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참새 소탕전과 비만세가 남긴 것

2023. 10. 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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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천만명 아사 부른 中 참새 전쟁
일자리·소비 줄인 덴마크 비만세
'좋은 의도와 나쁜 결과' 차고 넘쳐
의대 증원, 찬반만 있고 분석 없어
국가전략 차원서 신중히 접근해야
김종민 변호사·前 광주지검 순천지청장

1955년 한 농민이 “참새들 때문에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탄원서를 중국공산당 중앙당에 보냈다. 며칠 후 마오쩌둥은 사해(四害)라 지칭하며 “12년 내에 전국의 쥐, 참새, 파리, 모기를 소멸해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에 ‘참새 섬멸 총지휘부’가 구성됐고, 인간과 참새의 전쟁(人雀大戰)을 벌여 1958년 한 해 동안 전국에서 참새 2억1000마리를 소탕했다. 천적이 사라진 이듬해 봄 해충이 창궐했고, 3년간 흉년이 이어지며 4000만 명이 굶어 죽었다.

2011년 10월 덴마크가 최초로 비만세(fat tax)를 도입했다. 만병의 근원인 비만을 줄이기 위해 포화지방산을 2.3% 이상 함유한 모든 식품에 ㎏당 16크로네(약 3400원)의 세금을 부과했다. 덴마크 정부는 비만세 도입으로 국민의 지방 섭취가 10%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새 세금으로 육류, 버터, 조리 식품 등 건강에 좋은 식품 가격까지 뛰었다. 덴마크 국민들은 싼 물가를 찾아 독일과 스웨덴으로 장을 보러 갔다. 국내 소비와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비만세는 2012년 11월 폐지됐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은 사례는 차고 넘친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목적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세종시와 공기업 지방 이전이 대표적이다. 국가 정책의 질과 효율성이 높아졌다는 증거는 없고 지방균형발전 대신 지방 소멸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개혁한다며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지만 형사 사법 시스템은 붕괴 직전이다. 종전 2~3개월 내에 처리되던 고소 사건이 1년이 넘도록 처리되지 않는 사례가 흔해졌다. 마약 범죄는 통제 불능 상황이다. 3년간 600억원 넘는 예산을 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직접 기소한 사건이 세 건에 불과하고 김진욱 처장은 내년 1월 임기를 마친다.

의대 정원 확대가 내년 총선을 앞둔 윤석열 정부의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찬반의 목소리만 높을 뿐 그것이 가져올 전방위적 파장에 대한 논의와 분석은 없다. ‘초등학교 의대입시반’이 성황을 이룰 정도로 의대입시 광풍인 상황에서 의대 정원 확대는 망국적 사교육의 과열을 불러오고 이공계 교육은 초토화될 우려가 크다. 가장 중요한 돈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저성장의 고착화로 세수는 부족해지고 복지 비용은 급증할 텐데 의사 수 증가에 따른 의료보험료 부담 확대, 의대 교수진과 대학병원 등 인프라 구축을 위해 투입될 예산 규모는 추정치조차 발표되지 않고 있다.

국가 전략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도 의대 정원 증원 문제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의대 정원 확대’는 빠져 있다. 그 대신 과학기술이 선도하는 도약의 발판 마련,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을 통한 디지털 경제 패권국가 실현 등이 포함돼 있다. 국정과제에 없던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겠다면 그에 관계된 다른 국정과제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되고 어떻게 추진할 것인지 최소한의 설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치는 결과에 의해 평가받는 것이지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마키아벨리는 “천국으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옥에 가는 길을 잘 아는 것”이라고 했다. 대중은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지적해주면 의외로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 천국으로 가는 길밖에 모른다며 다 같이 손잡고 천국으로 가자고 하면 자칫 모두를 지옥으로 이끌게 된다.

위기를 뜻하는 영어 ‘crisis’는 ‘판단하고 결정한다’는 라틴어 ‘krisis’에서 왔다고 한다. 위기 극복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어떻게 일관성 있게 끌고 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정확한 진단 없이 투약이나 수술을 할 수 없듯 정책 추진을 위한 최우선 과제는 면밀한 현상 분석과 정책영향평가다. 필수의료 붕괴와 지방의료 문제의 근본 원인이 과연 의사 수 부족 때문만인가. 다른 문제는 없는가. 정부와 의료계가 상반된 주장으로 대립한다는 것 자체가 근본 원인 분석이 안 됐다는 증거 아닌가. 좋은 리더는 합의를 모색하는 사람이 아니라 합의의 틀을 형성하는 사람이다.

확신이 지나치면 결점을 쉽게 망각하게 된다. ‘유리한 증거’만 선별적으로 채택하면 확증편향에 빠지고 예측 못한 ‘블랙 스완’의 출현을 막을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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