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식량 바닥나 ‘구호품 약탈’…한계 내몰린 가자 주민들
남부로의 대규모 이동, 물자 부족과 공공질서 붕괴 불러
봉쇄 4주차에 접어들며 식수와 식량이 바닥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한계 상태에 내몰린 주민들이 구호품을 약탈하는 등 사회 질서가 붕괴할 조짐을 보인다는 경고가 나왔다.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2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전날 가자지구 주민 수천명이 데이르 알발라 등 가자지구 중부와 남부에 있는 유엔 구호품 창고에서 밀가루와 위생용품 등 생필품을 약탈해 갔다며 “지난 3주간의 포위 공격 이후 시민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밝혔다. 줄리에트 토우마 UNRWA 이사는 “주민들의 좌절감과 절망이 커졌고, 사람들의 인내심이 한계점에 이르고 있다”고 말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도 구호물자 일부를 도난 맞은 사실을 밝히며 3주간 이어진 봉쇄로 기아 상태에 빠진 주민이 늘어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사메르 압델자베르 WFP 대표는 “이는 사람들이 희망을 잃고 점점 더 절박해지고 있다는 신호”라면서 “그들은 배고프고 고립돼 있으며, 지난 3주간 엄청난 폭력과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 3일 차인 지난 9일부터 가자지구에 연료와 식수, 식량, 의료품 반입을 차단하는 전면 봉쇄에 돌입했다. 국제사회의 비판이 커지자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와 이집트 접경 라파 검문소를 통해 구호품 반입을 일부 허용했지만, 이재민이 140만명 넘게 발생한 상황에서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1일 첫 구호 트럭이 라파 검문소를 넘은 뒤 이날 33대를 포함해 9일간 총 117대의 트럭이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 유엔이 주민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밝힌 최소 물량인 하루 100대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다. 전쟁 전에는 하루 500대의 트럭이 가자지구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식량뿐 아니라 식수 부족도 심각하다. 가자지구 내 담수화 시설 3곳이 전력이 끊기며 가동을 멈췄다. 팔레스타인 수자원청은 현재 가자지구에서 자체 생산할 수 있는 식수량이 전쟁 이전의 5%에 불과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유엔은 대피소에 머무는 피란민에게 하루 1ℓ의 물을 공급하고 있지만, 대피소 밖 주민들은 이마저도 조달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구호단체들은 가자지구 북부에서 남부지역으로의 대규모 이동이 지역사회에 큰 압력을 가하며 공공 서비스와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부 도시 칸유니스와 라파 등은 이스라엘의 대피령으로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극심한 물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스라엘군은 대규모 지상 작전 돌입과 함께 북부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대피하라고 사실상 ‘최후통첩’을 내렸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지난 2주간 가자지구 북부와 가자시티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이동할 것을 요구해왔다”면서 “오늘 우리는 이것이 매우 긴급한 요구임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가자지구의 상황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절박해지고 있다”면서 “전 세계는 지금 눈앞에 벌어지는 인도주의적 재앙을 목격하고 있다. 피할 데 없는 200만명의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물과 피란처, 의료서비스 접근이 차단된 채 끝없는 폭격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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