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정위의 고발 지침 개정은 改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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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켈젠 교수는 20세기 위대한 법학자로 꼽힌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18일부터 행정예고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고발지침'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지침 개정안은 세부평가 기준표에 따른 사업자의 위반 점수가 기준 이상인 경우, 법 위반의 중대성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특수관계인을 원칙적으로 고발하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대폭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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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남발해도 제어 장치 없어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스 켈젠 교수는 20세기 위대한 법학자로 꼽힌다. 프라하에서 태어나 미국 버클리대 정치학과에서 오랫동안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버클리대는 그를 기념하기 위해 한스켈젠 도서관을 운영했다. 오스트리아는 1981년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를 발행했고, 2020년에는 연방헌법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다시 한번 켈젠의 모습을 담은 우표를 내놨다.
켈젠이 창시한 순수법학은 이데올로기와 정치·윤리·사회적 요소 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실정법의 순수한 인식에 중점을 두는 법이론이다. 그는 순수법학의 맥락에서 법은 단일 평면에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 형태로 하나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다고 봤다. 각각의 규범이 갖는 효력의 근거는 그 상위 법규에서 찾아야 하므로 예컨대 시행령은 법률의 위임 범위 내에서 유효하다는 것이다. 헌법을 중심으로 하는 위헌법률심판 제도도 켈젠의 법 단계설 관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 법 체계상의 하극상 현상이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이달 18일부터 행정예고한 ‘공정거래법 위반행위 고발지침’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공정위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세한 시장 분석으로 위반 행위의 경중을 판단해야 하는 독립적·전문적 행정부처다. 2003년 헌법재판소는 공정거래법이 공정위의 전속고발제도를 택한 것은 경제법 위반 행위의 형사범죄화, 남소로 인한 기업 활동의 위축을 방지하는 데 목적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2001헌가25). 현행 공정거래법은 특수관계인이 누구에게든지 사익편취 행위를 하도록 지시하거나 이에 관여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만약 특수관계인의 관여 정도가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중대해 경쟁 질서를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하는 경우 검찰총장에게 고발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 때문에 기존에는 공정위가 일감몰아주기로 사익편취한 사업자(회사)를 고발하는 경우 지시·관여와 관련해 법 위반의 중대성이 확인된 특수관계인에 한해 함께 고발해왔다.
그러나 지침 개정안은 세부평가 기준표에 따른 사업자의 위반 점수가 기준 이상인 경우, 법 위반의 중대성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특수관계인을 원칙적으로 고발하겠다는 식으로 입장을 대폭 변경했다. 이는 공정위가 그동안 특수관계인이 사업자의 중대한 사익편취 행위에 관여한 정도를 제대로 증명하지 못해 특수관계인을 고발하지 못한 사례가 있었음을 자책한 결과로 보인다.
사실 지침은 행정 규칙에 해당하는 하위 규범이다. 지침 개정안은 공정거래법에 명시적으로 규정해 둔 공정위의 증명 책임을 사업자에게 떠넘기는 것과 다름없다. 게다가 공정거래법은 사익편취 행위가 경쟁 질서를 현저히 해친다고 인정하는 경우에 고발할 것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이 개정안은 생명·건강 등 안전에 미친 영향, 사회적 파급효과, 국가 재정에 끼친 영향, 중소기업에 준 피해 중 어느 하나가 현저한 경우에도 고발할 수 있음을 추가했다. 갑자기 안전, 사회, 국가 재정 등을 들먹이는 것은 주관 업무와 상관없이 오지랖 넓은 행위를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특히 공정위가 불명확한 기준으로 반기업 정서에 편승해 고발을 남발하더라도 이를 제어할 장치가 없다. 명백하게 상위법에 대한 도발이며, 대기업 총수 일가를 총수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예비 범죄자로 몰아세운 것이다. 켈젠 교수가 보더라도 작금의 상황이 기가 찰 노릇이라고 비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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