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 복원이 '역사왜곡'이 될 수 있는 이유[우보세]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광화문 월대 복원은 2003년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공언하면서 시작됐다. 2001년 5월 시작돼 2002년 7월까지 124부작 KBS드라마 '명성황후'가 인기리에 방영된 직후다. 사후 100여년을 '민비'로 불리던 '민씨'가 '명성황후'로 호칭이 높여진 것도 그쯤이다. 명성황후 뿐 아니라 흥선대원군과 고종에 대한 미화도 상당했던 그 드라마 내용을 실제 역사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드라마 '명성황후'와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런 면에서 '역사왜곡'이란 비판을 받았다.
광화문 월대 복원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월대 복원으로 조선 말 고종과 흥선대원군 치하의 아픈 역사가 자랑스러운 과거처럼 미화될 수 있단 점에서다. 미래세대에겐 잘못된 역사교육 장소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문화재청은 "서울 옛 모습 찾았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그 '옛 모습'은 고종 때인 1866년이다. 재위 4년차 고종이 14세였던 때다. 흥선대원군이 섭정하던 그 시절이고 조선이 망하기 겨우 수십년 전이다. 흥선대원군이 왕의 권위를 높이려고 조선 건국시에도 없던 월대를 경복궁 중건시 새로 만들었다. 역사상 가장 현명한 임금이었다는 세종 때에도 광화문에 월대를 만들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세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고종이나 흥선대원군이 판단력에서 세종보다 나은 통치자는 아닐 것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망가고 텅 빈 경복궁이 성난 백성들에 의해 불에 탔다. 270여년간 경복궁 자리는 폐허였다. 역대 임금들이 중건하려 했다지만 하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리한 중건을 실행한 흥선대원군도 권력을 아들에게 잃고 뒤로 밀려났다.
역사적 공간 복원엔 그 시절의 '영광' 혹은 '번영'도 재현하자는 의미도 담기 마련이다. 과연 고종·흥선대원군 시절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반추해야 한다.
문화재청이 지난 7월 초청해 방한했던 문화유산 보존·복구 분야 최고 국제기구 이크롬(ICCROM)의 수장인 웨버 은도로 사무총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월대 복원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독일이 히틀러 시절의 유산을 복원하지는 않는 것처럼 자랑스러운 유산이어야 보존하고 복원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유산 복원엔 공동체의 합의가 필요하단 의미다.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하고 결국 일제에 빼앗긴 조선 말 위정자들이 만들었던 월대는 복원가치가 뛰어난 유산으로 보기 어렵다. 복원에 쓰인 수천억원이면 일본 곳곳에 빼돌려졌다는 우리 문화유산 수백, 수천점 환수가능하다. 방탄소년단(BTS) RM이나 라이엇 게임즈가 기부한 돈으로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환수했다고 문화재청이 자랑할 일이 아니다. 월대 복원에 쓰일 예산으로 문화유산 수천점을 가져왔다는 소식이 국민을 더 기쁘게 했을 것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고종 말, 대한제국 역사를 교묘히 왜곡하는 듯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고궁 행사 홍보자료만 보면 고종처럼 훌륭한 왕이 없었다. 과연 이게 올바른 역사관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부끄러운 조상이라도 후손이 높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과거를 반성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문화재청은 꼭 4대궁에 큰 돈을 써야 일을 잘 하는 게 아니다. "전통 지키는 문화재청이 하는 일은 항상 옳겠지"라고 좋게 이해해주는 국민이 아직은 더 많다. 하지만 올해 재건한 덕수궁 돈덕전과 광화문 월대를 보고 있노라면 문화재청 하는 일이 모두 옳은 건지에 의문을 갖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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