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월대 복원이 '역사왜곡'이 될 수 있는 이유[우보세]

유동주 기자 2023. 10. 31.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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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서울=뉴스1) =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15일부터 내달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경복궁 내 건청궁을 특별 개방하고 당시의 궁중 생활상을 볼 수 있는 전시회도 함께 개최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건청궁 장안당 왕의 생활실. 건청궁은 1887년 대한민국 최초로 전기를 생산해 전등을 밝힌 곳으로 고종과 명성황후의 생활공간이자 조선의 여러 정책이 결정되는 중요한 장소로 사용됐다. (문화재청 제공) 2023.8.1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뉴스1) 임세영 기자 = 독서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고종의 서재였던 경복궁 '집옥재'(集玉齋)가 다시 열린 28일 서울 경복궁 집옥재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관람하고 있다. 집옥재는 '옥처럼 귀한 보물을 모은다'는 뜻으로, 1891년 건립돼 고종이 서재 겸 집무실로 사용하며 외국 사신을 접견한 장소다. 28일부터 11월7일까지 약 6주간 일반에 개방한다. 2022.9.28/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서울=뉴스1) 김민지 기자 = 19일 서울 중구 덕수궁 덕홍전에서 열린 한·독 수교 140주년 기념 특별전 '1899, 하인리히 왕자에게 보낸 선물' 전시 언론 공개회에서 관계자가 투구와 갑옷을 보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내달 2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고종황제가 1899년 독일 하인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에게 선물한 갑옷, 투구, 갑주함을 재현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2023.6.19/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웨스틴조선호텔 조리팀 쉐프들이 20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호텔 2층 연회장에서 '대한제국 황제의 식탁 특별전' 참여를 위해, 1905년 국빈 방문한 앨리스 루스벨트가 고종 황제와 함께 한 메뉴를 고증해 재현한 전통 한식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조선호텔과 덕수궁이 공동으로 참여한 이번 특별전에는 총 17종의 전통 한식 요리로, 열구자탕, 골동면, 수어증, 편육, 전유어 등이 전시된다. /사진=이동훈 기자 photoguy@
(서울=뉴스1) 이재명 기자 = 20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군 대한제국역사관에서 열린 '황제의 식탁' 특별전에서 관계자가 전시물을 살펴보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황제가 주최하고 참석한 경우에 제공된 음식은 한식이었다는 점과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내세운 구본신참(옛것을 유지하며 새것을 받아들임)의 개혁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대한제국 국빈 연회 상차림이 공개됐다. 2019.9.20/뉴스1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5일 서울 중구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린 '밤의 석조전' 사전행사 참가자들이 테라스에서 고종황제가 즐기던 가배(커피)와 서양식 디저트를 체험하고 있다. 2023.10.05.
[서울=뉴시스] 김명원 기자 = 1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월대' 앞에서 시민들이 살펴보고 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은 이날 오후 '광화문 월대 새길맞이' 행사를 열고 월대 및 주변부 광장을 공개한다. 2023.10.15.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25일 100년 전 대한제국 외교의 중심공간이었던 덕수궁 돈덕전이 복원을 마치고 언론에 공개됐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덕수궁 돈덕전 정면부. 덕수궁 돈덕전은 고종 즉위 40주년 칭경예식에 맞추어 황궁에 지은 서양식 영빈관. 2023.09.25.

광화문 월대 복원은 2003년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공언하면서 시작됐다. 2001년 5월 시작돼 2002년 7월까지 124부작 KBS드라마 '명성황후'가 인기리에 방영된 직후다. 사후 100여년을 '민비'로 불리던 '민씨'가 '명성황후'로 호칭이 높여진 것도 그쯤이다. 명성황후 뿐 아니라 흥선대원군과 고종에 대한 미화도 상당했던 그 드라마 내용을 실제 역사로 오해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드라마 '명성황후'와 뮤지컬 '명성황후'는 그런 면에서 '역사왜곡'이란 비판을 받았다.

광화문 월대 복원도 그런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월대 복원으로 조선 말 고종과 흥선대원군 치하의 아픈 역사가 자랑스러운 과거처럼 미화될 수 있단 점에서다. 미래세대에겐 잘못된 역사교육 장소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

문화재청은 "서울 옛 모습 찾았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그 '옛 모습'은 고종 때인 1866년이다. 재위 4년차 고종이 14세였던 때다. 흥선대원군이 섭정하던 그 시절이고 조선이 망하기 겨우 수십년 전이다. 흥선대원군이 왕의 권위를 높이려고 조선 건국시에도 없던 월대를 경복궁 중건시 새로 만들었다. 역사상 가장 현명한 임금이었다는 세종 때에도 광화문에 월대를 만들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세종은 허락하지 않았다. 고종이나 흥선대원군이 판단력에서 세종보다 나은 통치자는 아닐 것이다.

임진왜란 때 선조가 도망가고 텅 빈 경복궁이 성난 백성들에 의해 불에 탔다. 270여년간 경복궁 자리는 폐허였다. 역대 임금들이 중건하려 했다지만 하지 않은 데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무리한 중건을 실행한 흥선대원군도 권력을 아들에게 잃고 뒤로 밀려났다.

역사적 공간 복원엔 그 시절의 '영광' 혹은 '번영'도 재현하자는 의미도 담기 마련이다. 과연 고종·흥선대원군 시절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반추해야 한다.

문화재청이 지난 7월 초청해 방한했던 문화유산 보존·복구 분야 최고 국제기구 이크롬(ICCROM)의 수장인 웨버 은도로 사무총장은 기자 간담회에서 월대 복원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독일이 히틀러 시절의 유산을 복원하지는 않는 것처럼 자랑스러운 유산이어야 보존하고 복원할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문화유산 복원엔 공동체의 합의가 필요하단 의미다.

나라를 도탄에 빠지게 하고 결국 일제에 빼앗긴 조선 말 위정자들이 만들었던 월대는 복원가치가 뛰어난 유산으로 보기 어렵다. 복원에 쓰인 수천억원이면 일본 곳곳에 빼돌려졌다는 우리 문화유산 수백, 수천점 환수가능하다. 방탄소년단(BTS) RM이나 라이엇 게임즈가 기부한 돈으로 문화유산을 복원하고 환수했다고 문화재청이 자랑할 일이 아니다. 월대 복원에 쓰일 예산으로 문화유산 수천점을 가져왔다는 소식이 국민을 더 기쁘게 했을 것이다.

문화재청은 최근 고종 말, 대한제국 역사를 교묘히 왜곡하는 듯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고궁 행사 홍보자료만 보면 고종처럼 훌륭한 왕이 없었다. 과연 이게 올바른 역사관일까 생각해 볼 일이다. 부끄러운 조상이라도 후손이 높여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잘못된 과거를 반성해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문화재청은 꼭 4대궁에 큰 돈을 써야 일을 잘 하는 게 아니다. "전통 지키는 문화재청이 하는 일은 항상 옳겠지"라고 좋게 이해해주는 국민이 아직은 더 많다. 하지만 올해 재건한 덕수궁 돈덕전과 광화문 월대를 보고 있노라면 문화재청 하는 일이 모두 옳은 건지에 의문을 갖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다.

유동주 기자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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