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생사람 잡아 구속 기소”…‘허위 제보’ 뒤엔 국정원
[앵커]
안녕하십니까.
월요일 9시 뉴스는 KBS가 단독 취재한 마약 수사 내용으로 문을 엽니다.
마약 사건들이 줄을 잇고, 정부도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에 나선지 1년입니다.
물론 성과도 있었지만 대대적인 색출 과정에서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짓 제보로 마약사범이 됐고,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지만 고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먼저, 신현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경기도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50대 A 씨.
지난 5월, 택배 상자 하나가 커피숍으로 배송됐습니다.
발신한 곳은 처음 보는 필리핀 주소지.
그리고 30분 뒤, 갑자기 사복 경찰이 들이닥쳤습니다.
택배 상자 안에 필로폰 약 90g이 들어있었던 겁니다.
A 씨는 KBS 취재진과 만나 동생이 시킨 건가 싶어서 박스를 받아놓기만 했다고 항변했지만 경찰이 들어주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사건을 넘겨받은 인천지검은 A 씨를 필로폰 밀매 혐의로 구속 기소했습니다.
A 씨가 마약 전과자란 점과 필리핀에서 보낸 '부탁하신 것 보낸다'는 문자 메시지가 근거가 된 걸로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구속 석 달 만인 지난 8월, A 씨는 돌연 석방됐습니다.
"진범이 잡혔다", "사건을 제보한 사람이 무고 혐의로 잡혔다"는 게 검찰 수사관의 설명이었습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허위 제보자가 서울서부지검에 무고 혐의로 체포돼, A 씨에 대해 석방 지휘가 내려진 것.
그런데 A 씨는 허위 제보자가 잡힌 뒤에도 6일 더 구속돼 있다 석방됐고, 석방된 후엔 공소 취소도 되지 않아 아직도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서부지검 보고를 받은 대검찰청이 공소를 취소하란 의견을 냈지만, 인천지검 수사팀이 거부하면서 벌어진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인천지검 수사팀은 KBS 질의에 "아무런 답도 하지 않겠다"고만 했고, 인천지검은 "제보자의 무고 혐의 재판 결과를 보고 공소 취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A 씨 기소 당시 인천지검 강력부장은 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 인천지검장은 심우정 대검 차장검사였습니다.
A 씨는 KBS 취재진에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침해를 당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서 "100일간 커피숍 문을 닫아 생계에도 타격이 크다"고 토로했습니다.
KBS 뉴스 신현욱입니다.
촬영기자:허수곤/영상편집:김선영/그래픽:김현갑
[앵커]
그럼 이런 거짓 제보가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KBS 취재 결과, 이 제보자는 국정원의 마약 정보원으로 활동해왔고, 국정원의 '실적' 요청에 사건을 꾸민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단독 보도, 계속해서 황다예 기자입니다.
[리포트]
KBS가 확보한 A 씨 마약 사건 허위 제보자, 손 모 씨의 무고 혐의 공소장입니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에 돌입한 올해 초, 국정원의 일명 '나 과장'은 수년 간 관리해 친분이 깊은 손 씨에게 "단기적으로 실적이 될 수 있는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손 씨는 오랫동안 국정원에서 활동비를 받고 정보원으로 일한 마약 전과자였습니다.
손 씨는 나 과장의 요청에 '마약사범 근황 파일'을 입수한 후, 여기에서 A 씨의 개인 정보를 얻어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필리핀의 마약상에게 A 씨의 커피숍 주소지로 필로폰을 보내달라고 주문한 겁니다.
필리핀 마약상은 피규어 2개에 필로폰을 나눠 담아 국제우편을 보낸 뒤, 손 씨에게 송장번호를 보냈습니다.
손 씨는 필리핀 마약상이 찍어 보낸 송장 사진을 국정원에 전달했습니다.
국정원은, 이를 인천세관에게 주며 '이 우편물에 마약이 있다'고 알렸습니다.
그리고 세관 특별사법경찰은 우편물의 배달 경로를 추적해 A 씨를 체포했습니다.
손 씨는 휴대전화 압수수색에 대비해 A 씨 앞으로 '부탁하신 것 잘 처리했다'는 문자 메시지까지 보내두게 했습니다.
한 편의 연극 같은 손 씨의 '마약 사범 만들기'는 다른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서부지검에 꼬리가 밟혔습니다.
이렇게 적발될 때까지 A 씨 사건 조작은 전혀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실적을 요구한 국정원, A 씨를 추적해 체포한 세관, 구속 기소한 검찰, 재판을 진행 중인 법원까지 모두 말려든 겁입니다.
해당 기관 중에 손 씨의 조작을 눈치챈 곳이나 검증한 곳은 없었고, 책임진 곳도 당연히 없었습니다.
[관세청 관계자/음성변조 : "수사 내용과 관련해서 말씀드릴 수 있는 내용은 없고, 재판 결과를 좀 지켜봐야할 거 같고요."]
'무고 가해자' 손 씨와, '무고 피해자' A 씨를 모두 피고인석에 앉힌 검찰, 대검찰청은 KBS 보도 직전, A 씨의 필로폰 밀매 혐의에 대해선 인천지검에서 공소심의위원회를 열어 공소 취소 여부를 결정할 거라고 밝혀왔습니다.
KBS 뉴스 황다예입니다.
[앵커]
억울하게 '마약사범'으로 몰린 사례는 또 있습니다.
수사 과정의 뒷 얘기까지 추가 취재한 내용, 내일(31일)도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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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욱 기자 (woogi@kbs.co.kr)
황다예 기자 (allye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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