카법’은 지난 200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성폭행범에게 살해된 9살 소녀의 이름을 따 제정된 법이다. 12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학교·공원·교육시설 등 아동이 많은 곳에서부터 2000피트(약 610m) 이내에 거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형 제시카법은 미국과 우리나라가 영토의 물리적 특성, 거주환경 등이 다른 점을 고려해 국내 상황에 맞는 조건으로 세부 내용이 수정된 법이다.
적용 대상은 13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거나, 3회 이상 성범죄를 저질러 그 습관이 인정되는 사람, 전자장치 부착 명령·판결을 받은 대상자 중 성범죄로 인해 10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고위험 성폭력 범죄자’다. 현재 전국에 약 300여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이 출소 후 전자장치 부착 기간에 거주지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도록 하고,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운영하는 ‘지정된 시설’에서만 거주할 수 있도록 강제하는 것이 한국형 제시카법의 주요 골자다.
양국 제시카법의 차이점이자 갈등의 핵심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이 거주지 제한에 대한 내용이다. 미국은 아동이 많은 곳에서 일정 범위 내에 성범죄자가 ‘살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지만, 우리나라 법은 성범죄자가 특정 시설에만 ‘살 수 있도록’ 제한한다.
미국에 비해 국토가 좁고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 인구밀집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인구 특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사실상 고위험 성범죄자들을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 도시에서만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법안에 포함된 이 ‘지정된 시설’에 대해 형태나 위치 등의 상세 내용이 현재까지는 정해진 것이 없다. 다만 성범죄자 지정 거주 시설이 생긴다면 국민들이 가장 기피하게 될 혐오시설이 될 것이 분명한데,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에 생기는 것은 국민정서상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즉 이중 처벌이라는 지적과 이를 둘러싸고 지역 간 마찰·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점, 성범죄 발생을 억제하는 효과 자체와 관련해서는 전혀 실효성이 없는 법이라는 지적 등 입법예고 단계임에도 숱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들 역시 이런 부분들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다양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
박찬혁 영산대학교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성범죄자 거주 시설이 아무래도 수도권이 아니라 인구밀도가 낮은 도심 외곽에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들을 원래 살던 곳이 아닌 곳으로 보내면 자신의 원래 삶을 되찾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이는 곧 기본권 침해”라며 “또 특정 지역에 대한 혐오나 고립, 사회적 불만,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법이 성범죄 재발 방지·억제에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정식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아무리 성범죄자라 해도 특정 시설을 지정해 거기서만 강제로 살도록 하는 것은 헌법에서 정한 ‘주거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현실성이 없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만약 거주지가 정해지더라도 외출이 자유롭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이들이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더 구체적인 대안이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최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종합 국정감사에서 한국형 제시카법을 두고 “이 법의 필요성에 대해 1년 이상 연구했다. 완벽한 방안은 없었고, 최선의 방안을 낸 것”이라며 “현재 단계에서 거주시설의 위치·형태가 언급되면 건설적인 논의 진행은 불가능할 것이다. 당연히 논란도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필요한 법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lh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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