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원 시인의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김민철의 꽃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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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규원 시인(1941∼2007)의 시 ‘한 잎의 여자’는 많은 사람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1978년 나온 이 시는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로 시작합니다.
물푸레나무는 우리나라 산속 계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10m 이상 자라는 큰 키 나무인데, 서울 등 도시 주변의 산에서도 볼 수 있지만 수형이 좋아 공원에 심어놓은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개조해 만든 ‘서울로7017′에 가보면 물푸레나무를 여러 그루 심어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붕대 감은 것처럼 흰색 띠 두른 나무
물푸레나무는 여러 가지로 재미있는 나무입니다. 우선 가지를 잘라 물에 넣으면 투명한 물이 잉크를 탄 것처럼 파랗게 변합니다. 아주 진한 색은 아니지만 파란색을 식별하는데 충분한 정도입니다. 그래서 물을 푸르게 하는 나무라고 이름이 ‘물푸레나무’입니다.
물푸레나무는 나무껍질이 독특해 산에서 쉽게 식별할 수 있습니다. 나무껍질에 흰색의 띠 모양 가로 무늬가 띄엄띄엄 생기는데, 이 모습이 마치 붕대를 감아놓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나무는 ‘붕대 감은 나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물푸레나무는 재질이 질기고 잘 휘어서 옛날에 곤장을 만드는데 썼고, 도리깨 등 농기구를 만드는데도 쓰는 등 생활에도 밀접한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한 잎의 여자’에는 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물푸레나무 잎을 보면 달걀 모양의 잎 5장이나 7장이 하나의 큰 잎을 구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꼭대기 잎이 가장 크고, 그 아래 잎자루에 4장이나 6장의 잎이 좌우로 쌍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깃꼴겹잎)입니다. 이 잎이 다른 나무 잎에 비해 작은 편이 아닙니다. 도감을 찾아봐도 길이 6~15cm 정도라고 나옵니다. 흔히 사람들이 나뭇잎 하면 생각하는 느티나무 잎 길이가 2~7cm인 것을 감안하면 두 배 이상 길고 타원형이라 넓은 편입니다. 그래서 흔히 물푸레나무 잎 하면 크다는 인상을 갖습니다.
그런데 ‘한 잎의 여자’에는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입니다. 좀 이상하죠? 이 시를 읽고 물푸레나무 잎이 조그마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 물푸레나무 잎을 보니 상당히 커서 의아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날(生)이미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시를 추구한 시인이었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쇠물푸레나무 잎은 작고 귀여워
그래서 나무를 좀 아는 사람들 사이에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이 물푸레나무 잎이 아니라 쇠물푸레나무 잎을 보고 시를 쓴 것 아니냐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쇠물푸레나무는 물푸레나무보다 키도 잎도 꽃도 작은 나무입니다. 생물 이름에 ‘쇠’라는 접두사를 붙으면 작다는 의미입니다. 쇠물푸레나무 잎은 물푸레나무 잎보다 훨씬 작고 좁아 귀엽고 앙증맞으니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입니다.
물푸레나무는 주로 물이 풍부한 계곡에서, 쇠물푸레나무는 건조한 능선이나 산꼭대기 부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또 물푸레나무는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쇠물푸레나무는 주로 따뜻한 남쪽 지역과 섬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시인의 고향이 경남 밀양이어서 이런 추측에 설득력을 더하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추측은 시인이 물푸레나무 잎이 아니라 열매를 보고 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푸레나무 열매는 작지만 맵시가 있습니다. 늦은봄부터 관찰할 수 있는데 뾰족하고 기다란 모양입니다. 길이 2 ~ 4cm 정도로, 손가락 한두 마디 정도의 크기여서 ‘쬐그만’이라는 수식어가 딱 맞는 크기입니다. 초기부터 상당기간 초록색이어서 잎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초록색 열매는 가을에 갈색으로 익습니다.
이 열매엔 날개가 달려 있는데 씨앗을 멀리 보내기위한 용도입니다. 이런 열매를 ‘시과(翅果)’라고 합니다. 물푸레나무 외에도 단풍나무 종류가 시과 열매를 갖고 있는데, 단풍 열매의 경우 한 번 바람을 타면 어미나무로부터 최대 100m 정도까지 날아갈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울 정도입니다.
오규원 시인은 1982년부터 약 20년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가끔은 주목받는 생(生)이고 싶다’ 등 많은 시집과 시 창작을 돕기 위한 이론서 ‘현대시작법’ 등을 남겼습니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는 시에 나오는 문학적 표현인데 괜히 실제 물푸레나무 잎을 들이대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쇠물푸레나무 잎이 맞고 시인이 알았다하더라도 운율 때문에 그렇게 쓰기 어려웠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어가 실물과 비교해도 표현에 손색이 없다면, 아니 그 특징을 제대로 잡아내면 더욱 호소력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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