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귀은의멜랑콜리아] 처방된 마약
ADHD 치료제 처방률 최고
성과만 추구하는 사회 될수록
약물 문제 해결되지 않을 것
무력감이 사라진다면? 우울감을 떨쳐낼 수 있다면? 까다로웠던 일이 흥미로운 도전처럼 느껴진다면? 피로감 없이 집중해서 일을 수행할 수 있다면? 긍정적이고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이것이 다 합쳐져 ‘성과’와 ‘돈’이 된다면?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약 한 알로 가능하다면?
2017~2021년, ADHD 치료제는 강남 3구(강남·송파·서초)와 노원구에서 가장 많이 처방됐다. 사교육이 과열된 곳이다. 갑자기 ADHD 환자가 늘어난 것일까? ADHD 처방약 ‘페니드’가 필요한 사람이 늘어난 것일까? 페니드를 먹으면 ‘학습 장애’가 ‘학습 성취’로 전도된다. 아무도 마약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처방받지 않은, 못한 학생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구매한다. 약은 당일배송된다. 이것은 약일까, 마약일까?
어느 유능한 사람의 일상을 그려보자. 아침은 ‘페니드’와 커피 한 잔으로 시작한다. 오후에 슬슬 기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페니드를 좀 더 하고 커피도 한 잔 더. 도파민 수치가 살짝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이제부터 일을 더 집중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 일을 마치면 식욕억제제 ‘펜터민’을 먹고 간단한 저녁식사를 한다. 헬스장 가서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HIIT)을 하고 단백질 파우더와 ‘졸피뎀’을 먹고 잠이 든다. 약이 있으면 승진도 보장될 것이다. 아침엔 각성제, 밤엔 진정제, 몸매를 위해선 억제제를 먹는 건 ‘건강’과 더 나은 삶을 위해서다. 이 일련의 화학물질은 더 유능하고 더 매력적인 사람이 되게 할 것이다. 모두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이고, 합법적인 바이오 해킹이다.
바이오 해킹은 건강을 최적화하기 위해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과학기술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자가 더 현명한 바이오 해커일 것이다. 바이오 해커는 자신의 몸을 데이터화하고 약물 주입 결과를 세심하게 모니터링한다. 그리고 이것이 불법적인 바이오 해커가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더 효능 있는 화학물질을 찾으려는 시도가 불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합법적인 바이오 해커와 불법 바이오 해커가 쓰는 화학물질은 얼마나 다를까?
‘페니드’는 ‘메틸페니데이트’의 줄임말이다. 메틸페니데이트는 도파민의 재흡수를 막는 것으로 암페타민과 구조가 유사하다. 암페타민은 필로폰이다. 해외에서는 ADHD 치료용으로 메스암페타민을 사용한다. 메스암페타민은 암페타민에 메틸이 추가된 것이다. 다이어트약으로 쓰이는 펜터민도 메스암페타민과 유사 구조를 갖는다. 항우울제, 항불안제, 수면제 등도 모두 중추신경계에 작용한다. 마약과 동일하다. 약(medicine)과 마약(drug)의 차이점은 신경학적 효과가 아니다. 법적 승인 여부다.
‘페니드’나 ‘메스암페타민’이란 용어 대신 ‘인지강화제’, ‘스마트 약물(nootropics)’, ‘공부 잘되는 약’ 같은 미화된 용어를 쓰면 거부감은 더 줄어든다. 이들 강화제로 잠재된 능력을 끌어낼 수 있다면 효율적이고 현명한 일인 것 같다. 약물 의존성은 있지만 중독은 되지 않았다. ‘약물 의존성’이란 단어는 ‘중독’이란 말에서 도피하게 해준다. 환각도 없고, 심장도 두근거리지 않으며, 평온하고 고요하다면, 중독 직전이다. 심신의 완벽한 상태는 너무 많이 복용했다는 증거다.
‘약물 부작용’이란 용어 또한 약물에 대한 환상을 지켜준다. 부작용은 피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작용이 아니다. 그 자체로 그 약의 ‘작용’이다. 향정신성 물질의 ‘작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용량을 계속 늘리는 수밖에 없다. 뇌의 보상기전 때문이다.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다. 성과를 위해서다. 일탈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 유능하고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에서 개인은 인적자본이 된다. 인적자본은 시장가치를 올려야 한다. 시장가치를 위해 약을 처방받는 것은 합법적이고 윤리적이다. 남들도 먹으니 내가 안 먹으면 뒤처진다. 자신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약을 선택한다. 학생도, 직장인도, 예술인도 뇌의 화학작용을 돕는 강화제에 이끌린다. 행복과 웰빙은 화학적 수단으로 간편하게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약(drug)’은 하지 않았지만 ‘약(medicine)’은 먹는다.
경쟁에서 이기려는 자도, 경쟁에서 낙오된 자도 ‘약·약물’을 찾는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인간을 증강시키는 제약산업에 욕망과 투자가 쏠리고, 성과만을 추구하는 사회적 이데올로기가 팽배해질수록 ‘약물’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약물 문제가 파생시킨 문제가 ‘마약 문제’다.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약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화학적 수단으로 증상을 없앨 수 있다는 제약자본주의 환상에서부터 해결 단서를 찾아야 한다.
한귀은 경상국립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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