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의 아픔이 결국은 달콤한 인생을 만든다[영감 한 스푼]

김민 문화부 기자 2023. 10. 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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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수의 1970년대 작품
정복수 작가의 1976년 작품 ‘청춘의 슬픔’. 1976년 부산 현대화랑에서 전시된 뒤 47년 만에 다시 전시됐다. 올미아트스페이스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
화가 정복수(66)의 개인전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갤러리 올미아트스페이스에 들어서면 47년 만에 다시 공개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정 작가가 부산 현대화랑에서 안창홍 작가와 1976년 함께 열었던 ‘2인전’에 단 한 번 전시됐던 작품, ‘청춘의 슬픔’입니다.

슬픈 표정을 하고 있는 여자. 그녀의 머리카락은 실처럼 굽이치고, 입은 옷의 무늬는 무언가에 베인 상처처럼 보입니다. 그녀의 주변을 간질이듯 눈물처럼 흐르는 실 가닥은 붙잡으면 허무할 지푸라기 같지만, 허공에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습니다.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듯 말입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록

‘청춘의 슬픔’은 어떻게 47년 만에 이 전시장에 걸리게 된 걸까. 이번 전시 ‘자궁으로 가는 지도―I’은 정 작가가 지난 3, 4년간 그린 신작을 발표하는 자리입니다. 마지막 개인전을 3년 전 열었던 정 작가는 팬데믹을 지나며 “조용히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작업해 왔다”고 했습니다. 전시는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작업에만 몰두하고 싶었다는 이야기입니다.

1975년 작품 ‘자화상―아픔의 힘’.
그런 그가 고민 끝에 갤러리 제안으로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작품을 세상에 보이라는 가족의 적극적 권유도 있었다고 합니다. 초기 작품을 함께 보여주면 좋겠다는 갤러리 요청으로 정 작가는 1970년대 작품 두 점, ‘청춘의 슬픔’(1976년)과 ‘자화상―아픔의 힘’(1975년)을 걸었습니다. 두 작품은 판매하지 않는 조건으로 말이죠. 작품의 사연이 궁금해졌고 정 작가에게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물었습니다.

“물감을 살 돈도 부족했고 하루 한 끼로 버티면서 독학으로 그림을 그릴 때였죠.”

이때 그의 나이는 스무 살. 이 무렵 화구만 챙겨 무작정 상경한 그는 서울 동작구 흑석동 판자촌에 살게 됩니다. 어릴 적부터 함께 그림을 그린 친구의 배려로 마련한 거처였죠.

여러 가구가 함께 수도를 사용하는 허름한 집에서 그림만 그리던 시절 탄생한 것이 바로 두 작품입니다.

‘청춘의 슬픔’에서 굳은 여자의 얼굴 위편엔 ‘남여 직업알선’이라는 광고가 붙어 있습니다. 광고 속엔 ‘접대부’, ‘공장부’ 같은 직업 설명이 적혀 있습니다. 사회라는 건 무엇이고 그 속에서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인간성은 무엇일지 생각하게 만드는 배치입니다. 사회 속에서 타협되는 개개인의 맥락과 감정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것이 사회 전체를 부정하는 메시지는 아닙니다. 그의 자화상은 ‘아픔의 힘’을 이야기합니다. 사회 속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되새기며 느끼는 아픔이 살아가는 힘이 된다는 것입니다.

달콤한 삶에 치러야 할 대가

흑석동 판자촌 집에서 정 작가를 미술계에 강력하게 각인시킨 작품도 탄생했습니다. 바로 1979년 서울 종로구 동숭동 청년작가회관에서 열린 ‘바닥畵(화)―밟아주세요’에 선보인 바닥화입니다. 전시장 바닥에 벌거벗은 채 고함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고, 관객들은 그 위를 밟고 지나가면서 그림을 감상했습니다.

지금은 작가들이 다양한 설치 방식을 구사하지만, 당시에는 ‘신기한 그림’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지역 상인들에게 “요상한 그림이 있다더라”는 입소문이 나 구경꾼이 몰리기도 하고, 수상한 분위기가 난다고 여긴 경찰이 전시장에 와 감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그림’, ‘기괴한 그림’이라는 반응은 여전히 정복수 작품에 붙는 수식어이자,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해’입니다.

정 작가가 바닥화를 그린 것은 신기함을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절한 아픔이 담긴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서양 미술의 아류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바닥화를 그린 이유를 설명합니다. 천장화가 신을 위한 것이라면 벽에 거는 그림은 권력자를 위한 것이기에 평범한 사람을 위한 그림으로 바닥화를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 후로 이어진 정복수의 ‘몸 그림’들은 기존에 없던 시각 언어를 찾아가려는 노력의 결과물들이었습니다. 머리카락도 없고, 장기가 드러나고, 때로는 팔다리도 없는 몸 그림을 처음 보면 놀라고 당황스러운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선입견을 버리고 가만히 보면 이 몸들은 결국 인간의 삶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를테면 잘린 손가락, 알록달록한 응어리, 구불거리는 뱀은 살면서 모든 사람이 겪는 아픔입니다. 중요한 건 그 아픔들은 외면하고 감춰야 할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랬을 때 온전한 아름다움인 ‘자궁’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그의 작품은 말하고 있습니다.

정 작가는 그것을 ‘달콤한 삶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라고 설명합니다.

“산다는 게 아름답고 좋고 달콤한 것도 많죠. 그러나 이를 위해 우리 모두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잘린 손가락과 그림 속 몸에 새겨진 각오와 다짐들은 그런 삶의 고통, 어마어마한 대가를 담아낸 것입니다. 그 모든 과정이 자궁으로 향하는 길입니다.”

고통스럽고 힘들었던 청춘을 지나 그것을 더 넓은 눈으로 담아내고 있는 것을 1970년대와 2020년대의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정 작가의 신선한 작품과 함께 ‘자궁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가 보세요. 전시는 11월 1일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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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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