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委서 ‘양대노총 인사 배제’ 갈등… “참여 인정하되 독점은 깨야”[인사이드&인사이트]
노동계 추천권 독점 논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2일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간담회에서 “앞으로 청년, 플랫폼 종사자, 미조직 근로자도 다양한 정부위원회에 참여하도록 개방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양대 노총이 각종 위원회에서 전체 근로자의 이해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양대 노총의 강한 반발에도 정부의 이런 방침은 노정(勞政) 갈등의 흐름을 타고 하나둘 시행되고 있다. 고용부는 산하 위원회에서 양대 노총의 추천권을 다른 단체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대안 찾기 등 해결할 과제도 만만치 않다. 한국노총과 민노총이 정부위원회에 독점적으로 참여해온 관행을 깨려는 정부의 구상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 정부위원회서 밀려나는 양대 노총
현재 고용부 산하 위원회 중 가장 빠르게 개편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건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 심의위원회(산재심의위)다. 관련 법 시행령은 산재심의위에 참여하는 근로자위원 5명을 추천하는 주체를 ‘총연합단체인 노조’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바꿔 다른 노조나 단체가 추천권을 행사할 길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 등 나머지 다른 위원회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른 부처 위원회 가운데는 이미 양대 노총의 영향력을 배제한 곳이 많다. 보건복지부는 5월 건강보험 재정운영위원회를 새로 구성하면서 양대 노총의 추천을 받지 않았다. 이 위원회는 직장가입자 대표 10명, 지역가입자 대표 10명, 공익위원 10명으로 구성된다. 직장가입자 10명 중 노조에서 추천하는 5명을 그동안 양대 노총이 추천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회계 장부를 정부에 제출하지 않아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양대 노총을 제외했다.
복지부는 장기요양위원회(6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8월)를 구성할 때도 양대 노총 위원들을 제외했다. 기획재정부는 7월 세제발전심의위원회에서 한국노총 민간위원을 뺐다. 지난해 말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에서도 양대 노총은 배제됐다. 올해 3월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에서 근로자 대표 중 한 명인 윤택근 민노총 수석부위원이 고성을 지르며 회의 진행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해촉됐다.
한국노총과 민노총은 “양대 노총의 사회적 영향력을 축소하려는 의도”라고 반발하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들은 “근로자 대표 추천권을 총연합단체에 주도록 규정한 건 그 정도는 돼야 전체 노동자 대표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이를 확대하면 우후죽순 지원자가 늘고, 정부가 자신들에 우호적인 인사를 선임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주장했다.
● ‘노동계 대표’로 사실상 위원회 독점
정부가 양대 노총에 정부위원회 추천권을 부여한 건 ‘전국 규모 총연합단체’라는 상징성과, 시민사회에서의 노동계 역할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2021년 말 기준 한국노총(123만7878명)과 민노총(121만2539명) 소속 조합원만 245만417명에 이른다. 노조 가입이 가능한 임금 근로자의 11.9%에 불과하지만, 노조 가입자의 대부분(83.5%)을 차지한다. 노조 가운데 이만큼 대표성을 가진 조직을 찾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노사정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는 하위법령이 아닌 관련 법에 근로자 대표 추천권 부여 주체를 ‘전국적 규모의 총연합단체인 노동단체’로 명시했다.
양대 노총도 정부위원회 참여를 통해 영향력을 키울 수 있어 적극적으로 이를 활용해왔다. 약 25년간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고 있는 민노총도 최저임금위원회나 중앙노동위원회처럼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정부위원회에는 계속 참여해왔다. 민노총이 2019년 말 한국노총을 제치고 ‘제1노총’이 됐을 때 정부에 “각종 정부위원회 위원을 한국노총보다 더 배정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 투쟁 일변도에 노동계 대표성 논란
최근 들어 양대 노총이 과연 전체 근로자를 제대로 대표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커졌다. 양대 노총이 대기업, 공기업 등 이른바 ‘힘 있는 노조’ 중심으로 운영돼 노동 약자 보호가 아닌 기득권 지키기에 골몰한다는 것이다. 이 장관이 양대 노총의 과다 대표성을 지적할 때마다 언급하는 “86% 미조직 취약 근로자”라는 표현이 이를 잘 보여준다. 국내 노조 조직률이 14.2%에 불과해 나머지 85.8% 근로자의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양대 노총 스스로 그간 투쟁에만 집중하며 정부와의 대화나 정책 파트너 역할을 소홀히 했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노총은 올해 6월 경사노위 참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현 정부 출범 후 나날이 악화한 노정 관계 때문이었다. 유일한 노동계 참여자였던 한국노총까지 불참하면서 경사노위는 사실상 멈췄다. 관련 법에 따라 근로자위원의 참여 없이는 회의를 열거나 의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 개정을 하지 않고서는 한국노총의 뜻에 따라 무기한 ‘개점휴업’ 상태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정식 위원회는 아니지만 올해 3월 출범한 고용부 고용보험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 역시 양대 노총의 불참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노동계를 대표해 참여한 양대 노총이 “실업급여 삭감에 반대”하며 두 달 만에 불참을 선언해 현재 TF는 반쪽으로 운영되고 있다.
● 양대 노총 ‘배제’ 아닌 ‘보완’해야
노동 전문가들은 양대 노총의 독점을 깨고 노동계 추천권을 다양화하려는 정부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양대 노총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양대 노총이 갖는 대표성 자체를 부정할 순 없기 때문이다. 한국노총과 민노총의 합산 조직률이 11.9%에 불과해도, 자발적으로 회비를 내는 조합원 245만 명을 보유한 유일한 세력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를 대체할 조직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같은 사용자단체 역시 국내 사업체 수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조직률이 10% 안팎으로 낮아 노동계에만 낮은 조직률을 문제 삼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직률과 상관없이 양대 노총은 노동 분야에서 자주적으로 조직된 가장 크고 무게감 있는 결사체”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다른 노조나 근로자단체와 똑같이 취급한다면 오히려 대표성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양대 노총의 대표성을 인정하면서도 이들이 독점적으로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양대 노총에 근로자대표 추천권을 부여하되 일부를 다른 노조나 근로자단체에 나눠주라는 것이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대 경영학 교수는 “양대 노총이 전체 근로자를 압도적으로 대표할 수 없다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다양한 참여자를 추가하는 게 옳다”며 “그래야 대표성 논란이 적고 양대 노총도 반대할 명분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애진 정책사회부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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