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스타 된 강북구청의 '톰과 제리'… "성공 비결은 구청장의 무관심"
직장 에피소드에 정책 홍보 녹여내
능청스러운 생활 연기로 "동네스타"
“과장님, 구민체육대회 계획안이에요.”
“수고했어, 서무주임. 그런데 글씨가 명조체네. 체육대회는 고딕이지!”
“성화봉송 주자는 구청장님이에요.”
“좀 식상한데. 성화대로 불화살을 쏘면 어떨까? 드론을 날려볼까?”
과장님의 허무맹랑한 참견에 서무주임이 뒤돌아 투덜거린다. “에휴, 올림픽도 아니고.” 아니나 다를까. 시연을 해 보니 화살은 빗나가고 드론은 추락한다. 결국 돌고 돌아 계획안은 원안대로 통과. 서울 강북구 유튜브에 올라오는 공무원 콩트 시리즈 ‘공덜트’에 소개된 에피소드다. ‘헛수고’도 업무의 일부로 여기게 된 직장인들의 심금을 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구민체육대회 홍보도 하는 재치 있는 구성에 ‘좋아요’가 쏟아진다.
요즈음 강북구에서 ‘공덜트’를 모르면 섭섭하다. 실제 강북구 공무원인 ‘귀여운 꼰대 과장님’ 이진석 홍보담당관과 ‘허당 서무주임’ 양동현 주무관이 직장 다반사를 ‘짠내’ 나는 생활 연기로 풀어내 편당 5만~33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고 있다. “진짜 공무원 맞나” “배우인 줄 알고 구청 홈페이지 들어가 확인해 봤다”는 댓글도 달렸다. 덕분에 강북구 유튜브도 ‘대박’이 났다. 지난해 말까지 구독자수 3,000명으로 서울 자치구 25개 가운데 꼴찌였으나, 반년 만에 3배 넘게 불리며 9위로 올라섰다.
공직생활 32년 차 이 담당관과 15년 차 양 주무관은 콩트에서뿐 아니라 실제로도 강북구청 홍보실에서 함께 일하는 선후배 사이다. 이달 19일 강북구청에서 만난 이 담당관은 “맡은 업무가 구정 홍보라, 그저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양 주무관은 “과장님이 쑥스러워하는 모습도 연기 같다”며 “끼가 넘치고 웃기기로 구청에선 이미 소문이 자자했던 분”이라고 귀띔했다.
유튜브 출연은 갑작스럽게 성사됐다. 영상 제작ㆍ연출을 담당하는 오광근 주무관이 올해 초 스케치 코미디 형식 코너를 구상하던 즈음, 이 담당관이 홍보실에 부임했다. 삼고초려해도 모자란 ‘개그 인재’가 제 발로 찾아온 셈이다. 여기에 대학 시절 축제 사회자로 캠퍼스에서 이름깨나 날렸던 양 주무관을 상대역으로 붙였다. 그렇게 ‘톰과 제리’ 버금가는 명콤비가 결성됐다. 오 주무관은 “카메라 앞에서 떨지도 않고 능청 연기를 하더라”며 “애드리브(즉흥연기)를 많이 하는데 영상에 다 담아내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라고 했다.
‘공덜트’가 공감을 얻은 건 정책 홍보를 현실적인 에피소드에 절묘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당직실 민원 소동극엔 ‘구정 소식 문자알림 서비스’를 집어넣고, ‘퇴근 후 맥주 한잔 하자’는 선배와 거절하는 후배의 ‘밀당’을 그리면서 지역 맥주축제를 알린다. 탈인형을 쓰고 구정 홍보에 나선 직원들의 애환을 통해 강북구의 새 캐릭터를 공개하기도 한다. 이 담당관과 양 주무관은 “공무원은 꽉 막혔을 거란 선입견과 달리, 여느 평범한 직장인과 똑같이 실수하고 배우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보여줘서 시청자들이 희열을 느끼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두 사람은 ‘공덜트’ 성공 비결로 뜻밖에(?)도 “구청장의 적절한 무관심”을 꼽았다. “열린 자세와 숨은 지원” 덕분에 “창의성과 자율성을 존중받고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제작 과정에서 보고나 결재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공덜트’에선 구청장도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직원이 탈인형을 벗고 땀을 식히며 “120대 1 경쟁률 뚫고 들어왔는데 공무원 생활 힘들다”고 토로하자, 다른 탈인형 속에서 갑자기 이순희 구청장이 나타나 “(선출직이라) 나는 3대 1이었는데”라고 한마디 보탠다. 댓글창은 “이런 게 적극행정”이라며 칭찬 일색이다.
이 담당관과 양 주무관은 이미 ‘동네스타’다. 구청 직원의 친구, 자녀, 지인들이 ‘팬’이라면서 구청에 찾아오기도 하고, 거리를 걷다 보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오는 주민들도 많다. 최근 구민체육대회에선 주민들이 줄 서서 두 사람과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 담당관은 “종잇조각 하나 무심코 버리지 못하고 몸가짐을 조심하게 됐다”며 껄껄 웃었다. 출연료도 없고 촬영 때문에 야근이 잦은데도 먼저 출연 의사를 전해 오는 직원들도 부쩍 많아졌다.
두 사람은 강북구에서 성장했고 지금도 이곳에 사는 토박이다. 그래서 애향심이 남다르다. 유튜브를 통해 강북구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주민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게 목표다. “강북구에 경복궁 같은 상징물은 없지만, 북한산과 우이천 곳곳에 숨겨진 명소가 정말 많답니다. 언젠가 ‘공덜트’ 없이도 강북구 브랜드가 우뚝 서기를 바랍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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