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큰 나무 이야기] 도심 한복판서 전통 이어가는 나무
사람 사는 곳은 어디라도 나무가 있다. 도시라고 다르지 않다. 번거롭고 복잡한 도시라 해도 크고 오래된 나무는 있다. 다만 많은 사람이 모여 살아야 하는 사정에 밀려 나무를 위한 자리가 넉넉히 마련되지 못해 존재감이 낮을 뿐이다.
근대 개항의 중심 역할을 한 인천시 도심 한복판에서 8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가을이면 어김없이 형광빛 노란 단풍으로 화려하게 단장하는 한 그루의 융융한 은행나무는 그래서 더 없이 소중하다. 개항 초기뿐 아니라 우리나라 산업 발전의 중추 역할을 한 수도권 도시에서, 사람들이 나무의 넉넉한 자리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나무의 소중함은 더 커진다. 이태 전인 2021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가 그 나무다.
나무 높이가 30m나 되는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는 뿌리 부분에서부터 줄기가 다섯 개로 고르게 갈라지면서 높지거니 솟아올랐다. 나뭇가지가 수양버들처럼 축축 늘어진 생김새도 여느 은행나무와는 사뭇 다르다. 나뭇가지가 펼친 품은 사방으로 25m 넘는 융융한 기품이 장관이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넉넉한 공간을 확보한 채 이만큼 훌륭한 나무가 서 있는 건 흔치 않은 풍광이다.
마을 살림살이를 지켜온 나무라는 건, 시골 마을의 당산나무와 닮았다. 옛날에 이 마을 사람들은 돌림병이 생기면, 나무에 제물을 차려놓고 치성을 올리곤 했다. 이 같은 풍속은 지금까지도 이어진다. 최근에는 해마다 음력 칠월초하루에 ‘목신제’라는 이름으로 마을굿을 치른다.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는 굿이다.
전통 굿의 형태는 아니지만, 정성이 담긴 마을굿이다. 길굿도 없고, 제사 복장을 차려입은 제주도 없지만, 마을 사람들이 깔끔하게 매무시한 복장으로 나무 곁에 모여 한 해 살림살이를 잘 보살펴달라는 소원을 빈다. 도심 한복판에서 우리의 옛 전통문화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와 마을굿은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이다.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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