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아이가 왜 아직 없으세요?

이병훈 2023. 10. 30.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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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처 직원과 처음 인사하는 자리, 꽤 자주 듣는 질문이다.

첫 만남에서 서먹함을 풀기 위한 이른바 '아이스 브레이킹'의 소재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

출산에 대한 윗세대의 못마땅한 시선을 느끼는 건 기자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이가 왜 아직 없으세요?"가 아니라 "아이가 많아지려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요?"란 질문을 듣고 싶은 건 지나친 욕심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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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아직이세요?”

출입처 직원과 처음 인사하는 자리, 꽤 자주 듣는 질문이다. 첫 만남에서 서먹함을 풀기 위한 이른바 ‘아이스 브레이킹’의 소재 중 하나일 뿐일 것이다. ‘어디 사세요, 고향이 어디세요’ 따위의 연장선으로.
이병훈 경제부 기자
언제부턴가 이런 질문이 마냥 곱게만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저출산으로 나라가 위기라는데, 당신도 아이가 없군요’라는 가벼운 힐난의 어조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부터다. 지나치게 예민한 걸까.

결혼한 지 2년이 다 돼 가는 30대 후반 부부의 자녀계획은 궁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출산에 관한 기사를 볼 때 어떤 생각이 드세요?”란 질문까지 받아 보니, 자녀 여부가 가벼운 이야깃거리로만 소비되는 건 아니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한다. 기자로서 나름대로 공익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회에 대한 알량한 부채의식이 이런 ‘예민함’을 배가시키는지도 모르겠다.

한 인터넷 게시글을 본 적이 있다. 사회에서 30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기성세대가 바라보는 30대는 ‘아이를 낳지 않는 무책임한 세대’라고 쓰여 있었다. 출산에 대한 윗세대의 못마땅한 시선을 느끼는 건 기자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당신이 애를 낳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망할 것입니다’라는 이야기는 요즘 말로 ‘1(하나)도’ 타격이 없다. 일단 내가 위기인데 지금….” 저출산을 다룬 한 TV 다큐멘터리에서 나온 말이다. 많은 이들이 댓글 등을 통해 공감을 표했다. 내 삶이 팍팍한데 출산으로 국가 발전에 보탬을 주라는 것처럼 허황된 말도 없으리라.

당연히 육아비도 부족하지만, ‘팍팍하다’는 건 단지 주머니 사정뿐만이 아니다. 맞벌이가 필수인 상황에서 육아에 드는 시간은 돈만큼이나 부담이다. 자녀가 생긴 후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산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으면 ‘미지의 세계’인 육아가 현재 내 삶과 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아이는 아직”이냐니, 고민할 게 한둘이 아닌데.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는 출산율을 볼 때마다 물론 갑갑한 마음이 든다. 적어도 수십 년은 살아가야 할 나라가 저출산 때문에 소멸할 것이라는데, 걱정되지 않을 리가 있나. 그런데 ‘윗분’들은 이런 걱정이 덜한 것 같다. 또래끼리 대화에서도 국가 차원의 위기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 최근 들어 더 크게 들려온다. 정치권 대다수가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출산 시 현금 지급’ 같은 기계적인 정책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대책을 보면 그런 생각은 더 강해진다. 이런 현실은 팽개치고 이념 전쟁에 매몰된 정부나 당 주도권 다툼에 몰두하는 여야의 행태는 냉소를 더욱 짙게 만든다.

기성세대가 ‘너희가 낳으면 될 문제’라는 식으로 저출산을 바라보기보다는, 실제 청년층의 육아 현실이 어떤지 먼저 고민해 봤으면 한다. “아이가 왜 아직 없으세요?”가 아니라 “아이가 많아지려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요?”란 질문을 듣고 싶은 건 지나친 욕심이 아닌 것 같다.

이병훈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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