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 년 전 염전 자취를 따라…부산의 짜디짠 서사
- 맥도생태공원 도보체험 전시
- 지역작가 6인 작품 감상하며
- 부산 사라진 소금문화 되짚어
- 장아찌 담기 등 참여형 행사도
부산에도 1960년대까지 염전이 있었다. 부산(釜山)의 한자 ‘부(釜)’가 소금 굽는 가마에서 유래했다는 해석이 있다. 당시 부산의 ‘자염’은 천일염과 달리 큰 가마에 구워서 만들었기 때문. ‘분포’라 불렸던 용호동과 낙동강 유역 명지·신호동 염전이 유명했다. 자염을 실은 소금배는 낙동강을 따라 경남 밀양 삼랑진을 거쳐 경북 안동까지 올라갔다고 기록된다.
소금밭이 사라진 지 60여 년, 부산의 짜디짠 풍경은 왜 사라졌을까. 짠 것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실험실 씨(Lab C)의 리서치 프로젝트 ‘짠 것들의 연결망’은 부산의 염전과 소금 문화를 둘러싼 짜디짠 서사를 예술로 풀어낸다. 짠물(바다) 짠흙(땅) 짠맛(소금기)을 주제로 경계를 넘나들며 전개된 소금기의 서사는 지난 27~29일(하루 2회) 부산 강서구 맥도생태공원 일대에서 관객 참여형 전시로 공개됐다.
▮ 소금과 갈대·깃대 이야기
전시는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맥도생태공원의 생태와 부산의 짠 이야기를 살피고 참여 작가 6명의 작품을 체험해 보는, 보고 듣고 맛보고 즐기는 감각 체험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주차장에서 출발해 원점회귀하는 도보 코스로, 2시간30분 소요됐다. 전시 관련 유인물은 제공하지 않았다. 대신 질의응답 방식 카카오톡 챗봇 서비스를 이용했다.
박미라 숲 큐레이터의 습지식물 이야기로 시작했다. 관객은 맥도생태공원을 거닐며 낙우송과 왕버들, 연꽃습지에 대한 설명에 귀 기울였다. 가을 정취를 끌어올리는 갈대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곳은 염전과 갈대 때문에 ‘염막(簾幕)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과거 자염을 만들 때 가마 땔감으로 마른 갈대를 썼다. 갈대밭 사잇길에 설치된 정만영 작가의 사운드 작품 ‘예천 보리밭’은 색달랐다. 바람에 갈대들의 몸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로 음악과 새소리 물소리가 어우러져 흘렀다. 명지 소금배가 경북 예천까지 올라왔다는 박상기 선생의 구술기록을 바탕으로, 예천 들판에서 채집한 소리를 재생한 것. 눈을 감고 청각으로 집중하니 맥도 풀밭에서 예천 보리밭을 느낄 수 있었다.
김경화 작가는 하얀 깃발(깃대) 수십 개를 여러 겹의 원형으로 꽂은 작품 ‘깃대에 기대’를 전시했다. 과거 하얀 깃발은 소금밭으로 주민을 모으는 신호였다. 작가는 낙동강 하구 생물 5종을 관객이 직접 그리고 깃대에 묶어보는 형식으로 참여를 유도했다. 옛 마을 공동체가 깃대를 통해 서로 보살폈듯, 강제로 물길을 막으면서 사라진 깃대종(지역을 대표하는 동식물)의 회복을 염원하는 작품이다.
▮ 짠 땅의 기억과 사람들
사라지는 기억, 붙잡고 싶은 순간을 ‘염장’하는 참여형 퍼포먼스 ‘염하다. 절이다. 저장하다’ 장소로 이동했다. 퍼포먼스팀 신토불이클럽은 명지 대파, 낙동김 장아찌를 담그며 사라지는 식문화, 기억을 저장하고자 한다. 휘발되는 기억도 소금으로 짠지를 만들면 더 머물러주지 않을까. 관객은 오랫동안 남기고 싶은 기억을 종이에 쓴 뒤 소금으로 염하는 퍼포먼스를 함께했다.
다음은 봉제인형 어린 새(유조) 설치 작품인, 전지 작가의 ‘어린 새들의 곳’과 김재민이 작가의 ‘부산의 釜는 소금가마 부 (유사)논문 출판기념회 퍼포먼스’로 향했다. 탐방데크엔 소금배 관련 구술기록이 설치됐다. ‘소금배는 크지예. 한 70자(20m) 적어 놓으면 될 겁니다. 폭은 한 30자. 옛날에 이기 광선(廣船)이라고 배가 컸어요’(김창명, 1938년생) 등. 소금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짠 땅,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가 이어졌다. 강서 대파, 낙동 김, 명란젓갈 등에 관한 50여 년간의 언론, 구술 기록이 보드에 정리됐다.
마지막은 ‘삶의 짠 맛’. 앞선 순서에서 낙동 김 짠지를 맛보거나 명란 삼각김밥을 먹는 등 음식의 ‘짠 맛’을 느꼈다면, 여기선 분개염전이 있었던 용호동 어르신들과 함께 만든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임아·바다·하늘·봄날·은희 등 어르신 5명을 소개하는 글을 관객이 돌아가며 읽고, 이들과 송한얼 작가가 준비한 바디퍼커션 무대로 프로그램은 끝났다.
‘짠 것들의 연결망’ 전시는 사흘 만에 끝났지만, 아카이브와 작품은 실험실 씨 웹페이지(https://linktr.ee/labc2018) ‘about Lab C’에서 상세하게 볼 수 있다. 다음 달 18일에는 부산근현대역사관 ‘2023부산기록축제’에서 ‘짠 것들의 연결망 공유회 프로그램: 짠 것들이 연결되기까지’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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