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였을지 모를 당신에게"... 20만장 포스트잇이 보낸 보랏빛 연대 [이태원 1주기]
사고 현장에 붙은 위로·공감·연대 메시지 발췌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은 쉽게 잊히지 않을 겁니다. 책임을 다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 기억하겠습니다."
(직장인 이모(26)씨가 남긴 추모 메시지)
159명이 목숨을 잃은 2022년 10월 29일의 비극. 파장을 떠안은 건 희생자·유족, 생존자뿐은 아니었다. 참사는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시민들 마음 곳곳에도 생채기를 남겼다. 골목길을 걷다가 당한 압사사고였다. 어쩌면 나였을지 모르는 죽음 앞에 누군가 몸을 떨었고, 안전하지 못한 사회에 무력감을 느꼈다. 참사 다음 날부터 이태원역 1번 출구로 향하는 발걸음이 시작된 건 그래서다. 그리움, 분노, 미안함, 위로, 그리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한 자 한 자 포스트잇에 담겨 참사 현장을 지켰다.
1년이 지났다. 유족들은 비난과 혐오에, 생존자는 트라우마와 손가락질에 힘겨워하지만, 참사에 아파하며 1년간 20만 장의 포스트잇을 만들어낸 연대자(連帶者)들이 여전히 곁에 있다. 감히 위로조차 건네기 조심스러워 조용히 손을 보태기도, 보라색 리본을 달아 애도의 마음을 표하기도, 함께 슬퍼하며 그날을 기록하기도 한다. 연대를 마다하지 않은 시민들은 참사에 공감했고, 피해자를 위로했으며, 상처를 치유하는 '기억의 힘'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처음엔 왜 거기 갔나, 안타까웠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거기 간 게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더 미안합니다."
(사회복지사 허모(57)씨의 추모 메시지)
"함께 죽음을 기억하며 살아갈 힘 얻어요"
시인 윤은성(36)씨는 주말에 시간이 날 때면 이태원역으로 향한다. 1번 출구 앞 벽에 가득 찬 추모 메시지를 정리하기 위해서다. 일명 '기억담기' 활동이다. 올해 7월 이를 주관하는 시민단체 문화연대'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손을 보태겠다고 자원했다. 가족을 잃은 허망한 유족에게 한마디 말을 전하기보단 차라리 손과 몸을 놀려 마음을 보태고 싶었단다.
한 달에 두 번, 적게는 3명 많게는 10명 넘는 인원이 이태원역 앞에 모여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수거한 포스트잇을 서울 마포구 문화연대 사무실에 가져온 뒤, 유족·외국인·일반시민 등 내용별로 분류해 A4용지에 정리하는 작업을 거친다. 그러다 보면 네다섯 시간은 훌쩍이다. 윤씨가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이유는 뭘까.
2022년은 윤씨에게 재난으로 기억되는 한 해였다. 여름철 폭우로 반지하에서 사람이 죽었고, 세 달 뒤 이태원 참사가 있었다. 반지하에 살고 이태원을 자주 오가던 그였기에, 참사는 '나의 일'로 다가왔다.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 이상 책상에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시를 쓰기도 유족을 직접 만나기도 선뜻 용기가 안 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죄책감만 쌓이던 와중에 기억담기를 만났다.
"위로 메시지를 정리하다 보면 제가 발 딛고 서있는 세상과 연결된 느낌이 들어요. 참사를 마주할 땐 죽음 앞에 서있는 기분이었다가 함께 기억담기를 할 때면 숨이 쉬어지는 느낌이 들더군요. 죽음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역설적이지만, 제가 살아가는 힘을 얻죠."
"참사가 발생했을 무렵 저는 평범한 하루를 보냈어요. 그래서인지 더 황망했어요. 저는 이제 누군가와 내가 서로 아무 관계가 없는 타인일 뿐이며, 서로 무관하다는 말은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인 윤은성(36)씨의 추모 메시지)
"얼굴 맞대고 같이 슬퍼합시다"
이태원작가기록단에 참여한 박희정(47)씨도 당사자 목소리를 기록하며 안도감을 느낀다. 박씨는 9개월간 10여 명의 기록단과 함께 피해자 구술집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를 만들어 출간했다. 2014년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의 이야기인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썼다.
그는 듣고 또 듣는다. 피해자가 말을 하며 자기감정을 이해하고, 문제가 무엇인지 찾으며, 이를 설명할 수 있게끔 한다. 그리고 쓴다. 참사가 그저 누군가의 불행한 죽음에 그치지 않고, 원인이 된 사회 구조를 바꿀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일련의 과정은 피해자가 외로움과 슬픔을 견디는 힘이 되는 동시, 박씨에게도 스스로에 대한 위로가 된다. 참사 당시 사회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무력감은 "그래도 누군가를 혼자 내버려 두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으로 덮인다.
"세상이 오로지 절망으로만 가득 차 있진 않았구나 하는 증거들을 찾는 작업 같아요. 슬픔이 개별화되고 고립감을 느끼면 더 큰 슬픔이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 함께 슬픔을 같이 직면하자. 우리 얼굴 맞대고 힘내보자 말씀드리고 싶어요."
"참사 날 들은 노래 아직도 못 들어요"
직접 행동하진 못해도 마음으로 공감하며 위로를 보내고자 하는 이들은 더 많다. 한국일보는 이태원 1주기를 맞아 시민 50명으로부터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보내는 추모 메시지를 받았다. 사회복지사 강현숙(55)씨는 "이태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참혹한 현장이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며 "유족들에게 힘을 내라 말하기 송구스럽지만, 그래도 힘내셨음 좋겠다"고 했다. 직장인 장모(26)씨는 "참사 당일 듣던 노래를 다신 듣지 못한다"며 "충분히 아파한 후에는 그 노래를 들으며 참사를 기억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메시지 대부분은 말을 떼기 어렵다는 말부터 시작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을 쉬이 가늠할 수 없어서다. 그리고 잊지 않겠다는 약속으로도 이어졌다. "국가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거나 "국민이 주인인 것은 맞냐"며 정부의 책임을 따지는 반응도 있었다.
이태원 현장에서도 메시지 추모는 끊이지 않는다. 문화연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30일부터 올해 10월까지 1년간 모인 포스트잇은 약 20만 장. 문화연대 박이현 활동가는 "10월이 다가오면서 메시지가 더 붙고 있다"며 "포스트잇이 동나거나 펜이 사라지면 어느새 익명의 시민들이 채워 넣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추모하는 마음이 모여 1년의 시간을 꽉꽉 채웠다.
그러나 위로의 물결 속에서 이따금 비수처럼 날아와 팍팍 꽂히는 비난과 혐오는 여전히 유족과 생존자들의 가슴을 헤집는다. 희생자 오지연씨의 아버지 오영교(53)씨는 1년간 가장 힘든 건 사람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견디는 일이라고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툭 던지는 말 있잖아요. 아직도 저러고 있네. 너네 놀러 가서 그렇게 된 거 아니냐. 그런 말들이 상처가 돼서 쌓이고 쌓여요."
그럼에도 그는 "잊지 말아 달라"는 의미의 보라색 리본을 접고 또 접어 시민들에게 건넨다. 혐오의 말이 언제 또 날아올까 두렵더라도 그만둘 수 없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혐오를 이기기 위해선 위로의 말들이 적극적으로 발화될 장(場)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추모는 예방주사와 같아서, 참사 때 추모를 충분히 하지 못하면 다른 재난이 올 때 더 아파하고 흔들린다"며 "비난하는 소수보다 침묵하는 다수들이 더욱 목소리를 낼 필요도 있다"고 강조했다.
서현정 기자 hyunj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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