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정의가 시작될 자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습. 언제나 비슷한 구도다. 이스라엘 정부는 다양한 이유를 들어 또는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유대인 정착촌을 확장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군사작전과 방화로 집을 빼앗기고 쫓겨난다. 도시에서 한두 사람이 총격을 당하는 일은 일상이다. 일자리는 불안정하고 물과 전기는 언제나 부족하다. 조직되거나 조직되지 않은 저항이 이어진다. 돌을 던지거나 행진을 하거나 무장하여 일어난다. 이스라엘 군대의 집중 공격이 시작된다. 병원과 학교가 포격을 당하고 가족과 이웃이 죽임을 당한다. 유엔이 제지하기 위해 나선다.
유엔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 권리를 보장하라거나 불법 점령한 땅을 반환하라고 지속적으로 말해왔다. 국제사법재판소는 분리장벽이 위법하므로 철거하라 했고, 국제형사재판소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조사를 시작했다. 아주 느리게 이스라엘의 불법성을 확인해온 과정이 될 수도 있지만 실상은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 지연되어온 과정에 가깝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유엔 회원국 자격을 정지당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 세계는 이스라엘 정부의 인종학살을 승인 중인 셈이다.
미국이 늘 앞장서 정의를 지연시킨다. 얼마 전 유엔 긴급총회가 휴전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할 때에도 미국은 반대표를 던졌다. 올해 초 서안지구 불법 정착촌 건설을 규탄하는 결의안에도 반대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도 대체로 미국과 비슷하게 움직인다.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기 때문이기보다, 이스라엘의 불법성에 대한 그들 자신의 책임을 모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 정부가 유엔 권고를 무시하는 상황은 방치된다. 가자지구를 반환하라는 결정에 이스라엘은 세상에서 가장 집요한 봉쇄로 응답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자신을 향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지목하며 국제사회의 지속된 요구를 거부한다. 미국 정부는 이스라엘이 방어할 권리를 가진다며 거들고 나선다.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기 때문이 아니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지독한 전도다. 지그문트 바우만(<현대성과 홀로코스트>)은 홀로코스트를 문명으로부터의 일탈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하며, ‘독일을 유대인 없는 곳으로 만들자’는 나치의 목표를 실현시킨 것은 광기와 폭력이 아니라 현대(성)라는 문명 자체임을 강조했다. 이 기억을 “자국이 저지를지도 모르는 부당한 행위에 대한 선지급금”으로 삼고 “어제의 고통에 복수하면서 내일의 고통을 예방하고 있다는 확신”을 조직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유대인인 그는 홀로코스트의 가장 큰 저주로 느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인 축출’을 ‘유대인 정착’으로 부르고, 특정한 무감각과 고유한 사명감을 고취시키며 자국의 시민들을 마비시키고 있다.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자결권을 보장하는 질서를 만들지 못했고 이스라엘 정부의 인종주의 범죄가 허용되는 질서에 가담하고 있다. 75년에 걸쳐 팔레스타인 땅이 팔레스타인인 없는 곳으로 되어가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문명이라면, 더 늦기 전에 기원으로 돌아가 정의를 세울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달 시작된 유례없는 규모의 폭격을 보며 나는 어느 때보다 입을 떼기 어려웠다. 이스라엘 정부를 규탄하고 팔레스타인 민중의 저항을 옹호하는 말은 어렵지 않았다. 그게 익숙해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편에 서 있다고 착각한 내가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수십명이 사망하는 공습은 뉴스도 안 되는 세계가, 나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서야 쳐다보는 방관자들과 함께 만들어지고 있었다. 나는 팔레스타인 민중이 어떻게 당하는지를 알았을 뿐 그들이 무엇을 해내는지 알아보지 못했다.
“매일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는 그들이 하루하루 만들어내는 삶, 그것이 정의가 시작될 수 있는 유일한 자리다. 지켜야 한다. 팔레스타인 해방을.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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