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의세계속으로] 세금 더 내겠다는 ‘이상한’ 부자들

2023. 10. 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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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폭탄'을 비난하며 절세(節稅)가 국민 관심사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운동이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의 '애국적 백만장자'는 연간 소득이 100만 달러 또는 자산이 500만 달러 이상인 부자 250여 명이 참여하는 운동이다.

부자라고 모두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라며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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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유럽, 미래 위해 자발적 과세 앞장
한국도 ‘죄책감의 유전자’ 널리 퍼져야
‘세금 폭탄’을 비난하며 절세(節稅)가 국민 관심사가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운동이 미국과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다. 부호들이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으니 말이다. 미국은 ‘애국적 백만장자’, ‘인류를 위한 백만장자’, 캐나다는 ‘운동하는 자원’, 독일은 ‘당장 과세해 주세요’(Tax me now) 등의 사회운동이 한창이다.

미국의 ‘애국적 백만장자’는 연간 소득이 100만 달러 또는 자산이 500만 달러 이상인 부자 250여 명이 참여하는 운동이다. 부자라고 모두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사람은 아니라며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지적하는 문제는 단순하다. 부자가 가난한 사람이나 중산층보다 상대적으로 세금을 적게 낸다는 현실이다. 대부분 이자나 이윤 등 자본 소득에 대한 세율이 노동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자신이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를 움직이는 게임의 규칙은 공정해야 한다는 신념이야말로 이들의 동기인 셈이다. 물론 개인적 기부를 하거나 재단을 만들어 사회에 공헌하는 방법도 있으나 강제적 제도를 통해 부당한 현실을 바로잡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는 태도다.

똑같은 자본주의 사회인데 왜 한국이나 동아시아에서는 이런 운동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일까. 자본주의 역사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짧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엘리트의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부터 공정 세제를 요구하는 ‘애국적 백만장자’까지 뭔가 문화적 바탕이 다른 듯하다.

그중 하나는 기독교 문화가 심어준 부에 대한 비판이다. 유럽을 여행하면 아무리 작은 마을에도 엄청난 규모의 성당을 발견하게 된다. 수백 년간 동네 부자들의 기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천국행을 위해 유럽의 부자들은 중세부터 모은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곤 했다. 부를 축복이 아닌 죄책감으로 느끼게 한 결과다.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로마 문명의 특징으로 부자들의 기부주의(evergetism) 전통이다. 그리스의 폴리스라는 도시국가, 그리고 로마의 ‘레스푸블리카’라 불리는 공화정은 부자들의 선행과 기부가 재정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다. ‘빵과 서커스’라는 그리스·로마의 전통은 부자들이 공동체의 식량은 물론 시민들이 모여서 즐기는 오락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의 표현이다.

실제 이들 ‘이상한’ 부자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죄책감이라는 표현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은 편하고 넉넉한 삶을 누리는데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사람을 보면 죄책감을 느낀다는 고백이다. 기독교적 문화 유전자다. 또 부를 순전히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데 거부감을 느끼며 재산의 공적 기여가 당연하다는 주장도 빈번하다. 분배와 공공성을 지향하는 그리스·로마의 기부주의 문화 DNA인 셈이다.

한국은 개인의 선택과 자유를 최우선시하는 시장경제 제도도 수입했고 불평등도 당연하다는 자본주의 정신을 성공적으로 학습했다. 이제는 죄책감의 유전자나 공공성의 DNA도 동시에 고려하면 좋을 것 같다. 따져보면 미국조차 예루살렘이나 아테네, 로마, 런던 등 과거 외부에서 만들어진 기독교, 기부주의, 공화주의, 자본주의 등의 문화를 수입하고 습득한 셈이기 때문이다.

조홍식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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