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무슨 죄… 잔인한 ‘비속살해’ 되풀이 [집중취재]
법률 지정된 ‘존속살해’와 대조...“엄중 처벌로 아이들 보호해야”
‘일가족 숨진 채 발견’, ‘아이 낳고 살해’…. 최근 매스컴에는 과거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다는 아가페적 사랑은 사라졌다. 자식을 하나의 도구로 여기며 살해하는 범죄는 이제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됐다. 그러는 사이 생활고를 이유로 일가족이 생을 마감했다는 기사에는 ‘얼마나 힘들었으면’이라는 동정이 따라붙게 됐다. 부모의 선택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모를, 어떤 미래가 기다렸을지 모를 한 아이의 생이 끝났음에도 말이다. 아직 국내에는 비일비재한 이 같은 범죄를 부를 말이 정의돼 있지 않다. 이에 경기일보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도록 처벌 강화 등의 대안을 찾고자 한다. 편집자주
집중취재 '가족이 더 무섭다'
지난 19일 30대 친부가 3개월 된 아이를 학대·살해한 뒤 시신을 야산에 묻어 유기한 범죄가 발생했다. 이들이 생후 100일밖에 되지 않은 아이를 살해한 이유는 ‘울고 보채서’였다. 친모도 함께 있었지만, 범행을 신고하는 대신 묵인하는 길을 택했다. 태어난 지 이제 고작 100일밖에 되지 않은 아이에게 따뜻하게 안아 울지 않게 달래줄 부모는 없었다.
올해 4월 화성에서는 40대 친모가 아들을 살해했다. ‘너무 힘들다. 아들을 내가 먼저 데리고 간다’는 메모를 남긴 채 아이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그는 살아남았다. 여섯 살 아이는 가장 믿고 있던, 어쩌면 세상의 전부였을 어머니의 손에 이유도 모른 채 죽어갔다.
두 사건 모두 부모에게 적용된 범죄 혐의는 ‘살인죄’다.
30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에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범죄에 대한 정의가 없는 것은 물론 별도의 관리도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존속살해’에 대해 반인륜적 범죄라는 이유로 가중 처벌 조항을 법률에 지정해 둔 것과 차이를 보인다. 과거에는 부모는 공경의 대상인 반면 자녀는 부모에게 속해 있는 존재 정도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자녀를 살해한 행위가 별도의 범죄로 처벌받지 않다 보니 비속살해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자녀를 살해한 후 부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에 한해 보건복지부의 보고 문건을 통해 관련 범죄 추이를 추정할 뿐이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한 ‘2020년 아동학대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은 2016년 36건, 2017년 38건, 2018년 28건, 2019년 42건, 2020년 43건으로 증가 추세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아이를 낳자마자 살해하는 이른바 ‘영아살해’가 전국적으로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비속살해에 대한 가중처벌을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화정 아동권리보장원 아동보호본부장은 “왜 부모가 아이를 때리고, 죽이는 게 안 되는지에 대한 국민 모두의 합의가 있어야 한다. 잘못됐다는 인식이 먼저 생겨야 할 것”이라며 “비속살해에 대한 처벌 강화와 함께 위기에 빠진 아이들을 보호할 시스템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끊이지 않는 '비속살해', 관련법 개정 감감무소식
부모가 자녀를 살해하는 ‘비속살해’가 끊이지 않으면서 가중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와 관련된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방치돼 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형법상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할 경우 ‘존속살해죄’를 적용받아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다.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살인죄보다 무거운 형량으로 가중처벌하는 셈이다. 상해·폭행·유기·학대·체포·감금·협박 등의 강력범죄 역시 존속을 대상으로 할 때는 가중처벌을 받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현행법상 직계비속에 대한 강력범죄를 가중처벌 하는 조항은 없다. 직계비속을 살해한 경우에 관련된 유일한 죄명은 ‘분만 중 또는 분만 직후’ 아이를 살해했을 때 적용하는 ‘영아살해죄’ 뿐이다. 그러나 영아살해죄는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라 존속살해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이에 비속살해죄를 신설해 관련 범죄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자식이 부모에게 범죄를 저지를 경우 가중처벌을 하면서도 자기결정권이 부족한 자식을 상대로한 범죄에는 관대한 태도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으로 발의된 형법 개정안은 5건에 달하지만, 국회의 문턱에 걸려 가시적인 성과는 전무한 상태다.
지난 2016년 신원영군(당시 7세) 사건, 2017년 고준희양(당시 5세) 사건 등이 여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2018년 비속살해죄의 가중처벌을 담은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됐지만, 법제화되지는 못했다.
또 지난 2021년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이 비속살해죄를 신설하는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상임위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발의된 법안은 형법 제250조 ‘존속살해’를 ‘존·비속살해’로 하고, 같은 조 제2항 중 ‘직계존속’을 ‘직계존·비속(직계비속의 경우 13세 미만에 한정한다)’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만종 호원대 법경찰학과 교수는 “아이를 살해하는 것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는 등 관련 법안이 개정되기 위해선 인식 개선과 국민의 합의가 필요하다”며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닌 독립된 인격체라는 인식이 생겨야 법적으로도 아이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해외선 ‘자녀 폭행’도 가중 처벌하는데…갈길 먼 한국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아동학대는 물론 비속살해죄 역시 가중처벌하고 있다. 이는 자녀 역시 하나의 인격체라는 의식에서 출발하는 데, 국내 고유의 문화상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는 어긋난 인식을 개선하는 게 비속살해죄의 고리를 끊을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30일 세계법제정보센터 등에 따르면 해외의 경우 자녀 관련 범죄에 대해 더욱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다. 1979년 세계 최초로 ‘가정 체벌금지법’이 시행된 스웨덴의 경우 아동학대로 중상해나 치사가 발생하지 않아도 최대 징역 10년까지 처벌이 가능하다.
영국은 의도적인 아동 폭력, 학대, 방임, 정신적 학대만으로도 최대 10년형에 처하고 있다. 미국도 각 주의 형법에 따라 아동 학대와 방치 모두 처벌 대상이다. 프랑스 역시 아동의 직계존속이나 친권자가 폭력을 이용해 15세 미만 아동을 의도와 상관없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 30년의 징역(의도적 살인의 경우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동학대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률개정이 최근에서야 이뤄진 것은 물론 비속살해죄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를 두고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는 가부장적·집단주의 문화에서 비롯된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이는 곧 정서적인 참작의 여지이며 비속살해에 대한 엄격한 처벌이 이뤄지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자녀는 하나의 인격체이고 생명이기 때문에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 생명에 대한 박탈권은 없다”며 “해외 주요 국가 벤치마킹 등을 통해 존속살인과 마찬가지로 비속살해죄 역시 엄격하게 처벌하도록 하는 움직임이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김은진 기자 kimej@kyeonggi.com
김기현 기자 fact@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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