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오두둑’ 선배 소집이라고 했다. 안 갈 수가 없었다. 2012년 5월 광주 5·18기념재단 2층 대강당 옆 복도에 쭈그리고 앉아 얘기를 들었다. 항상 겸손하며 노련한 오두둑 선배는 늘 물음형이었다. 대강당 안에서는 ‘평화바람’의 명목상 단장인 문정현 신부께서 그해 5·18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어 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상금 5000만원 모두 내놓자고 했으니 길 떠나는 종잣돈은 되지 않겠어요?” 식이 끝나고 지팡이를 짚은 채 절뚝거리며 나오신 신부님은 오두둑과 평화바람 사람들이 결정했으면 된 거지 뭐, 하셨다.
일명 스카이(SKY) 행진이었다. 서울대·고대·연대 등 속칭 일류대로만 가야 한다는 학벌과 경쟁지상주의 우선의 천박한 한국사회에 대한 힐난과 야유, 풍자의 마음도 담겨 있었다.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함께 가야 할 길은 소수 자본가의 이해만을 위해 수백만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시키고 1000만명에 이르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불의한 구조조정 과정에 저항하다 당시 스물두 번째 희생자가 나왔던 쌍용자동차 대한문 합동분향소(S)이며, 4·3의 아픈 역사를 품은 평화의 섬 제주에 다국적 전쟁기지에 다름 아닌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 싸우고 있는 제주 강정 구럼비 바위 곁(K)이며, 용산4구역에서 철거민 다섯 명을 불태워 죽인 정권 심판과 부동산 투기 공화국에 대한 저항(Y)이라는 뜻을 담았다.
“윤석열 정권 들어섰다고 모두 낙담해 있는 것 같아요. 이럴 때일수록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2022년 세계 기후위기, 한반도 평화위기, 여전히 사회에 만연한 각종 소수자 차별, 비정규직 확산 등에 맞서 다른 세계를 꿈꾸는 자들의 사회적 연대를 복원하자고 전국의 민주주의 투쟁 현장을 순례했던 ‘2022 봄바람 행진’도 평화바람의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를 일으켜 세워 온 평화바람 사람들의 물음을 접한 지도 20여년이 되었다.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험난한 한국 민주주의 역사 속에서 ‘길 위의 신부’로 불리며 하나의 고유명사가 되고 만 ‘문정현 신부님’ 외 평화바람 벗들은 세속의 이름도 없다. 그들은 만날 때부터 ‘딸기’ ‘오이’ ‘중서’ ‘보리’ ‘밥’ ‘나무’ ‘어쭈’ ‘여름’ ‘잎싹’ ‘고철’ ‘무지’ ‘낮잠’ ‘두시간’ 등이었다. 2003년 새만금 살리기 삼보일배와 부안 핵폐기장 건설 반대 투쟁 후 중형버스를 개조한 ‘꽃마차’를 끌고 ‘평화유랑단 전국 순례’에 나선 게 평화바람의 시작이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2년여 동안은 미군기지 이전 확장에 반대해 평택 대추리 주민이 되어 살았다. ‘여명의 황새울’이라는 작전명으로 1만5000여명의 군경이 몰려들던 새벽, 문정현 신부님은 대추초교 옥상 망루에 올라가 계셨고, 평화바람 벗들은 초교 울타리 앞에 인간방패가 되어 서 있었다. 내일이면 대추리에서 쫓겨 나와야 했던 마지막 대추리의 밤, 미군부대 철책 건너편 평화바람 집 마당에서 세간들을 태우는 거대한 화톳불을 피우며 문정현 신부님의 아코디언 소리에 맞춰 함께 춤을 추며 울고 웃기도 하던 그 밤을 난 영원히 잊을 수 없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2009년부터 2010년 초까지 이명박 정부의 거센 공안탄압 속에서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있던 용산 철거민 학살 진상규명 투쟁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준 것도 평화바람이었다. 한국 사회운동 그 누구도 학살 현장에 거점을 마련하는 일을 결의하지 못할 때 군산에 있던 평화바람 사람들이 어느 날 예고도 없이 ‘꽃마차’를 끌고 와 현장 분향소 옆에 붙박이로 세우곤 키를 뽑아 버렸다. 그후 1년여 동안 그들은 용산4가 철거촌 주민이었다.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1차를 준비할 때도 평화바람은 폐차 직전의 꽃마차를 끌고 한달음에 달려와 주었다. 희망버스 후에는 제주 강정으로 넘어가 지금껏 10년 넘게 강정 주민이 되어 살고 있다. 현재는 두 집 살림을 산다. 군산에서는 마지막 남은 새만금 갯벌을 지키고 미 공군 활주로에 다름 아닐 비행장 건설에 반대하며 600년 된 새만금 팽나무의 가족이 되어 살고 있다. 그 모든 현장에서 우린 단 한번도 평화바람 벗들이 생색을 내거나, 공치사를 바라거나, 자신들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조용히 헌신하고 일한 후 조용히 떠난다. 그런 평화바람이 길 위의 삶을 시작한 게 올해로 20주년. 이젠 “우리가 뭐라도 한번 해줘야 하지 않을까?” 본인들은 마다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작당모의’를 해서 다시 ‘꽃마차’를 만들어주자고 한다. 소식을 들은 문정현 신부님은 그 꽃마차 타고 소외와 차별이 있는 곳, 반생명과 반평화에 맞서 싸우는 곳들 찾아다니다 길 위에서 생을 마치고 싶다고 하셨단다. 11월25일, 팽팽문화제 때까지 그 일이 가능할까?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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