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다시 등장한 ‘영끌’ 투자, 현 정부의 엇박자 정책 탓도 있다

조선일보 2023. 10. 31.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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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열린 고위 당·정·대 협의회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고위 당정협의회에서 “가계 부채 위기가 발생하면 지난 1997년 기업 부채로 인해 겪었던 외환 위기의 몇 십배 위력이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과거 정부에서 유행한 ‘영끌 대출’이나 ‘영끌 투자’ 행태는 정말로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김 실장은 과거 정부 탓을 했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만은 볼 수 없다.

그동안 정부는 집값 급락을 막고 부동산 연착륙을 유도하겠다며 취약 계층, 청년층에게 특례보금자리론을 완화하는 등 대출을 풀어주는 정책을 폈다. 세계적 고금리 시대에 대출을 풀어주는 엇박자 정책을 편 것이다. 그러자 부동산 급등기에 집을 못 산 2030세대와 무주택자들이 다급하게 주택 구입에 나섰다. 하락하던 집값이 거꾸로 반등했다. 올 들어 서울과 수도권에서 나타난 기현상이다.

당연히 올 4월 이후 가계 부채가 월 2조~6조원가량씩 늘었다. 10월 들어서도 5대 시중은행의 가계 대출이 한 달 전보다 2조4000억원 넘게 늘었다. 10월 증가 폭으로는 2년 만에 가장 큰 규모다. 이 증가분의 91%를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했다. 특히 젊은 세대가 무리하게 빚을 내 아파트를 사는 ‘영끌’ 투자에 다시 나섰다. 최근 1년 새 5대 은행과 6대 증권사에서 2030세대가 빌린 돈이 133조여 원인데 그중 63%가 집 사려고 빌린 돈이다. 정부가 엇갈린 신호를 주어 고금리 상황에 ‘영끌’이 다시 나타났는데 정부가 ‘영끌’을 두고 전 정부 탓만 할 수 있겠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가계 부채가 안 잡히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미 시중에선 이 총재의 경고도 말 뿐이고 기준 금리를 올리지 못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김 실장의 ‘영끌’ 경고도 이렇게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한번 방향을 잘못 잡은 결과가 이렇다.

‘영끌’이란 비상식적 부동산 투기가 일어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잘못 때문이다. 실패한 부동산 정책을 고집해 집값 폭등을 불렀고, 이를 경험한 사람들이 빚을 내서라도 집부터 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특히 20~30대 젊은 층 사이에 이런 생각이 컸다. 정권이 바뀌었다면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거꾸로 갔다.

정부는 가계 대출 억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은행들도 정부 방침에 맞춰 대출 금리를 추가로 올리고 있다. 하지만 대출을 조이는 것만으로 ‘영끌 투자’를 막기는 힘들 것이다. 지금 부동산 시장에서는 아파트 공급 물량이 급감하는 바람에 2025년부터 집값이 폭등할 가능성이 있다는 불안한 전망이 나돌고 있다.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인 대책은 무리하게 빚내 집을 사지 않더라도 기다리면 집이 풍부하게 공급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파격적인 주택 공급 대책을 세우고 서둘러 실행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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