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관둬라” “승진 못 시켜” 속출… 육아휴직제 바꾼다
직장인 A씨는 출산에 앞서 휴직 문제를 놓고 회사 관리자와 상의했다. 회사는 “3개월인 출산휴가는 괜찮지만, (1년간) 육아휴직은 쓸 수 없다”고 했다. A씨가 “법으로 육아휴직을 쓸 수 있게 돼 있다”고 하자 인사 담당자는 사직서 양식을 내밀었다. 육아휴직을 신청한 직장인 B씨도 최근 해고 통지서를 받았다. 회사는 “인력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B씨가 그만두기도 전에 다른 직원을 뽑아 B씨 자리에서 일하게 했다.
우리나라는 최악의 저출생으로 ‘국가 소멸’ 위기까지 직면하고 있지만 근로자 상당수는 법이 보장한 출산·육아 제도마저 제대로 이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4월부터 운영한 ‘모성(母性) 보호 익명 신고센터’에 6개월 동안 220건의 신고가 접수됐다. 출산휴가, 육아휴직, 임산부 보호 등에 대한 법 위반 사항인데 이 중 육아휴직 관련 신고가 90건(41%)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육아 기간 근로시간 단축 38건(17%), 출산휴가 20건(9%) 등 순이었다.
현행법상 공무원은 3년의 육아휴직(1년 유급·2년 무급)을, 민간 기업은 최소 1년의 유급 육아 휴직을 보장받는다. 근로자 근무 기간이 ‘6개월 미만’이라는 한 가지 사유를 제외하면 사업주가 육아휴직 신청을 거부할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아이를 낳으면 일을 그만두거나 경력 단절로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C씨는 규정대로 출산 휴가를 쓴 뒤 육아휴직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출산휴가가 끝나는 날 ‘권고 사직’ 처리가 됐다. 회사 측은 “인력 공백을 계속 감당할 수 없다”는 이유를 댔다. 다른 직장인 D씨는 “연말쯤 출산 예정인데, 남은 연차를 쓴 뒤 출산·육아휴직에 들어가겠다”고 회사에 얘기했다. 하지만 회사 관리자는 “대체할 근무자가 일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라”며 결재를 차일피일 미뤘다.
남성 E씨는 2021년 약 6개월간 육아휴직을 썼다. 복직 후 열심히 일했고 진급도 기대했다. 그런데 회사 측은 “최근 2년간 육아휴직 사용자는 진급 대상에서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진급하지 못했다. 현행법상 육아 휴직자라는 이유로 승진 대상에서 빼면 불법이다. 당국이 E씨 사례를 적발하면 해당 회사는 과태료나 형사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E씨는 신고하지 않았다. 어디에 어떻게 신고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문제 제기를 해봐야 다른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선 E씨처럼 육아휴직으로 불이익을 받고도 침묵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동 약자들은 육아휴직뿐 아니라 다른 출산·육아 지원 제도도 마음 놓고 쓰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 중소기업에서 임신이 겹친 여직원들은 출산·육아휴직을 끝내고 2025년 초 업무에 복귀할 예정이었다. 이들은 아기를 돌보려고 주당 40시간인 근로시간을 15~35시간으로 줄이는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를 활용하고 싶었다. 그런데 부서장은 “같은 기간에 한 명 이상은 근로시간 단축제를 쓸 수 없다”며 “임신부끼리 조율해 보라”며 버티고 있다.
배우자 출산휴가를 제대로 못 쓰는 경우도 다수다. 지난 5월 아내가 출산한 남편 F씨는 배우자 출산휴가를 신청했다. 법으로는 10일(주말 및 공휴일 제외)이다. 하지만 남편은 회사 눈치 때문에 3일밖에 못 썼다. 아내는 “(남편 근무지 때문에) 연고가 없는 지방에서 애를 낳았는데 친정, 시댁 부모님들이 산후 조리를 도와주기 어려운 상황이라 남편 도움이 절실했는데 너무 속상했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금지돼 있는 임산부 야근도 여전하다. H씨는 임신 확인증까지 받았지만, 저녁과 새벽에도 일하는 당직 근무를 해야 했다.
임영미 고용노동부 통합고용정책국장은 “아이를 낳고도 출산·육아휴가 사용이 어렵다는 현장 목소리를 듣고 있다”면서 “규정을 어기는 사업체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봉 8000 받으며 매일 무단 귀가한 현대차 직원… 法 “해고 정당”
- ‘유령직원’ 만들고 고용유지지원금 3억 가로챈 헬스장 대표 등 기소
- 대구 택시 기본요금, 내년부터 4500원으로 오를 듯
- 野, 경찰청 찾아 ‘집회 충돌’ 사과 요구…경찰청장은 거부
- 光州 한강 작가 집터 대체부지 매입...시, 예비비 4억7000만원 써
- 오세훈 “지구당 부활은 공천 카르텔 부활, 양당 대표 이해관계 합치한 것”
- 은혜 갚은 삐약이… 신유빈, 취약계층 위해 4500만원 상당 식품 전달
- Food giant CJ CheilJedang eyes $4.3 billion sale of bio unit
- 대전 유흥·대학가 파고든 불법 홀덤펍…업주·도박자 등 308명 검거
- 동덕여대 “불법시위로 기물파손 등 피해심각…참여자 책임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