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 대신 지구전… 야금야금 가자시티 에워싸기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3. 10. 3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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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1석3조’ 지상전 전략
폭격 맞은 가자지구 - 29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남부 도시 스데롯에서 촬영한 가자지구 폭격 장면. 지난 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을 시작으로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전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은 지난 27일 하마스 본거지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AFP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를 격멸하겠다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지상전 개시 사흘째인 29일(현지 시각), 가자지구 북부 베이트하눈 마을 인근에 이스라엘군 탱크와 장갑차 수백 대가 진입했다. 이곳은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해 전쟁을 촉발한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시티 중심가에서 약 8㎞ 떨어진 곳이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가자시티에 연이은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치솟는 사이, 숨겨져 있던 지하 터널 입구에서 하마스 전투원들이 튀어나와 이스라엘 기갑부대에 기관총을 난사했다. 이스라엘군 탱크가 불을 뿜었고 이어서 포병의 자주포도 작렬했다. 몇분 만에 하마스 대원들은 수십 구의 시신을 남겨둔 채 어둠 속으로 퇴각했다.

이스라엘군은 그러나 이들을 쫓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가자지구 지상전이 개시될 경우 이스라엘군이 최소 여러 개 사단, 수만명의 병력을 순식간에 투입해 가자시티로 밀고 들어갈 것이란 예상과는 다른 상황 전개다. 지상군 작전 개시 나흘째인 30일 오후까지 이스라엘은 가자시티 외곽에서 하마스와 산발적 전투를 벌이면서 천천히 하마스를 조여 들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스라엘군은 군사 기밀이라며 함구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가자지구 내에 투입한 병력 또한 당초 예상을 크게 밑도는 1만여 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30만명 이상의 병력을 가자지구 인근에 집결한 것을 고려하면, 대부분의 병력이 여전히 투입 대기 중인 셈이다.

그래픽=양인성

이스라엘 현지 매체와 주요 외신들은 이런 전황을 근거로 “이스라엘군이 대규모 공습 이후 시가전(市街戰)이라는 속전속결 대신 가자시티를 에워싸고 하마스를 고사(枯死)시키는 ‘포위 섬멸전’으로 방향을 튼 것 같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들은 베이트하눈 외에도 가자 남부와 북부의 경계에 있는 부레이즈 마을 인근에 거점을 구축하고, 이곳을 중심으로 가자시티 외곽에 대한 소탕 작전을 벌이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앞서 투입된 부대가 안전 지역을 확보하면, 외곽에서 대기 중이던 병력이 이곳에 진입해 가세하는 방식으로 거점을 점차 확대해 나가려는 것으로 예측된다. 이를 반복해 가면서 결국 가자시티를 완전히 에워싸는 ‘포위진’을 형성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가자시티로 들어가는 진입로들을 탱크로 차단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고립된 하마스는 당분간 농성전을 벌이겠지만 서서히 무기·연료·식량이 고갈되면서 땅굴 밖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스라엘군은 동시에 하마스 지휘소와 땅굴에 대한 폭격을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이스라엘군은 지금까지 드론(무인기)과 인공위성, 가자지구 내 특수부대원이 제공한 정보를 이용해 폭격을 해왔다. 하지만 하마스 지휘부가 수시로 위치를 바꾸고, 이란·북한 등에서 입수한 GPS 교란 장치를 활용하면서 폭격 효과가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마스 포위·섬멸 작전" 이스라엘 나흘째 지상전 - 30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방위군 대원들이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본거지인 가자지구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27일 가자지구 북부에 지상군을 투입, 본격적인 하마스 소탕에 나섰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전쟁 2단계가 시작됐다"고 했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을 계기로 전쟁 위험이 시리아와 레바논 등 중동 전역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스라엘주방위군(IDF)

하지만 지상군이 가자시티 인근에 진출함에 따라, 실시간으로 바뀌는 적의 위치를 레이저 관측 장비로 정확하게 집어줄 수 있게 됐다. GPS 무기보다 훨씬 정확한 레이저 유도 폭탄과 GBU-28 ‘벙커버스터(지하를 뚫고 들어가 폭발 폭탄)’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GBU-28은 30m 지하의 목표물도 타격 가능해 하마스의 지하 시설 상당수를 무력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하마스 테러리스트 20여 명이 모여 있는 건물을 지상군이 지목해 전투기로 이를 폭격하는 등 지난 수일 동안 600개 넘는 하마스 시설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코노미스트 등 영국 언론은 “이스라엘이 인명 손실을 최소화하고, 레바논과 시리아 등 북쪽 이슬람 무장 단체의 침공 가능성을 줄이면서 인질 석방도 노리는 (1석3조의) 지상전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마스의 앞마당인 가자시티에서 시가전을 벌일 경우 이스라엘군은 막대한 손실을 피할 수 없다. 또 민간인 ‘인간 방패’가 대거 희생되면서 이스라엘 비난 여론이 폭발하고, 미국이 직접 휴전을 종용하고 나설 수 있다. 더불어 레바논 남부의 헤즈볼라와 시리아의 친(親)이란 민병대 등이 공격에 나설 명분도 커진다. FT는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해 “일단 하마스를 강하게 압박, 인질 석방 협상을 풀어나가는 것이 (포위전의) 당면한 목표”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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