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한(韓)·일(日) 간 호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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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역사를 말할 때 일본은 우리에게 '애(愛)'보다는 '증(憎)'이 훨씬 많은 나라였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직후인 1599년~1872년까지 에도(江戶)막부 시대에 일본 열도로 표류해 간 조선인이 건수로는 971건, 사람 수로는 9770명에 달한다.
비슷한 기간 조선 해안에 표착한 일본인도 1200여 명으로 집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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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의 역사를 말할 때 일본은 우리에게 ‘애(愛)’보다는 ‘증(憎)’이 훨씬 많은 나라였다. 고대부터 한반도인들이 많은 선진 문물을 열도에 건네줬음에도, 왜구(倭寇) 침탈에서부터 임진왜란과 통한의 일제 강점기까지, 침략과 핍박이 과거사의 상당 부분을 짓누른다. 뼈에 사무치는 고통을 겪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지리적으로 일의대수(一衣帶水) 이웃임에도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수식어를 달고 산다.
그런데 양국의 역사에서 인도적 호혜가 꽃을 피운 과거가 있다. 조선시대 양국의 표류민(漂流民) 처리이다. 바다를 공유하는 이웃이기에 양국 간에는 바다로 나갔다가 조난을 한 사람들이 상대국 해안에 표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일본 측 기록에 따르면 임진왜란 직후인 1599년~1872년까지 에도(江戶)막부 시대에 일본 열도로 표류해 간 조선인이 건수로는 971건, 사람 수로는 9770명에 달한다. 비슷한 기간 조선 해안에 표착한 일본인도 1200여 명으로 집계된다. 양자 사이에 거의 10분 1 규모로 차이가 나는 것은 계절풍과 조류의 영향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예외 없이 송환됐다. 나가사키(長崎)~대마도~부산을 잇는 송환 루트가 개설돼 있을 정도였다. 표류민에 대한 대접도 좋아 1819년 1월 일본 돗토리현에 표착한 강원도 출신 안의기(安義基) 선장 일행(12명)의 경우 귀국길에 현지 일본 관리에게 “태산 같은 은혜를 입었다”는 감사 편지를 남겼고, 1756년 5월에 강릉에 표착한 일본인 4명은 단오 구경을 하고, 주연에 술과 쌀 등의 전별 금품을 받았다고 조선 표류기에 기록했다. 양국 합해 1만 명이 넘는 이방의 불청객들이 이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고, 본국으로 송환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거의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와중에 양국의 군 수송기가 자국민 귀국을 지원하면서 호혜를 베풀었다는 뉴스가 시선을 끌었다. 우리 측이 먼저 일본인을 태워 오자 일본 측에서도 답례로 우리 국민의 무사 귀국을 도왔다. 누적된 앙금이 당장 애(愛)로 바뀔 수는 없겠지만, 조선시대 표류민 대접과 송환이 그러했던 것처럼 양국 간 역사에서 ‘증(憎)’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우는 사과와 반성, 호혜가 이어지기를 바란다. 최동열 강릉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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