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호철 칼럼] 차분한 변화? 턱도 없다!
비운의 노무현 전 대통령 하면 일반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급진적’ 이미지다. 하지만 정책 면에서 노무현 정부는 ‘급진적’이지도, 그리 ‘진보적’이지도 않았다. 물론 탈권위주의 등 진보적 정책도 있었지만,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파견근로제 확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대에도 전반적으로 ‘보수’정책들을 폈다. 그럼에도 그에게 급진적 이미지가 따라다니는 것은 ‘급진적 언술’ 때문이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 미군 장갑차에 희생당한 여고생들 추모 촛불시위에 참여했다가 ‘반미’라는 비판이 일자 그는 “반미면 어떠냐”고 되받아쳤다. 대통령으로 미국을 방문해서는 반미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미국이 아니었으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아 고맙다”며 우파 대통령들도 안 했던 ‘급진적인 친미’ 발언을 했다. 그의 급진주의는 ‘내용의 급진주의’가 아니라 ‘스타일의 급진주의’였다.
‘스타일의 급진주의’에서 노 전 대통령 못지않은 것이 윤석열 대통령이다. 그의 언술은 노동운동에 대해 ‘건폭’(건설조폭), 야당 등 비판세력에 대해 ‘공산전체주의’ ‘반국가세력’ 등 이것이 정말 극우논객이 아니라 대통령의 언어인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전투적 언어와 적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그의 스타일의 급진주의는 ‘어퍼컷’이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누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공식 행사에서 어퍼컷을 날리는가! 윤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과 다른 점도 있다. 내용까지 급진적이다. 정확히 말해, ‘극우’라고 말해야 할 정도로 그 내용이 극단적 보수주의, ‘급진보수주의’다. 이는 여러 정책들, 극우 인사만 골라 중용하는 인사 등이 잘 보여준다. 그 같은 급진주의, 극단주의는 독선과 불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가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다. 유죄 판결로 쫓겨난 사람을 바로 사면해 다시 후보로 내세우는 오만과 독선을 보였으니, 17%포인트밖에 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놀라운 것은 참패에 대한 그의 반응이다. 윤 대통령은 ‘차분하고 지혜로운 변화’를 처방했다. 그간 언행에서 ‘차분함’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그가 ‘차분한’이라는 말을 쓴 것이 놀랍다. 그의 사고 속에 차분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대 밖이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쓴소리에 격노하고, 비판적 목소리에 대해 ‘내부총질’이라고 생각하면서 지혜가 가능할 수는 없다. 사고의 안일함도 놀랍다. 선거에서 참패하고도 문제가 ‘차분한 변화’로 수습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차분한 변화로는 턱도 없다. 물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정책은 여론이나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고 밀고 나가겠다는 그의 독단과 ‘소명주의’에 변화가 생기는 것 같다. 그는 선거 참패 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며 “이념논쟁을 멈추고 오직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는 아직 말일 뿐 스타일과 정책 면에서 실제 얼마나 변화가 생길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을 보면 별 희망이 안 보인다. 당을 ‘내시당’으로 만들어 보선 참패에 책임이 있는 김기현 대표가 유임됐고 사표를 낸 지명직 당직자 중 총선 공천을 책임질 사무총장에 친윤계를 임명했다. 혁신위원회 역시 ‘친윤’ 일색이다. 뼈를 깎는 발본적 개혁이 아니라 화장을 고친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진짜 한심한 것은 위로부터의 궁중 쿠데타를 통한 ‘윤석열 신당’ 창당설이다. 문제의 근원이 대통령 자신에게 있는데 신당을 만든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스타일의 급진주의, 급진보수주의를 차분하게가 아니라 혁명적일 정도로 급진적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총선에서 국민의힘은 희망이 없고 윤 대통령은 집권 2년 만에 레임덕에 빠질 것이다. 필요한 것은 차분한 변화가 아니라 ‘소통의 리더십’ ‘통합의 리더십’, 국민이 그에게 기대했던 ‘공정과 상식’으로의 ‘혁명적, 급진적 변화’이다. 즉 그의 특징을 살려, 급진보수주의와 급진적 언술을 급진적으로 바꿔야 한다. ‘비대위원장 유승민, 혁신위원장 이준석’ 정도의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최소한 이 두 사람에게 공천을 주고 중임을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윤 대통령이 차분한 변화에 안주하다가 총선에서 참패하고 빨리 레임덕에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정파를 떠나, 윤 대통령이 남은 임기 3년을 레임덕으로 표류하여 국정이 망가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차분한 변화? 턱도 없는 이야기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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