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군사 밀착 맞서 선언 이상의 北核 억지책 서둘러야[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
북-러 정상회담 이전에도 북한은 다량의 무기탄약을 러시아에 전달한 정황이 속속 포착된 데 이어 회담 이후로도 나진항을 통해서만 최대 50만 발의 포탄이 제공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러시아가 북한의 탄약 제공을 대가로 핵과 위성 기술을 김정은에게 전수할 경우 우리 안보에 치명적인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
북한의 ‘핵 비수’가 더 날카롭게 벼려져서 대한민국을 겨누게 될 것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북-러 간 군사적 밀착과 이를 부추기고 방조하는 중국의 태도가 북한으로 하여금 더 대담한 ‘핵 도박’을 시도하는 불쏘시개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도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유명무실해진 것이 그 증거다. 김정은은 이런 상황을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어서도 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일각에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을 용인하기로 암묵적 합의를 본 것과 다름없다는 분석마저 나온다. 두 나라가 대한민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을 대미 견제 수단이자 전략적 경쟁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겠다는 의사를 노골화했다는 것이다. 군 관계자는 “중국과 러시아가 그나마 형식적으로 붙잡고 있던 북한의 ‘핵 제어 고삐’를 완전히 놓아버린 격”이라고 지적했다. “핵탄두 보유량의 기하급수적 증대”(2022년 12월), “무기급 핵물질의 생산 확대”(3월)에 이어 핵 무력 정책의 헌법화(9월) 등 김정은이 보란 듯이 핵 무력 고도화에 몰두하는 것이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7차 핵실험도 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닌 시간문제일 뿐이다. ‘화산-31형’을 비롯한 전술핵을 다종다양한 투발수단(미사일, 핵어뢰 등)에 최적의 조건으로 장착하려면 최소 3, 4차례의 핵실험으로 성능과 기술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한 북-중-러의 반미 결속, 이로 인한 국제질서의 소용돌이가 북한에는 핵 개발을 가로막는 ‘족쇄’에서 풀려나는 절호의 기회가 된 셈이다.
현 국제질서 위기는 대한민국에 미증유의 안보 도전이 될 수 있음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시점이다. 북한만큼 호전적으로 핵 공격을 위협한 세력이 여태껏 없었다는 점에서 더 우려스럽다
지난달 미 국무부가 북한이 전쟁 단계 어디에서도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정은이 여러 차례 용산 대통령실과 평택 미군기지 등을 손으로 가리키며 전술핵 공격 훈련을 지휘한 것은 개전 초 한국 지휘부와 군사 거점을 핵으로 초토화해 일거에 대남 적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협박 그 자체다.
한미 양국은 ‘워싱턴 선언’을 계기로 대북 확장억제 강화 조치를 빈틈없이 하겠다고 누차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 본토와 한국을 겨냥한 북한의 핵 무력이 고도화될수록 확장억제의 실효성에 대한 도전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핵이 고도화할수록 ‘선언은 멀고 주먹(북핵)은 가깝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선 1992년 미국의 전술핵 철수와 북한의 핵 포기 약속을 맞바꾼 한반도 비핵화 선언이 진즉에 사문화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한의 임박하고 가공할 핵 공격 위협에도 한국의 핵무장 옵션을 제약하는 ‘불평등 선언’인 만큼 파기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지고 있다.
한미가 선언 수준을 넘어서 북한의 핵을 저지할 실질적 조치를 서둘러 강구해야 할 때라고 본다. 북한의 핵 도발에 대응한 한미 간 핵연합작전계획 수립과 유사시 미국의 저위력 핵무기의 대북 사용 선언, 우리 군의 대북 3축 체계와 미 전략사령부의 핵전략 통합 운용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한국 담당 선임연구원은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핵 사용에 대비해 핵무기 대응 및 봉쇄에 관한 훈련을 한국 부대에 제공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한국군은 핵 사용 시 한반도 밖 미국의 전문 부대를 기다리기보다 핵 사용 시나리오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의 기습에 크게 허를 찔린 이스라엘의 사례는 안보의 주적이 ‘방심’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지금부터 2020년대 후반까지가 대한민국 안보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안보는 한번 실기하면 되돌릴 수 없는 파국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때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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