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꿀벌은 정말 착취당했나
신약 개발 과정에서 물질의 안전성과 효력을 확인하기 위해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 반드시 동물 실험을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많은 실험 동물들이 희생되거나 남용된다. 마음 아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제약업계는 동물 실험이 필수 불가결하다고 본다. 아무리 동물이 소중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인간에게 바로 위험을 감수하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느날 점심시간 연구소 동료들은 채식주의의 유행과 육식의 문제점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 역시 채식에 깊은 공감과 지지를 보내고 공장제 축산의 비위생성과 비윤리적 경영에 반대했다. 그러나 사실 거기에도 개인적 갈등이 있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는 꿀도 먹지 않는다. 그들은 양봉이 본질적으로 꿀벌을 착취하는 행위라 생각한다. 의미 있는 주장이지만 양봉 농가의 후계인 나는 그 의견을 다 수긍할 수는 없다. 양봉업이 벌들에게서 소중한 꿀을 빼앗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양봉의 또 다른 산물인 딸기, 사과, 수박, 참외 등 농산물은 어떻게 해야 할까? 비닐하우스나 과수원에 벌통을 놓아 수분을 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소비하는 과일의 수요를 다 맞출 수 없다.
동물 복지와 환경 문제에 대한 도덕적 판단에 대해 생각을 거듭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자기모순에 빠지고 만다. 우리의 생존과 이기심을 충당하기 위해 타종 및 환경에 손해를 끼치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즉각적인 혜안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우선 인간 활동의 생산물이 생태계 순환을 거치지 못해 다른 생명체의 생명활동에 도움되는 물질로 전환되지 않고 있는 점을 풀어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인간이 생태계를 지배하고 남용하는 것이 아니라 재생 가능한 체계 속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겸허하게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과연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시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없이 무력하고 서투른 존재여서 그저 이 문제를 생각하는 시를 쓸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시가 누군가의 마음속 텃밭에 작은 거름으로 썩어 향기롭고 고운 흙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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