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원조 ‘인어공주’ 애니 만든 감독 “PC 위해 관객의 몰입 방해해서는 안돼”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아버지, 존 머스커 감독은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할아버지처럼 장난기가 넘쳤다. 사진 촬영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그는 탭댄스를 추는 시늉을 하며 리듬을 탔다. 머스커 감독은 ‘인어공주’(1989) ’알라딘’(1992) 등을 제작하며 디즈니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지난 20일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BIAF)에서 명예공로상을 받은 그는 “여전히 내 안엔 슬랩스틱을 좋아하는 여덟 살짜리 소년이 산다”고 했다.
1981년 디즈니에 애니메이터로 입사했다. 애니메이션은 침체기에 빠져 있었고, 당시 회장은 애니메이션 부서를 창고로 내쫓고 코미디 영화에 눈을 돌렸다. 그가 만든 ‘인어공주’는 어린이용으로 취급받았던 애니메이션의 관객층을 성인까지 넓히는 전환점이 됐다. 음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애니메이션이 노래의 안무처럼 들어맞는 오늘날 디즈니 만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머스커 감독은 “음악과 애니메이션이 연결되는 마법 같은 순간을 사랑한다”고 했다. “영화에서 음악을 뺐는데도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면 뭔가 잘못된 거예요. 음악은 스토리에 변화를 주거나, 캐릭터의 내면을 드러내는 역할을 해야 하죠.”
올해 ‘인어공주’는 34년 만에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다. 흑인 배우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해 과도한 PC주의라는 논란도 불거졌다. “인종에 상관없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를 캐스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관객에게 혼란을 줄 때 문제가 생기죠.” 그는 백인 배우가 애리얼, 흑인 배우가 아버지 ‘트리톤’ 역할을 맡았던 뮤지컬 ‘인어공주’를 예로 들었다. “그럼 관객은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죠. ‘엄마가 백인인가?’ 오로지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몰입을 방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죠.”
각색에선 창작자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역시 인어공주가 물거품으로 사라져버리는 새드 엔딩을 해피 엔딩으로 바꾸면서 안데르센의 나라 덴마크에서 원성을 샀다. “홍보를 위해 덴마크에 갔을 땐, 공동 감독인 론 클레멘츠가 여왕을 찾아가 사과했어요. 그랬더니 여왕님이 괜찮다고 하시더래요. 어차피 안데르센은 우리가 어떻게 결말을 바꿨는지 모를 거라고(웃음).”
그는 시대 변화에 따라 전형적이지 않은 캐릭터들을 만들어왔다. ‘알라딘’의 자스민은 디즈니 초기 공주 중 유일하게 백인이 아니었고, ‘공주와 개구리’(2009)에선 첫 흑인 공주 티아나를 만들었다. ‘모아나’(2016)는 폴리네시아 부족장의 딸로 “난 공주가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바다로 모험을 떠난다. “여성 프로듀서나 작가들과 함께 일한 게 큰 도움이 됐어요. 그러고 보면 인어공주도 백설공주보단 능동적이고 주체적이지 않았나요?”
그가 생각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저력은 “충분한 제작 기간”이었다. “애니메이션은 원래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에요. 디즈니는 몇 번이고 수정하고, 의견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꺼이 시간을 할애하죠.”
5년 전 디즈니에서 은퇴하고 지금은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있다. BIAF에선 4년에 걸쳐 직접 손으로 그린 4분짜리 단편 ‘나는 힙(I’m hip)’이 공개됐다. 줄곧 감독으로 일해왔던 그가 직접 펜을 잡은 건 30여 년 만이다. “애니메이션을 처음 시작했을 때 느낀 스릴처럼, 그림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더라고요. 손끝에서 그림이 살아나는 마법을 보기 위해, 앞으로도 CG는 멀리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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