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희창칼럼] 뒤로 가는 연금개혁
정부, 책임 회피하고 국회에 공 넘겨
총선 앞둔 국회 유야무야 가능성 커
尹대통령 결단·실천 없인 성공 못해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솔직히 연금개혁을 공약으로 들고나오면 무조건 선거에서 지게 돼 있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도 “개혁은 인기 없는 일이지만 회피하지 않고 우리가 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도 지난 6월 “국회에 연금개혁 복수안을 내면 정부 부담이 줄지만 반대로 국민에게 선택의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조 장관 모두 말뿐이었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지난 2월 “보험료 말고 구조개혁부터 하자”며 보험료율 인상 등 모수개혁을 정부 몫으로 돌렸다. 그러나 정부는 8개월 동안 결론을 못 내고 시나리오만 만지작거렸다. 지난해 7월 연금개혁특위 출범부터 1년3개월간 이어온 개혁 논의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무책임한 ‘핑퐁 게임’, ‘폭탄 돌리기’ 아닌가. 정부와 국회가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윤 대통령은 어제 “연금개혁은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나 사회적 합의 없이 결론적 숫자만 제시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했다. 그러나 이미 복지부 산하 재정계산위원회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2%, 15%, 18%로 올리는 3가지 안과, 현재 40%인 소득대체율을 45%, 50%로 올렸을 때를 가정한 24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전문가 토론회, 공청회도 셀 수 없을 만큼 열었다. 연금개혁 논의를 할수록 시나리오만 늘어나는 건 모순이다. 지금 필요한 건 추가 논의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상 비율 등을 결정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다.
공은 이제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 연금특위는 내년 5월까지 활동 시한을 연장한 상태다. 핵심 수치가 빠진 정부 안을 받은 국회의 공론화와 입법 절차가 힘을 받을지 의문이다. 총선을 반년 앞둔 상황에서 표에 민감한 정치권이 보험료율 인상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주호영 연금특위 위원장이 지난달 국회 토론회에서 “연금개혁이 내년 총선 전에는 힘들겠지만 21대 국회에는 반드시 끝내야 한다”고 말한 걸 봐도 그렇다.
연금개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앞으로 5년간 보험료를 낼 가입자는 86만명 감소하고, 수급자는 240만명 넘게 늘어난다. 최근 재정추계 결과를 보면 기금 소진 시점은 2055년으로, 5년 전 문재인정부 계산 때보다 2년 앞당겨졌다. 이대로 개혁을 회피한다면 그 이후 세대는 최고 34.9%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죄를 짓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피할 수 없는 길이라면 욕을 먹더라도 앞장서는 사람이 진정한 정치 지도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국가 미래를 위해 엄청난 반대를 뚫고 연금개혁을 해냈다. 개혁의 시급성은 우리가 더하다. 연금개혁의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 윤 대통령이 결단해야 할 때다. 거대 야당도 정치적 계산만 하지 말고 국가의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채희창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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